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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안거와 피정, 존재의 암실에 머무름 [No.118]

글 |허은실 2013-08-07 4,284

어둠 속에서 어떤 희미함이 일어난다.


푸른 연기이거나 영혼의 기척인 듯 피어오른 그것은, 이제 점점 선명해지며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다. 기록되었으나 보이지 않던 잠상이 어둠 속에서 몸을 얻는 ‘나타남’의 순간!  

 

아날로그 사진작가들에게 가장 특별한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한다. 필름에 저장된 기억이 암실의 어둠 속에서 현상(現像)되는 찰나에 대해, 인화지 위에 서서히 상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의 희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암실이라는 어두운 공간에 혼자 있다는 기분의 묘함에 대해서도. 

 

기록된 것들이 제 모습을 찾기 위해선 암실(暗室)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렇다. 누구나 ‘자기만의 암실’이 필요하다. 혼자 고요해질 수 있는 어둠의 방. 그런 공간과 시간 속에서 우리 존재는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어두움과 기다림. 혹은 어두움 속에서의 기다림. 세상에 나오기 전 자궁 속에서 웅크렸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어두움과 기다림, 이 두 가지는 존재의 본질적 양태인지도 모른다.

 

불가에서는 하안거 기간이다.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석 달, 화두 하나 붙들고 묵언과 좌선정진 등으로 수행에 전념하는 일이다. (올해 조계종의 화두는 ‘참나는 어떤 것인가’라고 한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인도의 우기는 덥고 습해서 탁발을 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한곳에 머물러 수행을 했던 것이 안거의 유래다. 하안거를, 여름비를 피한다는 의미로 ‘우안거’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알려져 있다시피 거기엔 생명에 대한 철학도 깃들어 있다. 우기에 밖으로 나오는 곤충이나 벌레, 풀이나 꽃 같은 미물을 밟지 않기 위한 것. 돌아다님을 금함으로써 뜻하지 않은 살생을 피하는 것이다. 

 

 

‘안거(安居)’, 편안히 있음.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이 말에 오래 붙들려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늘 발이 부어있던 청춘의 어떤 시기였을 것이다. 그만 앉고 싶고, 눕고 싶고, 그리고 자궁 속에서처럼 웅크리고 싶었던 시절. 평안을 구하였으나 마음이 사납게 나부끼던 그때 이후로 ‘안거’라는 말 자체가 말하자면 내겐 하나의 화두였다. 

 

가톨릭에는 ‘피정’이라는 말이 있다. ‘피소정념(避騷靜念)’ 혹은 ‘피세정수(避世靜修)’의 준말이라고 한다. 소란한 세상을 떠나 묵상과 침묵 기도를 통해 자기 내면을 깊이 살피는 종교적 수련이다. 피정(避靜), 한자로는 ‘피하여 고요해짐’이다. 피정(retreat), 영어로는 ‘후퇴하다, 철수하다. 물러나다’란 뜻이다. 전쟁 같은 일상에서 잠시 후퇴하는 것, 시끄러운 세상을 피하여 고요히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불교나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안거와 피정이 필요하다. 언어로부터의 피정, 시계로부터의 피정. 침묵 속의 안거, 영혼 속의 안거. 그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자신 안에 머무름’이다. 그리하여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리듬을 찾는 일이다.

 

올여름의 피서는 그런 것이었으면 한다. 안거와 피정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암실을 갖는 것, 자발적 유배와 고립의 시간을 갖는 것. 고요한 산사나 외딴 여행지라면 더욱 좋겠지만 굳이 ‘멀리’가 아니어도 좋으리라.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홀로 객석에 앉아보는 시간 또한 ‘존재의 암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홀로 고요함’ 속에서 마음의 인화지 위에 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를. 잃어버린 자아의 모습이 서서히 떠오르는 순간의 희열을, 당신 또한, 맛보기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8호 2013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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