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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앳디앤드] 세계 3대 쇼를 보았는데… [No.97]

글 |김영주 2011-10-25 3,994

추석 연휴에 본가에 내려갔다가 얼떨결에 가족과 함께 상해를 다녀왔다. 패키지 여행의 일정표에서 ‘송성 가무쇼’와 ‘상하이 서커스’, 황포 유람선이 들어가 있는 걸 보고 효도 관광 분위기가 되겠구나 예상을 했다. 과연.
오나라와 남송의 수도였던 항주는 아름다운 호수 서호와 미인이 많기로 유명해서 예부터 소동파를 비롯한 시인들의 헌사를 받았던 고도다. 이곳에는 옛 성을 복원해놓은 송성이라는 테마파크가 있는데, 그 중심부의 극장에서는 80억 원을 투자해 만들었고 지금까지 500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는 송성 가무쇼가 하루 네 차례씩 열린다. 평일 한낮이었는데도 2천 석 규모의 객석이 제법 차 있었고 관객들은 대부분 단체 관광을 온 중장년층 이상의 중국인과 한국인들이었다. 제작사는 라스베이거스 O쇼, 파리 리도 쇼와 함께 송성 가무쇼가 세계 3대 쇼라고 자랑하고 있다. 물론 항주에서 처음 들은 이야기다. 라스베이거스와 리도에서 졸았다던 동행이 이곳에서도 졸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약간의 일관성을 느끼기는 했다.

 


전체 4부로 구성된 이 공연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려니 막막한 기분이 든다. 여는 무대는 태양의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익살스러운 광대극인데 곧바로 이어진 1부는 문명의 탄생부터 남송 황제의 생일 축하연까지 재현한다.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 각국에서 파견된 아리따운 무희들이 전통 춤을 추는데 아라비아부터 조선까지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미인들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발레의 디베르티스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이어지는 2막은 남송의 이순신 격인 악비 장군의 영웅적인 전투를 무대에 옮겼다. 여기서부터 물음표가 뜨기 시작한다. 고귀한 여인이 맡긴 어린아이를 품고 일당백 전투를 벌이는 장수는 아무리 봐도 조자룡인데 왜 악비 장군이라는 건지, 중국의 유명한 장군은 모두 주군의 어린 아들을 한 번쯤은 구했던 것인지 궁금했지만 말 여섯 마리가 무대를 가로지르면서 달려 나가고 대포가 연이어 터지고 불길이 타오르고 빗줄기가 쏟아지고 연못이 떠오르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기분이 들었다. 이어지는 3부와 4부에서는 서호 밑에 살던 백사가 아름다운 처녀가 되어 사랑에 빠진 이야기, 중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인 양산박과 축영대 등 유명한 민담과 설화들을 서커스, 뮤지컬, 레이저 쇼로 풀어내고 무희들이 VIP석의 손님들에게 지역 특산물인 용정차 한 잔씩 돌리는 훈훈한 서비스도 한다. 대단원은 1부의 황제와 황후, 그리고 무희들이 나와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무대에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대륙의 스케일이나 인해전술로, 절제의 미덕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펼쳐 보여준 극단적인 휘황찬란함이야 서울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지만 그 저변에 깔린 목적의식이랄까 방향성이 참으로 친숙했다. 항주는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아름다운 고장이지만 관광객들을 유혹할 만한 강력한 뭔가가 아쉬운 곳이다. 외부인의 시선을 끌 만한 화려한 공연을 관광 상품으로 육성시키는 것은 최근 몇 년간 중국의 주요 지역에서 앞다투어 벌이고 있는 사업이라고 한다. 중국 문화 예술계의 명망 높은 이들이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제 이런 쪽에서 이름이 안 보이면 이상한 장예모 감독이 총감독을 맡아서 밤의 서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상서호>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단다.
모든 극장이 현대의 신전일 수도 없고, 모든 공연이 제의적인 엄숙함을 갖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송성 가무쇼를 보면서 밑도 끝도 없는 구성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관객은 지금까지 이 쇼를 봤다는 500만 명 중에 몇이나 될까. 따지고 보면 브로드웨이를 먹여 살리는 뉴욕의 관광객과 항주의 관광객들이 기대하는 것에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일상에서 벗어난 이국의 하룻밤을 특별하게 빛내줄 환상적인 무엇. 브로드웨이에서는 브로드웨이 나름으로, 항주에서는 항주 나름으로 자신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로 쇼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쇼를 보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차이가 있다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은 관광객을 타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송성 가무쇼와 같은 목적과 유사한 양식으로 만들었던 많은 공연들이 그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가 뭘까. 무대에 설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 수의 차이인지 기획력의 차이인지 자본의 차이인지 정부 지원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이도 저도 없고 하다못해 관광객 수도 적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애초에 접근 방식부터 달라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세계 3대 쇼를 자처하는 대륙의 가무 쇼를 보고 나오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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