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을 침탈당하고 치욕적인 피지배국으로 설움을 겪어야 했던 일제시대를 언급할 때 한국인이라면 무거운 역사의식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정기적으로 우리 정서를 자극하는 독도 관련 망발은 이러한 감정을 더욱 공고히 한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지배, 피지배의 문제에서 시선을 돌려 문화적인 차원에서 이 시대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이러한 시각은 1930년대 경성을 주목했다. 1930년대는 조선에 근대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왔고, 신문물과 함께 유입된 자유연애 사상과 모더니즘이 팽배했다. 경성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은 마치 역사의 무게를 빗겨난 해방구에 사는 신인류처럼 새로운 감수성을 흡입하며 근대적인 정신에 심취했다.
성기웅은 <조선형사 홍윤식>,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 <깃븐우리절믄날> 등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1930년대 경성을 주목해왔다. 이번 <소설가 구보씨의 1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왜 1930년대 경성에 관심을 갖느냐는 질문에 ‘지금의 도시 서울이 형성된 때이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는 시기’라며 이 시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밝혔다. 1930년대 조선은 근대와 전근대가 함께 호흡하는 시기였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전근대적 전통이 피부 깊숙이 흐르고 있었다.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고 안경을 써도 조선인으로서 핏속에 흐르는 전통적 사고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전통과 근대 문명의 충돌은 1930년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조선형사 홍윤식>에서 성기웅은 과학적인 수사를 펼치는 조선인 경감 홍윤식과 설화 속 존재인 도깨비들을 충돌시켜 이 시대의 갈등과 특징을 담아낸다.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
<깃븐우리절믄날>에서도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모더니스트들을 보여준다. 소설가 박태원과 시인 이상은 서구 사상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고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최고의 모더니스트들이지만, 열등한 식민지 국가의 2등 국민으로 태어난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한다. 이번 작품 역시 이상과 박태원 등 당대의 최고의 모더니스트들을 통해 1930년대 경성을 들여다본다.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박태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에서도 전작과 같은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극 형식에서 새로운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성기웅은 박태원의 소설을 연극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문장들을 그대로 희곡 안에 옮겨놓았다.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여러 배우들의 목소리로 읽는 연극적인 책 읽기라 할 수 있다. 성기웅은 소설가 박태원과, 소설 속 화자인 구보를 구분하여 두 명의 배우에게 맡기고, 소설 속 인물들과 소설 밖 인물들을 등장시켜 극을 풍성하게 하였다. 책 읽기를 극화했을 뿐만 아니라 영상과 조명, 음향을 첨가해 공감각적인 책 읽기 경험을 선사한다.
박태원의 원작은 소설가 구보가 아침에 나가 경성 시내를 돌아다니며 보고 겪은 이야기를 내면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전차에서 맞선 본 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하릴없이 돌아다니다가 피하고 싶은 동창을 만나는가 하면 마음 맞는 친구와 다방에서 여급을 희롱하기도 한다. 구보는 전형적인 룸펜의 나약하지만 자존심 강한 성품을 드러낸다. 속물을 경멸하고 그들과 경계를 두지만 그 자신 역시 다른 의미에서 별반 다르지 않고, 경멸하면서 한편으로 동경하는 이중 심리를 박태원의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이 묻어나는 문체로 들려준다.
기존의 정통극 형식을 파괴하고 문학과 극의 경계에 있는 책 읽기 방식은 흥미롭다. 근대와 탈근대의 갈등, 신문물에 경도된 모더니스트였지만 어쩔 수 없는 식민지의 2등 국민이었던 경계인의 입장이 이러한 형식과도 잘 어울린다. 성기웅의 말대로 1930년대 구보를 통해 현재 서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12월 2일~12월 31일 /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 708-5001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7호 2010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