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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커미트먼트> [No.130]

글 |조연경(런던 통신원) 사진 |Johan Persson 2014-08-25 4,574
청춘들의 소울 찾기 프로젝트  
THE COMMITMENTS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그리고 음악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누구나 <원스>를 떠올릴 것이다. 2006년 개봉된 영화를 무대에 올린 뮤지컬 <원스>는 청소기를 고치며 살아가는 아일랜드 청년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체코 여성의 감성이 어우러지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남자 주인공 글렌 핸사드는 영화 <원스>에 등장하기 15년 전, 영화 <커미트먼트>에서 먼저 기타를 잡았다. 1980년대 더블린에서 그저 그런 삶을 살던 노동자 계층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영화 <커미트먼트>에는 말랑말랑한 <원스>의 감성보다 더 진하고 거친 진짜 아일랜드가 담겨있다. <원스>가 체코와 아일랜드를 연결해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을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면 <커미트먼트>는 아일랜드를 깊숙이 파고들어 진짜 아일랜드가 어떤 곳이며 아일랜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데 무게를 둔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로디 도일의 소설 『배리타운』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커미트먼트』는 1987년에 출간됐다. 1991년, 이 소설은 감독 앨런 파커의 손에 의해 영화로 탄생한다. 하지만 원작자 로디 도일은 그 영화가 마음에 쏙 들진 않았던 것 같다. 지난 2011년, 영화 개봉 20주년을 기념하며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모여 ‘커미트먼트 밴드’라는 이름으로 전국 투어 공연을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로디 도일은 “진짜 밴드도 아니었던 그 배우들은 그 이름을 쓸 자격이 없다”는 말로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2013년 봄에 개막한 뮤지컬은 소설을 바탕으로 창작되었고, 로디 도일이 극작에 참여했다. 그렇게 완성된 뮤지컬 <커미트먼트>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한다. 실제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보는 듯한 콘서트 뮤지컬 <커미트먼트>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팰리스 극장에서 막을 올린 후 지금까지 1년 넘게 꾸준히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아일랜드의 소울이라고?

아일랜드 더블린 북부의 평범한 가정, 여전히 부모님 집에 함께 사는 청년 지미 래빗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1960년대 소울 음악에 푹 빠져 있다. 아래층에서 아버지가 시끄럽다며 천장을 쿵쿵 쳐대도 아랑곳 않고 음악을 즐기던 지미는 불현듯, 소울 음악을 하는 밴드를 직접 결성하기로 결심한다. 아일랜드 더블린 북부에 사는 백인 청년들이 흑인들의 감성을 담은 음악인 소울 음악을 한다고? 의아해하는 친구들에게 지미 래빗은 자신 있게 말한다. “아일랜드 국민이 유럽의 흑인이고, 아일랜드의 흑인이 더블린 사람이며, 더블린의 흑인은 우리 같은 북더블린 사람이지!”

그들은 즉각 오디션 공고를 낸다. “당신에게 소울이 있다면, 더블린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밴드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각양각색의 지원자들이 쉴 새 없이 지미의 집 초인종을 눌러댄다. 변변찮은 놈들끼리 모여서 무슨 작당을 하는 거냐는 아버지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지미는 계속 오디션을 진행하지만, 마음에 드는 멤버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지미는 우연히 친구 데코가 술 취해 필름이 끊긴 채 부른 노래를 듣고 그를 보컬로 영입한다. 데코는 노래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지미의 설득에 한번 해보기로 하고, 지미의 친구들은 데코를 보자마자 재수 없다고 싫어하지만 지미를 봐서 참기로 한다. 지미가 동분서주하며 멤버를 한 명 한 명 찾아 나가고, 그렇게 지미의 밴드가 모습을 갖춰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이가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미를 찾아온다. 조이는 비틀스와 함께 ‘All You Need Is Love’를 녹음했다고 주장하는 은퇴한 트럼펫 연주자다. 그동안 유명 밴드들과 수없이 작업했지만, 이젠 떠돌아다니는 생활에 지쳐 고향에 정착해서 청춘을 돕고 싶다는 베테랑 조이의 합류로 지미의 밴드가 완성된다. 밴드 매니저 지미 래빗과 보컬, 건반, 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 베이스 등으로 구성된 여덟 명의 밴드 멤버들, 그리고 세 명의 여성 백보컬까지 모두 열두 명이 모였다. 지미는 유명한 밴드의 이름에는 항상 정관사가 붙는다는 것을 강조하며, 밴드의 이름을 ‘커미트먼트’로 정한다.

가난한 노동자 계층 출신의 일용직 청춘들과 학생, 은퇴한 연주자까지 평범한 아일랜드 소시민들이 모여 결성한 대규모 밴드. 당연히 이들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조이가 연습실로 제공한 차고에 처음 모여 합주를 할 때부터 은근한 불협화음이 감돈다. 거친 말이 오가는 건 당연하고, 마음처럼 연주가 되지 않으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쁘다. 자기 멋대로 노래하는 보컬 데코와 그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멤버들의 갈등이 불거지질 않나, 연습이 잘 진행되다가도 혼자 재즈 음악에 푹 빠져 있는 색소폰 연주자가 판을 깨기도 한다. 새로 지은 별명이 마음에 안 든다며 토라지는 일도 있고, 여자 백보컬 세 명을 두고 아홉 남자가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매니저 지미가 머리를 싸매고 고군분투하며 토라진 멤버들 하나하나 달래고, 밴드의 사기를 올려보려고 노력하지만, 공부며 일에 바쁜 사람들이 하나둘씩 먼저 연습실을 떠나면 허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화합이나 배려와는 거리가 먼 아일랜드의 노동자들, 과연 그들은 아일랜드의 소울을 음악에 담아낼 수 있을까.



빠른 템포의 청춘 드라마

이 작품 안에서는 결심도, 행동도, 성장도, 와해도 빠르다. 이야기가 서서히 갈등을 향해 고조되는 것이 아니라 본론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툭 끝나 버리기 때문에 전개 속도가 더 빠르게 느껴진다. 지미가 밴드를 결성하기로 결정한 후 일사천리로 오디션을 보고 멤버들을 뽑는 동안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마음에 드는 밴드 멤버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초조하고 무력한 기운이 퍼지지만, 작품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도록 빠른 음악으로 오디션 실패담을 유쾌하게 풀어 나가는 것이다. 소울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멤버들이 소울을 익혀 나가는 연습 과정은 슈프림스(The Supremes)의 ‘You Keep Me Hangin’ On’을 더듬더듬 부르면서 시작해, 노래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곡이 빨라지고, 마침내 자신 있게 곡을 마무리하면서 소울 음악에 적응해가는 멤버들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중간 중간 지미와 조이는 번갈아가며 소울 음악에 대한 강의를 이어간다. 마치 오합지졸이었던 주인공들이 연습과 훈련을 통해 능숙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빠르게 보여주는 영화 속 장면을 보는 듯했다. 일반적인 뮤지컬처럼 인물 개개인의 속내를 선율에 실어 전달하는 오리지널 뮤지컬 넘버는 없었다. 배경으로 깔리는 연주곡과 밴드가 합주하는 곡은 대체로 1960년대에 유행했던 소울 음악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노래와 연주만 이어지는 콘서트, 혹은 밴드의 탄생과 좌절을 그려낸 음악 다큐멘터리 같다.

연습을 통해 성장하는 속도도 빠르지만, 싸우고 화해하는 것도 날렵하다. 보컬 데코가 혼자 튀려고 재수 없게 군다고 입을 모아 싫어하던 멤버들은, 데코가 노래하는 음색을 듣고는 그래도 목소리는 좋다고 감동하며 인정한다. 동네 술집에서 ‘커미트먼트’의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역 신문과 인터뷰까지 하면서 밴드는 승승장구할 것 같지만, 일은 지미가 바라는 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 그 와중에 데코는 혼자서 유로비전 오디션을 신청했다고 선언하기까지 한다. 

멤버들은 다른 모든 일에 관해선 불 같이 화내고 욕하다가도 금세 풀려 뒤끝이 없지만, 애정 문제만큼은 양보가 없다. 밴드 내의 여성 백보컬 세 명이 차례로 늙은 조이에게 마음을 주는 모습에 남성 밴드 멤버 전원은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고, 결국 갈등이 불거진다. 특히 가장 인기 많은 이멜다가 조이와 키스하는 모습을 다 같이 목격한 뒤에는 지미마저 밴드의 결속력을 다지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그렇게 밴드는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뿔난 관객도 달래는 음악의 힘

인형의 집처럼 집 안의 1, 2층이 드러나 있는 지미의 집이 무대 왼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뒤로는 상가와 집들이 들어선 북더블린 동네 골목이 보였다. 오디션 지원자들이 현관문을 쉴 새 없이 두드릴 때는 현관문을 여닫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세트가 크게 변화하진 않았다. 그러는 동안 무대의 오른쪽은 대체로 비어 있었다. 다른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트는 지미의 집, 합주 장소인 조이의 차고, 공연하는 동네 술집과 길거리 정도가 전부인데 그냥 소품을 갖다 놓은 정도라서 무대 구성이 정적이었다. 무대의 다양한 공간을 폭넓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에만 세트를 놓고 극을 진행하니까 작품이 역동적으로 살아나지 않고 심심했다. 무대 사용을 최소화해서 음악의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고 좋게 생각하고 싶지만, 공연을 보고 나와서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으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밴드가 결성되고 갈등하다가 몇 번 공연하고 결국 사소한 일로 와해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두 시간 내내 객석은 잔잔했다. 아일랜드 출신 배우들이 진한 아일랜드 사투리로 거칠게 말싸움을 했던 것 외에는 이 작품을 보고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조명이나 의상, 세트 같은 요소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무대 위에서 오롯이 주인공이 되어 돋보이는 것이 음악이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이도 어디서 들어본 듯한 유명한 소울 음악이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연주와 노래로 펼쳐질 때, 마치 잘 만든 한 편의 주크박스 뮤지컬, 혹은 콘서트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소울 음악을 잘 몰라서 소극적인 자세로 노래하던 백보컬과 밴드 멤버들이 점점 소울을 알아가고, 음악에 푹 빠지게 되면서 눈빛과 몸놀림이 달라지고 마침내 소울 충만한 모습으로 노래할 때, 그 기운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지는 것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커튼콜이었다. 뿔뿔이 흩어졌던 밴드 멤버들이 지미를 위해 돌아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노래한 후에 커튼이 내려오고, 다시 매니저 지미가 목청껏 밴드 ‘커미트먼트’를 소개하면, 지금까지 선보인 음악을 전부 합쳐놓은 것보다 훨씬 흥겨운 공연이 펼쳐진다. 커튼콜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는 라이브 밴드 콘서트 같다. 화려한 조명 밑에서 노련하게 관객들을 이끌어 나가는 배우들의 모습이, 마치 결코 실현되지 못한 밴드 ‘커미트먼트’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어딘지 심심했을 관객들의 마음을 달래줄 만한 강렬한 커튼콜이었다. 더 이상 아마추어 음악인이 아닌 배우들이 온 에너지를 폭발시키면, 소울 음악을 잘 모르는 관객들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시간이 이어진다. 1960년대 소울 음악을 아는 관객들에게는 그 시절의 향수를 선사하고, 당시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관객들에게는 신 나는 리듬을 통해 그 시절의 음악 세계를 소개하는 특별한 시간. 특히 보컬 데코 역의 킬리언 도넬리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다. 데코의 캐릭터를 반영한 뻔뻔하면서도 거만한 애드리브는 객석을 흔들어놓았다. 설령 공연이 불만족스러웠다고 해도 다 잊고 기분 좋게 극장 문을 나설 수 있게 도와주는 특별한 커튼콜이었다.

<커미트먼트>가 공연되는 팰리스 극장은 빨간 버스와 관광객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케임브리지서커스에 서 있다. 강렬한 빨간색 대문자로 쓰인 간판과 거대한 드럼과 황금색 트럼펫이 조화를 이룬 상징물은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잡아챈다. <커미트먼트>가 무슨 내용의 공연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지 몰라도, 팰리스 극장 전경과 ‘커미트먼트’라는 작품명을 찍어 가는 관광객이 상당히 많을 만큼 홍보 효과가 좋다. 그래서인지 <커미트먼트>는 현재 웨스트엔드를 지배하는 대형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나 <북 오브 몰몬>, <위키드> 같은 폭발력은 없어도 꾸준히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중이다. 원작 소설이나 영화 이상의 특별한 이야기는 갖추지 못했을지 몰라도, 생생한 음악으로 모든 걸 충족시키는 뮤지컬. 모든 게 완벽한 최고의 작품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에너지가 있는 <커미트먼트>는 흥겨운 무대로 <위 윌 록 유>가 떠난 웨스트엔드를 제법 오랫동안 지켜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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