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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어떤 상상, 이상하고 절망적인 소설 같은 [No.117]

글 |허은실 2013-07-10 3,796

프랑스 68혁명 당시 관계 장관 대책회의가 열리는 자리. 총리와 장관들을 기다리는 파리 경찰청장은 19세기 상징주의 시인 네르발의 ‘시집’을 읽고 있었다. 문화부 장관이 아니라, 경찰청장이 말이다! (그 난해하다는 상.징.주.의. 시를 말이다.)

‘그의 장례행렬에는 염소와 소, 양떼들이 울면서 뒤를 따랐다.’
극작가였던 버나드 쇼가 죽었을 때, <런던 타임즈>에 이런 사설이 실렸다. 채식주의자라 평생 육식을 하지 않았던 그를, 그의 식으로 기린 것. ‘소설’이 아니라, ‘사설’에서 말이다!

뉴스 시간에 앵커는 시를 한 수 읽고 뉴스를 진행한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국민들은 100여 편의 시를 외우고, 극장에서 시 낭송회가 열리는 날이면 입장권은 일찌감치 매진된다고 한다. 시인들의 판타지가 아니라, 이란인의 리얼 스토리란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문화 융성’을 3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제시했었다. ‘문화 융성’이란 말은 어쩐지 ‘민족 중흥’이라든지 ‘인류 공영’이라든지, 초등학교 때 외우던 교육헌장의 말들을 떠올리게 한다. 갑각류처럼 딱딱하고, 너무 거창해서 아리송하다는 면에서 말이다. (‘창조경제’라는 창조적 용어도 그렇지만 어쨌든)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이고,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라는 취지라고 한다. 문화도 국력의 수단으로 여기고 국민의 상상력도 돈이 될 콘텐츠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융성하게 된 문화를 창조경제를 위한 견인차로 삼겠다는 것이다. (결국 창조경제의 비밀은 이것?!!!)

 

 

문화나 예술은 ‘쓸모없음’이 쓸모이다.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고 그래서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런 문화를 경제를 위해 복무시키겠다는 것 같아 문화 언저리 종사자로서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어쨌든 3대 국정과제에 ‘문화’가 포함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나 관료들부터 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떨까?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은 역시 책일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자인 얀 마텔이 자국 캐나다 총리에게 문학서를 권하면서 쓴 편지들이 얼마 전 책으로 엮여 나왔다. 얀 마텔은 오직 문학작품만 100여 권을 추천했다. 정치인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이 바로 문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묻는다. “문학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 무엇을 근거로 상상할 것인가” 국내판에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란 제목이 달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리하여,

 

이상(李箱)의 시집을 읽고 있는 이성한 경찰청장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역시 이상한가?) 김수영의 「절망」을 읽고 정치권 소식을 전하는 <9시 뉴스>의 앵커를 그려본다. (역시 절망적인가?)  그야말로 ‘소설 쓰고 있는’ 사설 말고, 문학적 감수성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배어있는 사설을 읽고 싶다. (나야말로 소설 쓰는 건가?)
 
‘문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 또 다른 지도자로는 역시 백범이 떠오른다. 그는 경제력이나 국방력보다 문화의 힘을 원한다고 했다. 백범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도 어쩌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까? 

 

* 그러고 보니 시인 김수영이 이 세상을 떠난 건 68혁명이 일어난 1968년, 바로 이 달 6월이었다. 그의 45주기를 기념해 「절망」의 전편을 옮기고 싶지만 지면이 부족하니, 꼭 한 번 찾아 읽어보시기를! 얀 마텔 흉내를 내자면 ‘독자여, 절망을 읽으십시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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