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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발트에서 발칸까지] 국경의 밤 [No.96]

글 |김일송(씬 플레이빌 편집장) 2011-10-04 3,681

에스토니아 마지막 여행지는 발가(Valga)였다. 대도시도, 관광지도, 그렇다고 이렇다 할 휴양 시설이 있는 휴양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촌락에 불과한 발가를 찾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가만큼이나 조그만 촌락에서 출발한 탓도 있겠지만, 브루에서 발가로 가는 버스는 오전 한 대, 오후 한 대, 하루 단 두 대 뿐이었다. 그마저도 버스는 소형 완행버스. 직선거리로 이동했다면 두 시간도 걸리지 않을 짧은 거리였지만, 굽이굽이 산골 마을을 돌고 돌아 목적지에 당도했을 땐 갑절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발가에서 하차하는 외지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너의 어깨에 나의 손을 올리니 쑥스럽게도 시간은 마냥 뒤로 흘러가

시간 없는 곳에서 정지한 널 붙잡고 큰 소리 내지 않으며 얘기하고 있구나

…….

앞으로 돌진하는 내 현실, 전투하듯 우리 사는 동안에도 조금도 바꾸지 못한 네 얼굴,

의젓하게 멀리 나를 보러온 청년이 된, 그러나 내겐 소년인 내 친구, 그대여.

 

루시드 폴, `국경의 밤`에서

 


사실 이름 없는 시골 동네나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뒷골목을 전전하는 것은 취향이자 기질이기도 하다. 물론 군대 몇 개 사단이 행진해도 무리가 없을 너르고 긴 대로(大路), 바벨탑과 같은 압도적인 고도로 인간 능력의 무한성과 존재의 유한성을 동시에 각성케 하는 마천루, 이런 것들에 왜 눈이 홀리지 않을까. 그 장관을 어찌 무시하고 못 본 척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런 황홀경 앞에서는 연신 셔터를 누르며 연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대로 한 컷, 한 컷 조심스럽게 정성들여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곳이 있다, 그런 대부분은 촌락 뒷골목이다.
대도시의 빌딩 아래서 사람들의 삶을 읽어내기란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삶을 읽어낼 수 있는 곳은 그늘진 곳이다.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들숨과 날숨의 숨결이 느껴지는 삶은 대체로 거기 있었다. 옷깃을 마주치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좁다란 골목길, 군데군데 금 간 틈 사이로 아이들의 소리가 새어나오는 낮은 담벼락 아래. 사설이 길었다.
하지만 순전히 그런 순수한 이유, 시골 동네의 뒷골목을 산보하려는 이유만으로 발가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발가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만나는 접경 지역. 재미있는 건 에스토니아의 발가 바로 옆에 위치한 라트비아의 마을 이름이 발카(Valka)라는 사실이다. 발가와 발카의 차이가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음차의 문제는 아니다. 철조망은 없지만, 둘 사이에는 국경선이 존재하고, 덕분에 이곳은 과거 한때 ‘발트의 베를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먼 길을 돌아 이곳을 찾게 만든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발가와 발카 사이에 건너기 힘든 강이나 넘기 힘든 산이 없는 걸로 보아, 둘은 오래 전 분명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공동체였을 것이다. 둘이 서로 다른 국가로 분리되어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근대의 국가 개념이 생기고도 한참이 지난 후인 1920년이나 되어 둘은 국가를 이룰 수 있었고, 이후 둘의 역사는 분리와 통합의 지난한 과정으로 점철되었다. 독일로부터의 독립 및 분리, 소련 점령으로 인한 통합,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한 분리. 그리고 셍겐협정 가입을 통한 다시 한 번의 통합.
거듭되는 분리와 통합을 거치는 동안 이웃 마을의 선남선녀들이 가족을 이루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991년 후 셍겐협정에 가입하기 전인 2005년까지, 양국의 국민들은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가 없었다. 이웃에 사는 친척을 만나고 싶어도, 국경을 넘을 때면 여권 심사를 받아야만 했다. 의미를 상실한 국경을 고수하는 건 미련한 일이었다. 결국 위정자들은 스스로 세운 철조망을 스스로 허물고 셍겐협정에 가입했다. 셍겐협정은 조약을 체결한 가입국의 국민들 사이에 이동의 제약을 없애주었다. 나는 그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그것을 상상하는 국경의 밤은 짧았다. 아침이 밝는 대로 국경 검문소를 향했다. 라트비아로 국경을 넘는 일은 간단했다. 검문소는 없었다, 제복을 입은 군인도 없었다. 여권 검사도 없었다. 대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환전소가 있었다. 준비해 간 여권은 환전을 할 때 필요했다. 이후로 라트비아 국경을 넘었음을 깨닫는 것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머릿속으로 환율을 계산하는 순간뿐이었다. 발가와 발카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어딜 가도 마찬가지였다. 셍겐협정에 가입한 모든 국가 사이의 월경은 실로 간단했다. 그리고 국경을 넘었다는 실감은 대부분 환전소에서, 매표소에서 일어났다.
더러 언어를 통해 변화를 느낄 수 있지 않냐 반문해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둘 다 각기 고유한 언어를 사용했지만 나에게는 모두 알아들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제 3세계의 언어일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비슷한 얼굴의 북유럽인들. 시대도 다르고 양식도 다르게 지어졌지만 어딘가 본 듯한 건물들. 기시감을 일으키는 비슷한 풍경들, 그리고 풍경들.
이후로 서로 다른 국경에서 국경의 밤을 세 번 더 보냈다. 라트비아의 리에파야에서, 리투아니아의 니다에서, 폴란드의 자코파네에서. 그러나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잠드는 국경의 밤은 없었다. 그리고 예정대로라면 세 곱절, 네 곱절의 밤을 더 보낼 것이다. 그중 지금과는 다른 국경의 밤이 한 번은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런 밤은 결국 사람이, 사람의 마음이 만든다는 사실 또한.

 

* 제목이기도, 인용하기도 한 노래 ‘국경의 밤’은 루시드 폴이 유학 중인 당시에 친구의 부음을 듣고 만든 곡이다. 지난달 비록 지우는 아닐지언정, 온라인으로 말을 주고받은 지인의 부고를 접했다. 지면을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전한다. 짙은 애도는 지인과 깊은 정을 나눴던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것은 남은 사람을 위한 나의 예의다.  

 

글쓴이 김일송은 씬 플레이빌의 편집장, 일상을 툴툴 털고 발자국이 적은 곳을 골라 디디는 아웃사이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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