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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온 더 타운> ON THE TOWN [No.137]

글 |박천휴 (작가/ 번역가) 사진 |Joan Marcus 2015-02-27 5,198

브로드웨이의 전통을 이어가다 

<온 더 타운>은 활기 넘치는 춤과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음악, 형형색색의 화려한 조명과 무대까지,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면 떠올릴 만한 요소들을 모두 갖춘 뮤지컬이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한창 젊은 나이였던 1944년에 작곡한 <온 더 타운>은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가 그 당시에도 굉장히 신선하고 활기찬 공연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그런 <온 더 타운>이 무려 70여 년이 흘러 다시 브로드웨이로 돌아왔다.



화려하게 돌아온 <온 더 타운>

오랜만에 브로드웨이 무대로 돌아온 <온 더 타운>은 새롭게 단장한 무대와 에너지 충만한 연출, 그리고 발레 동작을 기본으로 한 화려한 안무가 무척이나 돋보인다. 지난해 10월 개막한 이후 역시나 뉴욕의 평론가들로부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이끌어내는 중이다. <뉴욕타임스>는 ‘주어진 재료와의 궁합이 무척 잘 맞으며, 오래된 클래식 뮤지컬인 <온 더 타운>의 예스러움을 떨쳐버리는 데 성공했다’고 호평하며 2014년 베스트 뮤지컬 중 하나로 꼽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층 더 격하게 호평했는데, ‘훌륭한 공연이 지녀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면서 ‘이 공연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는 사람에겐 심장이식이 필요하다’라는 귀여운 극찬을 했다. 이렇듯 <온 더 타운>은 이번 시즌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작품성 있는 공연이자 동시에 브로드웨이의 전통을 가장 착실하게 이어가는 공연으로 꼽히며 환영받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24시간 동안의 짧은 외출을 허락받고 배에서 내려 뉴욕 맨해튼에 막 발을 디딘 세 명의 젊고 씩씩한 해군 게비와 칩, 오지가 ‘하루 동안의 사랑’을 찾아 맨해튼을 활보하는 이야기이다. 뉴욕 지하철에서 주최하는 일종의 미인 대회인 ‘이달의 미스 개찰구(Turnstile)’로 선발된 아름다운 아이비의 얼굴을 포스터에서 보고 첫눈에 반한 게비는, 그녀를 찾아내 데이트 신청을 하기로 다짐한다. 게비의 친구 칩과 오지 또한 이런 게비를 도와 지하철 얼짱녀 ‘미스 개찰구’를 찾기 위해 온 도시를 종횡무진 누빈다. 이 세 명의 활기 넘치는 해군이 뉴욕을 배경으로 펼치는 로맨스는 이들 성격과 뉴욕의 유명한 명소들만큼이나 생기롭게 그려진다. 이렇듯 <온 더 타운>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공연 내내 무대 위에서 발산하는 활기 넘치는 에너지이다. 이 작품이 완성되던 해인 1944년에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한 창작진은 기껏해야 서른 무렵의 젊은 예술가들이었다. 그 당시 그들에겐 이미 쌓아놓은 경험보다는 가능성과 열정이 더 큰 무기였고, 기운 넘치던 젊은 예술가들은 고작 6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에 그들의 첫 뮤지컬이었던 <온 더 타운>의 음악과 대본을 완성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첫 뮤지컬이 이렇게 영속성을 띠고 70년의 세월이 흘러 다른 세대의 관객들에게도 박수를 받게 될지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2015년의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 이 작품이 최근 개막한 어떤 새로운 공연보다도 가장 젊고, 활기 넘치며 신선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될지 말이다. 



아쉬움을 주는 무대 세트와 대본

하지만 아쉽게도 <온 더 타운>이 장점으로만 채워진 공연은 아니다. 공연이 상영되고 있는 리릭 씨어터는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큰 무대 중 하나인데, 그걸 참작하더라도 무대 디자인이 지나치게 단순해 때때로 텅 빈 느낌마저 든다. 무대를 둘러싼 사각 프레임 패널은 화려한 뉴욕의 네온사인을 형상화한 것처럼 이해되긴 하나,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무대를 떠올리게 하며 공연의 정서와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장면 전환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흑백 애니메이션 영상은 지나치게 가벼워 보이며, 고전 뮤지컬의 감성과도 충돌한다. 무대의 전체적인 색감은 마치 사탕 가게에 들어온 듯 알록달록한 색상이 주로 쓰였는데, 이는 70년 전에 만들어진 고전 뮤지컬을 리바이벌하면서 공연을 업그레이드한 느낌이 들도록 의도한 듯하다. 하지만 미학적으로 지나치게 과장된 세트들이 이야기 자체의 현실성, 그리고 클래시컬한 뮤지컬 특유의 감수성까지 낮춰버리는 느낌이다. 억지로 빈티지한 느낌까진 아니더라도, 시각적으로 조금 더 따뜻한 뉴욕을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공연을 보는 내내 들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음악이나 안무의 완성도에 비하면 대본의 전체적인 호흡이 그리 고르지 못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성격 자체가 이야기의 짜임새보다는 무용, 노래, 코미디를 오가며 벌어지는 장면들의 나열로 이루어진, 일종의 버라이어티 쇼이기는 하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장면과 장면 사이의 호흡이 꽤 거칠다. 천진난만하며 실없는 유머 코드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크고 작은 웃음을 주기 때문에 공연이 지루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에피소드들이 연결되는 방식과 배경 전환은 다소 매끄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공연을 채우고 있는 무용, 노래, 코미디 모두가 브로드웨이에서도 최상의 수준이지만, 그 사이의 연결은 부드럽지 못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이번 공연이 오래된 뮤지컬을 충실하게 재현한 리바이벌 프로덕션인 이상, 원작의 창작자들에게 가는 게 마땅하다. 역시나 70년 전 <온 더 타운> 초연에 대한 평가에서도 대본에 대한 아쉬움은 발견된다. 이는 당시 경력이 부족했던 젊은 창작진이 이야기의 짜임새보다는 무대디자이너의 요청에 무대화가 가능한 배경을 먼저 선택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짜 맞추는 형식으로 대본 작업을 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한 <온 더 타운>이 초연된 1944년은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이 채 끝나지 않았으며, 그 당시 브로드웨이의 관객들은 고단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엔터테인먼트에 무척이나 갈증을 느꼈던 때다. 제롬 로빈스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안무 동작들이 뉴욕의 명소들을 흉내 내 지어진 화려한 세트 위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의 젊고 역동적인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며 관객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것, 그러면서도 새롭고 핫한 공연을 만들어내는 게 아마도 이 창작자들의 가장 큰 목표였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목표는 아주 확실하게 성공한 셈이다. 



전통의 힘이 빛을 발하는 <온 더 타운>

이렇듯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훌륭한 엔터테인먼트이자 가치 있는 무대 예술이 되기 위해 <온 더 타운>은 버라이어티 쇼가 가져야 할, 말 그대로 ‘다양한’ 요소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예를 들어 주요 인물인 세 명의 해군은 작가가 설정한 캐릭터의 성격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장르로도 구분되는데, 셋 중에서도 메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게비는 포스터 속 사진만 보고도 아이비에게 반해버리는 것처럼 가장 로맨틱한 인물이다. 이러한 게비에게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 곡을 선사한다.


“뉴욕의 맨해튼과 아이오와의 작은 마을의 차이점은 그 이름밖에 없어. 브로드웨이도, 작은 길도 혼자이면 그저 같을 뿐이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을 땐 여긴 그저 외로운 곳,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땐 그저 외로운 동네일 뿐이야.” 


게비가 부르는 발라드 뮤지컬 넘버인 ‘론리 타운’은 프랭크 시나트라도 녹음한 적이 있는,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이다. 갈수록 고조되는 현악이 돋보이는 오케스트라와, 클래식과 오페라의 향취가 느껴지는 레너드 번스타인 특유의 아름다운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달콤하고 따뜻한 노래가 끝나면 곧이어 다음 인물인 칩의 장면이 이어진다. 저돌적이며 적극적인 여자 택시 운전사에게 엮여버린 칩은 그녀와 함께 맨해튼 곳곳의 유명한 장소들을 배경으로 빠른 템포의 재즈와 블루스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래들을 주로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엉큼한 성격의 오지는 처음엔 고상한 척하나 결국 오지의 유혹에 넘어오고 마는 내숭 많은 캐릭터인 인류학자 클레어를 만난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 소란스럽게 밀고 당기기를 하는 동안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가장 친숙한 형식의 코미디 뮤지컬 넘버들이 주가 된다. 세 등장인물이 이렇듯 각 캐릭터를 차별화하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에 맞춰 현란하게 선보이는 안무와 때때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아름다운 발레 동작, 그리고 기발하고 재밌는 무대 연출도 캐릭터에 힘을 싣는다. 인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이어 나가며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렇듯 각각의 요소들이 합쳐지며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의 상투성은 대부분 누그러들게 된다. 




흔히 버라이어티 쇼가 넘어야 할 산은, 관객들을 웃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 내내 지루할 틈이 없도록 넣은 과장된 유머나 실없는 농담들을 어떻게 하면 끝까지 질리지 않게 하는 것인가이다. 그러면서 중요한 점은 작품이 무게를 잃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온 더 타운>은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으면서, 빠른 리듬을 놓치지 않는 훌륭한 유머와 센스를 지녔다. 이 작품은 상황과 대사로 이끌어내는 농담과, 몸을 쓴 슬랩스틱 모두를 활용하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 역시 작품이 지니는 유머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의 음악이 작품의 유머와 성격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곡가의 음악이 지닌 힘은 정말 남다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의 하품하듯 느릿하게 이어지는 노래에서 갑자기 활기 넘치는 오프닝 곡으로 전환할 때 힘차게 울려대는 관현악기의 소리라든지, 그 뒤에 이어지는 이 작품의 테마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뮤지컬 넘버 ‘뉴욕, 뉴욕’이 전달하는 특유의 에너지로 가득 찬 멜로디, 그리고 무척이나 훌륭한 편곡은 관객들이 어느 뮤지컬에서든 쉽게 전할 수 있는 평범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 특별한 음악들은 극이 시작된 지 고작 몇 분 만에 음악의 힘만으로도 관객의 몸을 들썩이게 하며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환상적인 발레 장면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흥겹거나, 아름답거나 한 장면들은 모두 번스타인의 음악 자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번스타인의 음악은 아무리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인데, 클래시컬하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선율(‘론리 타운’)부터 흥겨운 업템포의 블루스-재즈 곡(‘I Can Cook, Too’)까지 듣고 있노라면 뮤지컬이라는 포맷의 예술이 지닌 가치에 대해 새삼 환호하게 된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다른 뮤지컬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도 그렇듯이, 번스타인의 훌륭한 음악은 브로드웨이가 지닌 전통적인 가치를 가장 잘 정의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온 더 타운>은 현재 브로드웨이 공연 중 가장 큰 규모인 28인조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자랑한다. 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관객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우며, 배우들의 가창 솜씨 또한 매우 빼어나다. 안무 또한 고난도의 발레 동작부터 여러 명의 앙상블이 재빠르게 맞춰가는 군무 동작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데, 모두 의심의 여지없이 브로드웨이 최고의 수준이며, 당연하게도 관객들의 감탄과 박수를 아낌없이 이끌어낸다. 많은 평론가와 뮤지컬 관객들이 리바이벌 프로덕션 <온 더 타운>을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 뮤지컬계뿐만 아니라 브로드웨이 또한 공연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유명한 스타 배우나 이미 브랜드화된 공연이 아니면 긴 흥행을 장담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온 더 타운>은 말하자면 브로드웨이 최상급의 재료를 가지고 최고의 요리사들이 무척이나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어낸 것과 같다. 하지만, 7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이 작품이 얼마나 오랫동안 브로드웨이에서 살아남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관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대치는, 그저 이 요리가 신선한 동안 가서 맛보는 것. <온 더 타운>은 지금 뉴욕 타운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이며 호사스러운 브로드웨이의 미식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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