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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안방에서 즐기는 생방송 공연, TV LIVE MUSICAL [No.136]

글|안세영 2015-02-04 5,495

뮤지컬 공연을 영상으로 옮기는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최근의 몇 가지 사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숲 속으로>처럼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는 방법,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처럼 공연 실황을 촬영한 뒤 편집해서 개봉하는 방법, 그리고 <빌리 엘리어트 라이브>처럼 공연 실황을 생중계하는 방법 말이다. 그런데 이것들 외의 방법이 또 있다. 극장이 아닌 스튜디오에 세트를 짓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TV로 생방송하는 방법이다. 최근 미국 방송사 NBC가 방영한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와 <피터팬 라이브!>가 바로 이렇게 제작됐다. 



NBC 생방송 뮤지컬 프로젝트


2013년 12월, 미국 지상파 채널 NBC는 연말 특집으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으로 공연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The Sond of Music Live!)>를 선보였다. 3시간의 방송 동안 배우들은 스튜디오 내에 지어진 저택과 수녀원, 콘서트 무대, 나무숲 등의 세트를 오가며 연기를 펼쳤고, 그 모습은 사방에 설치된 12대의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NBC는 이 특별한 공연을 위해 총 9백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했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와 <헤어스프레이>, 그리고 NBC 뮤지컬 드라마 <스매시(Smash)>를 제작한 베테랑 연출진 크레이그 자단과 닐 메론 콤비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고, 컨트리 가수 캐리 언더우드가 마리아를 연기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영화와 달리 브로드웨이 버전을 충실히 재현한 점, 그리고 생방송 공연을 실수 없이 해낸 점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알프스의 모습을 배경막으로 대신한 인공적인 세트는 사실적인 영상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겐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줬다. 뛰어난 가창력에 비해 어설펐던 캐리 언더우드의 연기력도 지적됐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1천 9백만 명이라는 엄청난 시청자 수를 기록했고, 이는 지난 10년 동안 NBC에서 목요일 밤 방영된 비(非) 스포츠 프로그램 시청률 가운데 최고치였다. 방송 후 발매된 사운드트랙과 DVD 역시 높은 매출고를 올렸으며, 66회 에미상은 이 프로그램에 촬영기술상(Outstanding Technical Direction, Camerawork, Video Control)을 수여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의 성공에 고무된 NBC 엔터테인먼트 회장 밥 그린블랫은 총괄 프로듀서 크레이그 자단, 닐 메론과 또 다른 생방송 뮤지컬을 만들기로 계약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4년 12월 4일, 두 번째 작품 <피터팬 라이브!(Peter Pan Live!)>를 선보였다. 1945년 초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피터팬>을 각색한 이 작품에는 45명의 배우와 350명 이상의 스태프가 동원됐으며,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보다 많은 천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됐다. 음악감독 데이빗 체이스, 프로덕션 디자이너 데릭 맥클레인을 비롯해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에 참여했던 많은 스태프들이 다시 뭉쳐, 전작보다 역동적이고 영화 같은 방송을 만들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더 웅장해진 세트와 더 많은 카메라,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더해졌다. 타이틀롤인 피터팬은 여성이 연기하는 브로드웨이의 전통대로, 드라마 <걸즈(Girls)> 출신 여배우 앨리슨 윌리암스가 맡았다. 후크 선장 역에는 연기파 배우 크리스토퍼 월켄이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았다. <피터팬 라이브!>의 본방송 시청자 수는 9백만 명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 때보다는 적은 수에 그쳤지만, 여전히 동시간대 지상파 채널 가운데서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피터팬 라이브!> 제작 과정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생방송 뮤지컬의 장점 중 하나는 전통적인 무대 세팅 방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와 <피터팬 라이브!>는 모두 뉴욕에 위치한 사운드 스테이지(촬영과 녹음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음 시설을 갖춘 스튜디오) ‘그러먼 스튜디오(Grumman Studio)’에서 촬영됐다. 스튜디오 안에는 웬디의 방과 네버랜드, 땅 속 집, 인어호수, 해적선 등 각각의 장면에 필요한 공간이 따로 세팅되어 있다. 거대한 보물 지도가 그려진 네버랜드의 바닥 위에는 풍성한 장미 나무와 알록달록한 소품들이 가득해 동화 속 판타지를 재현한다. 실제 공연보다 크고 섬세한 세트들은 영상미와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일반적인 공연 실황과 달리 다이나믹한 카메라 앵글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피터팬 라이브!>의 촬영은 에미상 10회 수상 경력의 TV 영상감독 글렌 웨이스가 총괄했다. 그녀는 여러 번의 리허설을 거쳐 카메라 워킹에 대해 꼼꼼히 계획했다. 방송에는 스태프에게 고정된 3대의 스테디 카메라(들고 촬영할 때의 흔들림을 방지해주는 신체 부착용 특수 카메라)와 2대의 지미짚, 핸드 온 카메라, 로봇 컨트롤 카메라 등 총 16대의 카메라가 투입됐다. 사방에 위치한 카메라는 단순히 배우를 클로즈업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고 다양한 앵글과 워킹을 보여준다. 위에서 내려다본 샷, 창밖에서 들여다본 샷, 멀리서부터 다가와 배우들 사이로 파고들어가는 샷, 둥글게 모여 춤추는 소년들을 원의 중심에서 바라본 샷 등 공연 무대였다면 볼 수 없을 다양한 장면을 연출한다. 프로듀서는 이러한 촬영 방식에 대해 “전형적인 멀티카메라 쇼처럼 배우의 행로에서 멀찍이 떨어져 촬영하면 간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연출의 한 부분이 되도록 만드는 편이 시청자로 하여금 특별한 상호작용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배경 공간이 바뀔 때는 컷이나 디졸브를 사용하지만, 좀 더 창의적인 연출로 전환될 때도 있다. 뮤지컬 <피터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피터가 웬디, 마이클, 존과 함께 네버랜드로 날아가는 ‘I'm Flying’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는 창문과 침실의 벽이 활짝 열리며 밤하늘처럼 넓은 공간이 드러난다. 배우들은 와이어를 달고 그 열린 공간 사이로 날아오른다. 카메라의 시점이 바뀌면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얼마 후 아이들의 탄성어린 얼굴이 클로즈업되면, 다음 컷에서는 옆에 있는 네버랜드 세트로 안착하는 그들의 뒷모습이 비춰진다. 물론 이런 방식이 영화처럼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배우들 등에 달린 와이어는 숨김없이 드러나고, 발밑에 깔려있는 집은 미니어처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총괄 프로듀서인 자단은 이 프로그램이 영화가 아니라 라이브 공연인 만큼 연극성을 지울 수 없으며, 오히려 그 ‘연극적인 순간’이 재미를 더해줄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도 실제 공연과 비교한다면 방송 쪽이 더 사실적이다. 무대에서 털옷을 입은 사람이 연기하던 개 ‘나나’는 TV 프로덕션에서 훈련받은 살아있는 개로 대체됐다. 또한 조명으로만 표현됐던 팅커벨은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탄생했다.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기술자가 배우의 움직임에 맞춰 실시간으로 팅커벨의 크기와 위치를 조정했다. 팅커벨의 기분에 따라 색상도 변하게 했다. 배우들은 팅커벨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없지만, 사전에 약속된 움직임을 기억해 연기한다. 팅커벨은 또한 말이 아닌 종소리 같은 음악으로 대화하기 때문에, 협력 음악감독이 그녀가 말하는 부분에 맞춰 정해진 음을 연주한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버전에서 거의 변형을 가하지 않았던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와 달리 <피터팬 라이브!>는 많은 부분을 수정해 TV 프로덕션만의 차별성을 확보했다. 먼저 영화 <라이온 킹>의 각본가인 아이린 메치가 후크 선장의 캐릭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본을 각색했다. 뮤지컬 넘버에서도 수정이 이루어졌는데, 작사가로 참여한 아만다 그린은 <피터팬>의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프로덕션에서 줄 스타인, 코메덴과 함께 ‘Never Never Land’를을 포함한 몇 곡을 추가로 작곡했던 아돌프 그린의 딸이다. 아만다 그린은 줄 스타인, 코메덴, 아돌프 그린이 만든 또 다른 뮤지컬 <도레미(Do Re Mi)>와 <세이 달링(Say, Darling)>에 삽입된 세 곡을 개사해서 <피터팬 라이브!>에 새롭게 집어넣었다. 피터의 솔로 ‘When I Went Home’은 1954년 초연 트라이아웃 때 객석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빠졌던 곡인데, 피터팬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부활했다. 인종차별적인 가사를 포함하고 있는  ‘Ugg-a-Wugg’는 ‘True Blood Brothers’라는 제목의 곡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생방송 뮤지컬의 과거와 미래 


NBC가 뮤지컬 <피터팬>을 생방송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NBC는 1955년 <프로듀서스 쇼케이스(Producers’ Showcase)>라는 프로그램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뮤지컬 <피터팬>을 방영한 적이 있다. <프로듀서스 쇼케이스>는 1954년부터 1957년까지 매달 90분짜리 에피소드를 컬러로 생방송한 TV 선집 시리즈다. 이 야심찬 시리즈는 콘서트, 뮤지컬, 연극,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을 스튜디오 방송으로 만들어서 37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뮤지컬 <피터팬>은 그중 7번째 에피소드로 방영됐다. 이때도 NBC는 극장이 아닌 자체 스튜디오에서 쇼를 생방송했다. 1945년 <피터팬> 초연에서 토니상을 수상한 피터팬 역의 메리 마틴과 후크 선장 역의 시릴 리차드를 포함해 모든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가 방송 버전에도 출연했다. 컬러 텔레비전에서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이 전막 상영된 최초의 사례였다. 이 방송은 무려 6천 5백만 명이 시청해, 그때까지 방송된 단일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메리 마틴은 이 작품으로 토니상에 이어 에미상까지 거머쥐었다. 열광적인 인기에 힘입은 <프로듀서스 쇼케이스>는 1956년 거의 같은 캐스팅으로 다시 한 번 <피터팬>을 생방송했다. 프로그램이 종연된 뒤인 1960년에도 NBC는 크리스마스 시즌 특집으로 메리 마틴이 출연하는 <피터팬>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생방송했고, 이후 녹화본이 홈비디오로 출시되었다. 


50년대 이후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생방송 뮤지컬을 NBC가 다시 꺼내든 건, 더 많은 생방송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몇 해 동안 방송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생방송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들이었다. NBC는 생방송 특집 프로그램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또 소셜 네트워크 상의 더 많은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녹화본이나 원하면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콘텐츠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했다. 총괄 프로듀서 크레이그 자단은 타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방송은 TV 엔터테인먼트의 미래이며, 미국의 DVR(Digital Video Recording) 세대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요즘에는 모든 것이 녹화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이 방송될 때 보려하지 않는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상식이나 스포츠만이 실시간으로 시청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NBC에서 선보인 생방송 뮤지컬은 작품성 면에서 뛰어난 평가를 얻지는 못했지만,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는 확실한 성과를 거뒀다. 시청자들은 트위터 상에서 ‘#TheSoundOfMusicLive’, ‘#ThePeterPanLive’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실시간으로 방송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리서치 업체 닐슨은 <피터팬 라이브!>가 방영됐을 때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 때보다 2배 이상 많은 방송 관련 트윗이 올라온 것으로 추정했다.  


NBC 그린블랫 회장은 생방송 뮤지컬의 성과에 만족하며 “잘 알려진 가족 뮤지컬이 충분히 존재하는 만큼 라이브 뮤지컬을 연례행사로 만들 수도 있으며, 이미 여러 극장주들이 그들의 뮤지컬을 텔레비전 버전으로 만드는 데 흥미를 표했다”고 말했다. 그린블랫은 2014년 5월 뮤지컬 <뮤직 맨(The Music Man)>을 제작할 권한을 얻었다고 발표했지만, 정확한 계획은 발표하지 않았다. NBC의 생방송 뮤지컬이 높은 시청률을 거두면서, 다른 방송사에서도 이 새로운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14년 4월에는 폭스가 2015년 뮤지컬 <그리스>의 생방송 버전을 제작할 것을 발표했다. 폭스는 인기 뮤지컬 드라마 <글리(Glee)>를 제작한 방송사로, <글리> 시즌4에서는 한 편의 에피소드를 ‘Glease’라는 제목의 <그리스> 스페셜로 꾸미기도 했다. NBC에 이어 폭스까지 생방송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면서 앞으로 생방송 뮤지컬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장르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6호 2015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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