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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프리뷰] PLAY [No.106]

글 |이민선 2012-07-26 4,075

아름다운 댄스(인생)를 위한 입문 <댄스 레슨>

춤을 소재로 한 공연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는 일단 댄스 퍼포먼스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혼자 추는 춤은 댄서의 감춰진 내면을 드러내는 기제로서,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화해의 드라마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커플의 몸동작이 유려하게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호흡도 잘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두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합일된 댄스가 어떤 건지 제대로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그것이 얼마나 멋질까 짐작해보게 된다. 하여튼, <댄스 레슨>도 두 남녀가 춤으로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결국 둘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은 로맨스? 아니다. 뭐, 우정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남자가 게이냐고? 앗, 어떻게 알았지! 남자는 40대 중반의 댄스 강사이자 게이. 그의 학생은 어머니뻘 되는 늙고 부유한 부인. 연하남과 춤바람이 난 노년의 격정적인 멜로를 보여주는 공연이었다면 중년 관객들을 더욱 만족시켰을까. <댄스 레슨>은 무감각해져가는 등을 손끝으로 억지로 쓸어내리기보다는 쉽게 붓는 발을 꼭꼭 주물러줌으로써 관계를 진전시키는 작품이다. 자극보다는 위로가 필요한 나이의 사람들, 아니 어떤 나이라도 위로는 필요하니까, 친구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힐링 레슨’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릴리는 댄스 강사 마이클로부터 개인 교습을 받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한 종목씩 여섯 주간, 여섯 가지 춤을 배우기로 한다. 플로리다 해변에 위치해 있고 전망이 죽여주는 릴리의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 배울 만큼 배웠고 보수적인 릴리와 자유분방하고 다혈질인 마이클이 처음부터 잘 어울릴 리 없다. 비호감인 첫인상,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첫 레슨도 제대로 못 마칠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것은 티격태격하며 올라간 체온 때문이다. 차갑고 형식적인 매너가 오히려 사람을 외롭게 하던가, 싸움의 불똥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돌연 약이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늙어가지만, 진짜로 늙기 전에는 그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잃고 슬픔을 경험하지만, 타인의 아픔이 내 것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하지만 몰랐던 것을 알기 위해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늙음의 부작용과 두려움은 무엇인지, 커리어도 사랑도 미흡하기만 한 중년 게이의 고달픔은 무엇인지, 릴리와 마이클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함께 수다를 떨고 춤을 출 수는 있다. 릴리는 실력이 수준급임에도 불구하고, 댄스 레슨이 아니라 댄스 파트너가 필요해서 강사를 고용했다. 인생을 독고다이로 살아가려는 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친구가 필요한 심리적 약자다. 그래서 <댄스 레슨>은 노인이나 게이가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모든 심리적 약자를 위로하는 작품이다. 다정한 위로의 낯간지러움을 거부라도 하듯이, 그 위로는 거칠고 코믹한 대사 속에서 툭툭 튀어나와 상대와 관객의 허를 찌른다.

 

TV 드라마 속 대표 어머니 고두심이 데뷔 40주년을 맞아 연극 무대에 선다.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도록 곱게 화장을 하고 춤에 맞는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는 릴리로 분한다. 연희단거리패에서 활약하다 올 상반기 <모비딕>에 출연해 뮤지컬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지현준이 댄스 강사로 출연한다. 그의 수준급 댄스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첫째 주 레슨, 스윙을 시작으로 탱고와 비엔나 왈츠, 폭스트롯, 차차, 그리고 컨템퍼러리 댄스까지, 여섯 가지 댄스를 감상할 수 있다. 각 춤이 이름 말고 또 뭐가 다른지는 <댄스 레슨>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댄서의 의상으로, 댄스 강사의 귀에 쏙 들어오는 자극적인 배경 지식 강좌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커플 댄스로, 관객들을 위한 맞춤형 ‘댄스 레슨’이 100분간 펼쳐진다. 
| 7월 24일 ~ 9월 5일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1588-0688

 

 

 

계시받고 매달려 승천하다 <전명출 평전>

평전.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 라고 사전에 명시돼 있다. <전명출 평전>은 전명출의 일생을 보여주되, 조카인 평자가 간간이 등장해 전명출 인생의 주요 장면에 주석을 단다. 전명출이 언제 어디에 머무르며 무엇을 했는가. 그는 정치·사회적 인사도 아니고 분명 한낱 소시민일 뿐인데, 그의 인생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궤를 함께한다. 전명출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을 전후해 태어나 청년기에 새마을운동과 민주화 항쟁을 경험하고, 타협과 꼼수로 점철된 정부 아래에서 중·장년기를 버텨온 부모 세대들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역사를 경험했다. 태생은 권력과 거리가 멀지만 권력의 신발 끈에라도 닿아 있는 또는 닿으려고 애쓰는 전명출의 주요 경력 사항들을 소개함으로써, <전명출 평전>은 격변기를 보냈고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를 보여준다. 젊었을 적에 그가 바랐던 것은 소 스무 마리였는데, 고향을 떠나선 대통령과 같은 전 씨로서 정부가 외쳤던 ‘정의 사회 구현’을 바라고, 말년에는 고향 강가의 땅값을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나눠가지며 ‘공정 사회 실천’을 꿈꾸게 된다. 작은 것을 바랐을 뿐인데도 결국엔 늘 쫓기는 신세가 되지만, 전명출은 그런 기구한 인생도 하늘이 내려준 계시이고 또 운명인 듯이 긍정적이고 뻔뻔하게 버텨 나간다. 그 순수함이 돋보여서인지, 남을 등쳐먹고 상처 주는데도 희한하게 미워할 수가 없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혀를 차다가도, 헛웃음으로 그를 연민하게 된다. 한국의 현대사를 비추는 에피소드들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고, 경남 합천 출신의 전명출과 그의 지인들이 내뱉는 차진 사투리는 극에 생기를 더한다. 현실을 리얼하게 무대에 옮겨 놓는 박근형이 연출을 맡았다.

| 7월 10일 ~ 29일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02) 758-2150

 

 

전남 벌교가 탄생시킨 음악인들을 아시나요 <뻘>

공교롭게도 <뻘>과 <전명출 평전>에는 같은 내용의 대사가 등장한다. ‘영삼이가 노태우랑 합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브리핑. <뻘> 역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부터 1990년 초반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뻘’은 갯벌을 일컫는 사투리로, <뻘>의 공간적 배경은 전남 벌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노래’라는 부제로 <뻘>을 쓴 김은성 작가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속 인물들의 고민과 갈등을 시공간을 바꿔 재연한다. 유명 배우인 어머니 앞에서 난해하고 전위적인 연극을 선보인 꼬스챠는 당시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는 거친 록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지망생 운창으로 바뀌었다. 운창은 ‘블랙 시걸(검은 갈매기)’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조성하고 여자 친구 홍자를 보컬로 내세워 자작곡을 선보이지만, 인기 가수 어머니와 흥행 작곡가는 그의 음악이 탐탁지 않다. 운창은 자신의 음악을 비웃고 이해해주지 않는 어른들에게 화가 나지만, 홍자는 유명한 가수와 작곡가를 동경하며 대중가요의 매력에 더욱 빠져 있다. 후에 화려하게 가수로 데뷔한 홍자의 스캔들과, 세상과 적당히 타협한 음악으로 먹고 사는 운창의 모습은 <갈매기> 속 결말 그대로다. 어머니와 아들의 예술적 갈등의 변주에 더해, 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과 뻘에서 끄집어 올린 거칠고 짙은 사투리 대사가 끈끈하게 잘 버무려졌다. 운창의 예술적 영역이 음악으로 바뀌면서 <뻘>에서는 노래가 상당히 많이 불린다. 잘 알려진 가요나 동요를 재치 있게 개사하여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향토 민요나 연극을 위한 신곡으로 애잔한 정서를 전하기도 한다. 적재적소에 삽입된 음악은 배경 음악 또는 대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니, 사투리 때문에 패닉 상태가 오더라도 귀 기울여 들어보자. <전명출 평전>이 경북 사투리의 향연이라면 <뻘>은 전남 사투리 열전이다. 고작 산맥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전혀 다른 매력으로 팔딱거리는 날것의 두 언어를 비교해보는 맛도 쏠쏠할 듯.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지역 통합’을 위해서라도, 차별하지 말고 이쪽저쪽 모두 공평하게 즐겨봅시다.

| 6월 26일 ~ 7월 28일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 02) 708-5001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6호 2012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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