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얼마 전 전통을 소재로 한 창작발레 <왕자호동>과 <발레 춘향>을 잇따라 선보였다. 두 편 다 초연은 아니지만, 발레라는 서구의 춤 양식에 우리의 전통 문화를 담아내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공연계는 이처럼 전통을 소재로 한 재해석이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활발하다. 국립무용단은 지난달 장기와 체스를 상징화한 <토너먼트>를 선보였고, 국립현대무용단은 이번 달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전통춤을 설치미술, 패션디자인, DJ 음악과 결합한 <불쌍>을 무대에 올린다. 국립창극단은 이달 <메디아>를 시작으로 다음 달에는 해외 연출가가 재해석한 <춘향가>를 공개할 예정이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늘날 이뤄지는 모든 종류의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전통은 이미 빠질 수 없는 밑반찬이 되고 있다. ‘전통의 재해석’은 이제 특별한 실험 같은 게 아니라 창의력이 고갈된 현대에 주어진 통과의례 같기도 하다. 이런 양상에서 전통의 의미는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전통은 ‘현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 어르신 같았다면, 지금의 전통은 현대인들이 덧칠해 재활용하는 옛날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감상 모두 전통과 현대를 연속된 한몸이 아니라 단절된 별개의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종종 두 요소를 억지로 결합한 작품을 볼 때 느껴지는 이질감은 이런 시각에 뿌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각 단체마다 ‘전통 다시 보기’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그 전통 말고 우리 안의 전통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이런 제안은 전통이 고전처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맞닿아 있는 삶의 일부라는 통찰에서 비롯된다. 이런 변화는 전통을 또 다시 관습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우리 안에 있는 그것의 흔적을 탐색하게 한다.
<교향곡 7번> & <봄의 제전>
그동안 대표적인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로 국내 발레 대중화에 힘써온 국립발레단이 새로운 컨템퍼러리 발레 두 편을 동시에 선보인다. 19세기와 20세기 클래식 음악을 상징하는 베토벤과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발레에 접목한 <교향곡 7번>과 <봄의 제전>이 그것이다. 먼저 무대에 서는 <교향곡 7번>에서는 무용수들을 음표나 악기로 활용하여 곡의 멜로디와 메시지를 발레로 시각화한 우베 숄츠의 ‘교향곡 발레’를 만날 수 있다. 발레 팬에게는 <봄의 제전>이 더 흥미로운 작품일 수 있다. 20세기 초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글렌 테트리의 안무를 거쳐 어떤 작품으로 재해석됐는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10월 16일~1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남자들과 말러>
그동안 특정 국가의 춤을 집중적으로 소개해왔던 서울세계무용축제가 올해 선택한 곳은 덴마크다. 이중 하나인 그란회이 무용단의 <남자들과 말러>는 제목처럼 나이도 체격도 국적도 다른 8명의 건장한 남성 무용수와 구스타프 말러의 만남을 표현한 작품이다. 남자들은 엄숙하면서도 애수 어린 말러의 음악에 맞춰 날것의 남성성과 에너지를 표출한다. 작업장을 연상시키는 무대에서 이들은 거친 육체를 부딪치며 격투 신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남자들의 직설적인 몸짓과 이를 관찰하는 여성 가수, 유머를 잃지 않는 무대가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10월 8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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