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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열흘 붉은 꽃의 선물 [No.89]

글 |김영주 2011-02-28 4,209

리투아니아가 어떤 나라인지 아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아주 단편적인 정보뿐이었다. 구소련 독립국 중 하나이고, 흑해 연안에 있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발트 3국으로 엮이고… 이미지화 되지 못하는 사실들을 더듬거리다가 문득 국내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는 리투아니아 출신 연출가들과 그 작품이 생각났다. 안개 속에 싸여 있듯이 까마득하던 먼 곳은 그때에야 실재하는 동유럽의 연극 강국으로 한결 선명하게 다가왔다.
지난 11월 마린스키 발레단의 내한 공연이 끝난 후 흥분한 관객들은 극장 로비와 트위터에서 ‘러시아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탄성처럼 쏟아냈다. 인종 차별 테러로 한국인 유학생이 살해당하면서 최악으로 떨어졌던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는 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마린스키의 경이로운 무대에 힘입어 다소나마 회복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2011년 현재 한국에서 리투아니아의 네크로슈스나 러시아의 마린스키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이돌 스타들이 아닌가 싶다.
백범 김구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현해탄을 건너 온 반짝이는 아이들의 춤과 노래, 웃음에 홀린 일본인들이 한국에 애착을 느끼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는 어떤 말을 했을까. 알 수 없지만 내 생각으로는 적어도 ‘열도 정복’이나 ‘문화 정벌’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을 듯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부연했던 사람이니까. 백범에게 문화란 뺏고 빼앗기다가 정복하거나 정복당하는 무엇이 아니라, 나와 남이 함께 지금보다 나을 수 있게 해주는, 나누는 만큼 더 많이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꿈이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연예 기획사와 아이돌 스타들을 리투아니아의 네크로슈스나 러시아의 마린스키와 함께 묶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연극과 무용은 공연 예술 분야 중에서도 자본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장르인 데 비해서, 아이돌 산업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첨단에 핀 꽃이다.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활로를 찾은 점이나 극단적인 승자 중심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기본 공식이 선명하게 읽힌다. 그 이전에, 아이돌 스타의 무대에서 인간의 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나 지상에서 재현되는 지고의 가치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애초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보는 이들을 흥분시키지만 연속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 예술이 영원불멸할 위대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잘되는 하나에 ‘올인’을 하고,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한 살벌한 경쟁을 통해 빠른 속도로 수준을 높인 다음 과포화 상태에서 소멸하는 악순환을 어디서나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의 평균 수명이 5년이라는 말은 별다른 반론 없이 받아들여진다. 지금의 한류가 얼마나 갈 것인가, 실제로 얼마나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놓고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도 요란하다. 모든 것이 경제 가치로 환산되어야 하는 나라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돌 가수와 그들의 음악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양산형 상품으로 파악하고 철저하게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땀과 눈물로 꿈을 키우는 ‘사람’과 그렇게 완성된 꿈을 바라보는 더 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저 화려한 무대에서 빛나는 예쁜 꽃이 단지 잠시 피고 져버린다고 해도, 그 꽃의 아주 많은 부분이 치밀한 시스템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폄하에 근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아주 많은 사람, 그리고 그 이전에는 각자 한 사람인 대중의 마음을 상대할 때는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단지 산업이 아니라, 백범의 말처럼 나와 남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의 몇 안되는 마법이니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9호 2011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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