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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SSUE] 공연과 영화 사이 ‘공연 실황 영상’ [No.135]

글 |송준호 사진제공 |UPI, 아담스페이스, 패뷸러스 2015-01-12 5,053

공연과 영화는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관람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현장성과 일회성이라는 특성에서는  매체의 성격이 첨예하게 갈린다.


그래서 공연을 촬영해 스크린에 투사하는   공연 실황 영상은 그런 특성이 혼재된  ‘대안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들이  잇따라 스크린에서 개봉되며  유명 공연들을 쉽게 접하게 됐다. 
공연과 영화의 중간 영역에서  이 실황 영상들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라이브 공연의 현장감을 더 생생하게



“춤출 때 기분이 어떤지 말해볼래, 빌리?” 면접관의 질문에 망설이는 빌리의 표정이 생생하게 클로즈업된다. 한 다리를 축으로 회전하는 빌리의 발에 카메라의 포커스가 맞춰진다. 빌리가 공중에 뜬 채 빙글빙글 도는 장면을 아래에서 잡아내거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을 위에서 포착하기도 한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아니다. 실제 그대로의 공연 실황을 다각도에서 촬영한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의 장면들이다. 

지난달 말 개봉한 이 작품은 웨스트엔드 최고의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빌리 엘리어트> 런던 공연 실황을 담았다. 영국 전역을 비롯해 9개국에 생중계된 이 영상에는 작곡가 엘튼 존의 코멘트를 시작으로 공연의 주역을 맡은 엘리어트 한나의 간단한 인터뷰와 무대의 뒷모습 소개 장면도 실렸다. 오리지널 빌리였던 리암 모어가 성인 빌리 역을 맡아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랐고, 27명의 역대 빌리가 총출동해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카메라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와 춤을 더 크고 분명하고 화려하게 강조하며 담아낸다. 객석에 앉아서는 볼 수 없는 각도와 거리로 카메라는 거침없이 들어가 숨결 하나 땀방울 하나까지 생생하게 포착한다. 이런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공연의 매력은 꼭 조명을 받는 배우가 아니어도 뒤쪽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배우들에게도 빠짐없이 눈길을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육안은 무대 전체를 한번에 담을 수 있어서다. 반면 카메라는 특정 피사체에 집중해 그 정서를 극적으로 증폭시키지만, 관객의 시선의 자유는 빼앗아 상상력을 반감시킨다. 하지만 역시 실제 공연의 아날로그적인 한계를 디지털 기술의 힘으로 스펙터클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여러 대의 카메라 활용과 상하좌우전후로 이동이 가능한 촬영 기법은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처럼 신체의 활용이 활발한 공연 장르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모던 발레 채플린>도 이런 실황 영상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찰리 채플린의 인간적인 모습과 그의 페르소나 같은 캐릭터 ‘리틀 트램프’를 대비시켜 그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하게 하는 컨셉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명사인 리틀 트램프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와 인간 채플린의 대조적인 움직임은 확실히 근접 촬영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페이소스로 유명한 리틀 트램프의 표정과 채플린의 고뇌는 카메라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점은 얼마 전 이틀간 재상영한 NT Live 연극 실황 <워호스>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도 한 차례 상영된 바 있는 이 영상은 실제 크기의 말 인형이 선보이는 섬세한 움직임과 연기를 HD 화면으로 생생하게 담아내 효과적으로 감동을 전달했다.  



공연의 참맛을 보호하며 키우는 촬영 기법



그렇다면 이런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공연을 더 화려하고 극적으로 만들면 더 멋진 영상이 되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 현장 관계자는 그 부분이 딜레마이긴 하지만, 공연의 아우라를 보호하면서 그것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철칙이라고 말한다. 공연의 문법과 영화의 문법 사이에서 의외로 공연의 문법에 가까운 태도로 작업에 임한다는 것이다. 이는 저작권의 문제도 있을뿐더러 ‘공연 실황 촬영’이라는 원래의 취지에 충실하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기준이다.

올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실황 영상은 지난 9월 개봉했던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팀은 지난 2011년에도 <모차르트 락 오페라 3D>를 제작했던 정성복 감독과 3D 프로덕션 패뷸러스다. 이들은 <모차르트 락 오페라>을 3D로 제작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에서 업그레이드된 기술력과 연출력을 선보였다. 이 작품을 보면 도입부와 결말부, 전환 신, 인터미션 등을 제외하고는 원래의 공연을 그대로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무대 위, 앞, 대각선 등 화려한 시점 이동을 편집해서 보여줄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패뷸러스의 오윤동 PD는 “해외 공연 실황을 국내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객석의 각 최적의 위치에서 가장 생동감있게 볼 수 있는 각도로 담는 데 치중했다”고 설명한다. 다른 좌석의 시각을 대리 경험할 수 있는 정도로만 촬영했다는 것이다. 



동원되는 카메라의 수는 영상의 퀄리티와 직결된다.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의 경우는 최대 일곱 대까지 사용됐다. 이를 통해 촬영은 관객이 없는 리허설, 관객이 있는 리허설로 나누어 진행된다. 공연의 특성상 매번 진행할 때마다 모든 게 달라지기 때문에 무관객 촬영 소스가 최종 영상의 기본이 된다. 이때는 카메라가 무대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고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유관객 촬영분은 이 영상에 현장감과 실연성을 주기 위해 관객의 모습이나 박수, 기타 소음을 담아내면서 사후 편집된다. 

최근 유명세를 떨친 NT Live의 경우 이런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객의 소음을 삽입하기도 한다. 특히 NT Live는 실연의 ‘중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방송용 카메라가 사용된다. 퀵 줌인, 퀵 줌아웃의 활용도 수월하다. 반면 공연 실황 촬영은 사전 준비 단계가 길다. 콘티를 준비해서 촬영에 돌입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큐 사인과 신 진행 계획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화면상 더 묵직하고 깊이 있는 영상을 위해 영화나 광고 촬영용 카메라를 쓴다. 

공연 실황에서 등장하는 도입부나 중요 부분의 그래픽 영상도 제한적으로 쓰인다. 영화적 재해석은 가급적 공연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만 이루어진다. NT Live의 무대가 다소 어둡게 보이는 것은 촬영 환경을 위해 조명 컨트롤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공연 실황 촬영은 ‘육안 관람’에 가깝게 환경을 재설정한다. 그런 다음 디지털 후반작업(Digital Intermediate)을 통해 선명한 화질 보정과 노이즈 제거 작업을 거친다. 이를 통해 관객은 마치 현장에서 보는 것 같은 생생한 영상을 만나게 된다. 최근 패뷸러스는 미국에서 아트 서커스 <카발리아>의 후속편인 <오딧세오>를 이런 방식으로 카메라에 담아왔다. 국내에서는 내년 5월에 본 공연보다 먼저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하지만 극장 개봉이라고 해도 국내에서는 흥행을 기대하지 않는다. 공연 실황 영상의 국내 예상 수요가 대략 5천 명 정도에 그치기 때문. 때문에 프로덕션이 목표로 하는 것은 해외 극장 상영이나 VOD, DVD 판매 수입이다. 오윤동 PD는 “영구히 소장하려는 수요자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최고의 퀄리티와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5호 2014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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