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더뮤지컬>이 추천하는 11월의 문화예술행사
천재를 닮고 싶은 범인(凡人)의 사랑방식 <아마데우스>
내게 모차르트의 인상을 각인시킨 것은 그의 음악이 아니라, 영화 <아마데우스>였다.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만큼이나 우스꽝스런 웃음소리(엄밀히 말하자면 더빙 영화를 봤으므로 성우 배한성의 목소리)는 내게 모차르트라는 캐릭터를 심어주었다. 명동예술극장의 올해 마지막 작품은 피터 쉐퍼의 연극 <아마데우스>다. 피터 쉐퍼는 여섯 마리의 말의 눈을 멀게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에쿠우스>로 유명한 작가다. 1979년 발표한 <아마데우스>는 <에쿠우스> 이후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화 <아마데우스>는 피터 쉐퍼의 희곡을 토대로 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이 직접 각색한 작품이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초연 이후 여러 차례 공연되면서 조금씩 변화를 거쳤다고 하는데 이번 공연은 1998년 올드 빅 극장에서 명 연출가 피터 홀이 올린 버전을 공연한다. <아마데우스>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살리에리이다. 신의 재능을 부여받은 모차르트에게는 눈을 반짝이며 동경의 마음을 갖게 되지만, 천재적 재능을 알아볼 순 있지만 소유하진 못한 살리에리에게 느끼는 감정은 공감이다. 질투 때문에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살리에리를 비난하기보다는 동정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멀지 않은 이야기이어서인지 천재와 범재의 상징이 되어버린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이번 <아마데우스>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것은 음악이다. 뮤지컬계의 모차르트, 특히 웃음소리는 그에 필적할 만한 변희석 음악감독이 라이브 연주로 모차르트 곡을 들려준다. 피아노 4중주가 라이브로 연주되고 드라마 전개에 따라 살리에리의 곡도 들을 수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 시기는 1,2,3기로 나누어지는데 그런 점들을 고려해 시기별 음악적 특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배치했다고 하니,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본다면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살리에리 역에는 이호재,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 역은 김준호가 맡았다. 실제 나이로 아버지와 아들 뻘인 이들의 경쟁 구도는 천재와 범인의 갈등이지만, 다르게 보면 지난 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갈등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으로 복작거리는 명동거리를 뚫고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만나러 갈 날을 올해 마지막 달력에 동그라미 쳐 두어야겠다. | 박병성
▷12월 7일~2012년 1월 1일 / 명동예술극장 / 1644-2003
12월에 눈이 오지 않으면 <호두까기 인형>
11월에 비가 내리면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을 듣는 식으로, 어떤 날, 어떤 시기에 찾게되는 작품이 있다. 이런 심리가 너무 빤하고 유치하다는 이들도 있지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은 매일에 작게라도 반짝거리는 무엇을 숨겨두는 일이다. 언제 봐도 좋지만 어떤 날에 보면 특히 더 좋은 공연이라면 역시 <호두까기 인형>이 생각나는데 매해 12월마다 하도 많이 공연을 하다 보니 발레 댄서들은 ‘호두’라면 고개부터 젓는 경우가 많단다. 무대에 서는 이들의 애교어린 투정이야 어떻든, 1년에 딱 한 번 발레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아니면 평생 처음으로 보는 이들에게도 <호두까기 인형>은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환상적인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있다. 그리고 작은 소녀가 하룻밤 환상 속에서 어른이 되어 경험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공유하는 즐거움은, 실제 어른이 되어서 보는 세상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도 위로가 된다.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공연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질문을 매해 받는데,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은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고, 국립발레단의 공연은 좀 더 춤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어린 친구와 함께라면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을, 데이트를 겸하는 관극이라면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권하고 싶다. | 김영주
김동률 콘서트
신경숙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
신경숙이 8년 만에 단편 소설집을 냈다. 여기에 실린 일곱 편은 외부의 청탁이 아닌 내부의 구호 요청에 의해 쓰인 것들이라고 한다. “누구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마다 이 작품들을 쓰지 않으면 다른 시간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를 두 손으로 붙잡는 심정”에 가까웠다는 작가의 말이 어떤 느낌인지 사실 난 알지 못한다. 그저 피상적으로 단어들이 가진 의미를 짚어보며, 작가가 내부의 깊은 곳에서 보내온 찌릿한 신호에 화답하며 세상을 향해 한 발 더 내딛는 작업에 경외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글이 이런 부름과 응답의 산물이라는 것도 지금은 가닿을 수 없지만 언젠가는 내가 강력하게 체감하여 얻은 깨달음이 되길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가장 관심 받고 있지 못한 나 같은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이 사실은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게 새삼 감동적이다. | 이민선
흩어진 얼굴들 백현진 개인전 「열세점+보너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순간을 대부분은 잊고 살게 되지만 때로는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다.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 납니다…’ 요란한 곳에서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순간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해당한다. 듣는 사람을 바다 맨 밑바닥보다 더 깊은 곳으로 침전시키는 그 괴기한 음색이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찍는 이 전방위 아티스트를 보면 어떻게 그런 재주를 부리는 걸까 신기하지만 어쩌면 그건 그의 삶의 방식이 단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걸 표현하고 그걸 데이터로 남기는 것, 그것이 그의 룰이다. 따라서 시인이자 화가이자 뮤지션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 그의 네 번째 개인전인 「열세점+보너스」에서는 무질서한 선과 색으로 거칠 것 없이 그려진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이 알 수 없는 얼굴들은 그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관찰했던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한다.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걸 어떤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제대로 잘하기까지 하는 사람. 백현진을 수식하는 수식어는 넘쳐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표현은 역시 이 문장이다. ‘모든 계절에 어울리는 남자’.
▷11월 17일~12월 31일/ 두산갤러리 | 배경희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9호 2011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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