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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음악과 캐릭터의 일체, 액터 뮤지션 뮤지컬 [No.136]

글 |안세영 2015-02-15 5,251

무대 위에서 연기와 노래, 춤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뮤지컬 배우. 그런데 최근 개막한 뮤지컬 <원스>의 배우들에게는 여기에 또 하나의 능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바로 악기 연주다. 배우가 연기는 물론 연주까지 책임지는 이런 뮤지컬을 가리켜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라고 한다.



경제적 필요가 낳은 예술적 혁신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 지금처럼 어엿한 뮤지컬 장르로 대우받게 된 데에는 브로드웨이 연출가 존 도일의 공이 크다. 그는 기존의 뮤지컬 작품을 배우가 직접 연주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각색했고, 평단의 찬사와 함께 비범한 연출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존 도일이 액터 뮤지션 형식을 선보이게 된 최초의 계기는 사실 파격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제작 환경의 제약에서 비롯한 경제적 대안에 가까웠다. 존 도일은 1990년대부터 2008년까지 영국 버크셔에 자리한 워터밀 극장의 협력 연출로 일했다. 워터밀 극장은 이름 그대로 방앗간을 개조해 만든 200석짜리 작은 지방 극장이었고, 당연히 대규모 캐스트와 오케스트라를 감당할 재정적·공간적 여력이 없었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유명 대형 뮤지컬을 올리기 위해 고안된 방법은 오케스트라 인건비를 줄여줄 연주자 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었다. 


초기의 액터 뮤지션 뮤지컬은 그저 배우들이 악보대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연기하고 다시 앉는 것을 반복하는 아주 단순한 형태였다. 음악과 장면은 거의 통합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 <카바레>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공연하면서 존 도일은 배우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새로운 방식이 드라마를 더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액터 뮤지션을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궁여지책으로 탄생한 형식을 예술적으로 완성시켰다. 그의 대표작은 2004년 워터밀 극장에서 올라간 <스위니 토드> 리바이벌 공연이다. 27개 악기로 구성됐던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오케스트라는 이 공연에서 10명의 배우가 대신했다. 배우 수에 맞게 줄인 악기 편성과 한 배우가 여러 악기를 번갈아 연주하는 색다른 형식은 곧 큰 화제를 불러 모았고, 작품은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해 존 도일에게 2006년 토니상 연출상을 안겨줬다. 이어서 손드하임의 또 다른 뮤지컬 <컴퍼니>를 액터 뮤지션 형식으로 리바이벌한 작품은 2007년 최고의 리바이벌 뮤지컬로 토니상, 드라마 데스크상, 아우터 크리틱 써클상, 드라마 리그상을 휩쓸었다. 이외에도 도일은 <맥 앤 마블>, <메릴리 위 롤 어롱>, <알레그로> 등 여러 작품을 액터 뮤지션 뮤지컬로 리바이벌했으며, 그의 성공으로 다른 프로덕션들도 액터 뮤지션을 리바이벌 공연 컨셉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캐릭터 그 자체로서의 악기 


국내에서는 <오디션>, <펌프 보이즈> 등의 작품에서 배우가 연주와 연기를 겸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밴드 멤버를 주인공으로 한 콘서트식 뮤지컬로, 사실적인 소품으로서 악기를 활용한다. 1월에 초연하는 창작뮤지컬 <곤, 더 버스커> 역시 여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미 내용상 배우의 악기 연주가 전제되어 있는 콘서트식 뮤지컬과 달리, 본격적인 액터 뮤지션 뮤지컬에서는 드라마와 악기 사용 사이의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악기는 배우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자의적인 연출 수단으로 기능한다. 


창작뮤지컬에서 이러한 액터 뮤지션 뮤지컬의 형태를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은 <모비딕>이다. 허먼 멜빌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모비딕>은 연주법과 소리, 그리고 외형까지 다양한 기준을 두고 캐릭터별 악기를 지정했다. 에이헙 선장의 모비딕을 향한 깊은 복수심은 첼로의 저음으로 표현되며, 첼로 아래의 핀은 그의 잃어버린 한쪽 발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내레이터인 이스마엘은 유일한 다성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살잡이 퀴퀘그는 작살 대신 바이올린의 활을 켠다. 직접 무대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해야 하는 흰 고래 모비딕의 모습은 콘트라베이스의 선율로 매우 낮고 음험하게 그려진다. 


<원스>는 이러한 콘서트식 뮤지컬과 본격적인 액터 뮤지션 뮤지컬의 경계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원스>는 등장인물이 밴드를 구성해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악기 연주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드라마를 갖고 있다. 하지만 배우들은 자신의 배역을 직접 연기하지 않는 순간에도 무대에 머물러 연주를 이어가며,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걸’의 어머니처럼 밴드에 속해있지 않은 배우들 역시 연주에 참여한다. <원스> 안에서 음악은 국적이 다른 등장인물이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다. 그렇기에 역할에 상관없이 모든 배우가 악기를 연주하는 형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사실적이지 않은 형식과의 조화 


<원스>처럼 직접적으로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극에서 액터 뮤지션 형식은 부자연스럽고 비사실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형식은 감정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사실적이고 서사적인 작품보다는 표현주의적인 작품과 잘 어울린다. 


존 도일이 리바이벌했던 <컴퍼니>는 원작 자체가 스토리보다 주제의 표현 방식에 더 주목하는 ‘컨셉 뮤지컬’이다. 35세 싱글남인 바비가 결혼한 친구들이나 여자친구들을 만날 때 벌어지는 일이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고 옴니버스식으로 이어진다. 무대 역시 바비의 내면을 반영한 추상적인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대 중앙에 대도시의 마천루를 연상시키는 구조물과 바비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있고, 나머지 인물들은 이 주의를 돌면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배우가 무대를 떠나지 않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의 형식은 ‘함께 있는 사람들(Company)’이라는 작품의 중심 소재와도 맞아떨어진다. 무대 위에 항상 함께하며 서로를 위해 연주하는 배우들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늘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컴퍼니>의 주제를 보다 명료하게 보여준다. <스위니 토드>의 경우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로 리바이벌되면서 아예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극중극으로 컨셉이 바뀌었다. 러빗부인과 함께 살았던 소년 토비아스가 주인공이 되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연주를 하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심리극처럼 재연한다. 


뮤지컬은 음악과 극이 일체화된 장르다. 그렇다면 배우의 노래와 연기는 물론 악기의 연주까지도 극과 캐릭터의 일부로 작용하게끔 만든 액터 뮤지션 뮤지컬은 어쩌면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뮤지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극, 음악, 캐릭터가 온전히 하나로 섞일 수 있는 액터 뮤지션이란 형식이 앞으로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미래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6호 2015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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