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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막장 가족의 뭉클한 여정, <리틀 미스 선샤인> [No.124]

글 |정예경 (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4-01-10 3,828

<리틀 미스 선샤인>은 영화로 익숙한 작품이다. 상영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깊은 잠을 선사하기도 했던, 호불호가 갈리는 특이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뮤지컬로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굳이 이런 로드무비 같은 작품을 무대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을 보고 나니, 역시 경험 많은 프로듀서들의 안목은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던 영화에서, 프로듀서들은 원작의 스토리가 지닌 힘에 집중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꿰뚫어 봤던 것이다. 확실히 이 작품은 영화를 보지 않고 스토리만 들었을 때 더욱 기대가 되는 공연이다. 베테랑 브로드웨이 아티스트들이 만든 뮤지컬 <리틀 미스 선샤인>은 여러모로 영화보다 훨씬 응축된 에너지가 있었고, 사건의 제시와 각 관계에서의 갈등 해소도 명확히 재구성됐다.

 

 

 


사회, 문화적 결함을 지닌 캐릭터들                                   

미국 중산층 이하의 가족 구성원 중 적어도 한 명은 다음 중 하나 이상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간다.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섹스 중독 또는 불능, 경제적 무능력, 커밍아웃과 그에 따른 보수적 가족 구성원 간의 불화 등. 이 문제를 한데 모아놓은 것이 바로 이 올리브네 가정이다. 우선 이 극의 주인공인 ‘올리브’는 이 문제적 가족의 막내이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낀, 귀엽다고 할 수는 있어도 예쁘지는 않은 이 아이는 미인 대회에 집착한다. 그런 올리브를 돌봐주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할아버지. 하지만 마약을 흡입하다 걸려 노인 복지 시설에서 쫓겨났고, 섹스 중독 증상마저 보인다. 아직 10대인 손자 드웨인에게 ‘일단 섹스를 해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연설하는 못 말리는 할아버지다.  
아빠는 자신이 만든 ‘성공을 향한 10단계 이론’을 팔아보려고 고군분투하지만, 자신의 경제적 무능력을 더욱 확실히 증명해 보일 뿐이다. 나름 꿈이 많았던 엄마는 결혼해 첫째 드웨인을 가진 뒤 학업도 접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역부족이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들 드웨인은 매사에 삐뚤어져 있다. 파일럿이 되어 이 지긋지긋한 집을 떠날 때까지 말을 하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모든 의사를 메시지로 전달한다. 외삼촌은 이 가정에 끼어든 또 한 명의 문제아다. 그는 학계에서 꽤나 인정받던 석학이지만, 대학에서 가르치던 젊고 잘생긴 석사 과정 학생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뒤 자살을 시도한다. 그 후 정신과 의사의 소견에 따라 보호 관찰을 위해 누나의 집에서 살게 된다.

 

 

 


결함 가정에게 던져진 열쇠, 미인 대회행 여행                       

저녁 식사 중에도 각자 목소리를 높여 티격태격하는 문제적 가정.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에 올리브를 출전시키라는 전화가 결려온다. 문제가 많은 가족이긴 해도, 나름 사랑이 넘치는 이들은 올리브를 데리고 서부로 가기로 한다. 자랑스러운 손녀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은 할아버지와, 보호자와 떨어질 수 없는 외삼촌도 함께다. 드웨인도 집에 혼자 둘 수 없는 노릇. 이리하여 고물 버스에 온 식구들이 올라탄다.
9시간을 쭉 가다가 꺾으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처럼 광활한 미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은 멀고도 길다. 설상가상으로 고물 버스는 고장이 난다. 하지만 10단계 성공 이론의 창시자인 아빠는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며 식구들을 동원해 버스를 밀도록 한다. 이윽고 시동이 걸린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식구들은 서로 밀어주고 잡아주며 이상한 성취감과 동지 의식을 느낀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삼촌은 운명의 장난처럼 자살 시도를 하게 만든 옛 연인을 만난다. 그를 버리고 경쟁자 교수에게 가버린 옛 연인은 자신의 새 애인이 얼마나 멋있고 학계에서 인정을 받는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참을 수 없을 때 즈음, 화장실 안쪽에서 나타나는 라이벌 교수. 삼촌은 이 재수 없는 두 놈이 맞잡은 손을 보고, 쓰디쓴 자살 시도와 절망의 기억을 삼켜버리기로 결심한다.
한편 아빠는 10단계 이론의 세일즈에 연거푸 실패를 겪는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빠에게 용기를 주지만, 어쨌든 모두 찝찝한 기분으로 모텔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아빠의 행동에 지친 엄마가 감정이 폭발해 부부 싸움을 벌이는 순간, 옆방에서 올리브가 할아버지가 아픈 것 같다고 말한다. 잠든 올리브 옆에서 할아버지가 코카인을 흡입하다가 객사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장례를 치르고 가면 올리브의 미인 대회에 늦게 된다. 물론 병원 측은 가족의 이런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다. 이때 10단계 이론의 신봉자 아빠가 추진력을 발휘해 할아버지의 시체를 빼돌려 차에 싣고 서부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또 식구들은 여행 중 드웨인이 색맹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색맹은 파일럿이 될 수 없기에 드웨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 며칠간 말을 안 했던 드웨인이 처음 내뱉은 소리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저주 섞인 절규이다. 올리브는 그런 드웨인을 꼭 안아준다.
결국 시체를 싣고 도착한 미인 대회. 시골 구석에서 하던 미인 대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훈련된 어린이들은 어른 뺨치는 영악함을 보인다. 의상도 성인들의 것을 방불케 한다. 반면 초라한 옷과 볼품없는 얼굴로 웃음거리가 되는 올리브는 끝까지 대회를 마치려 한다. 고인이 된 할아버지와 연습해왔던 장기를 선보일 시간. 올리브는 엄마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와 얌전히 노래를 하지만, 드럼 비트와 함께 시작된 본격적인 쇼에서 올리브는 드레스를 찢어 던져버리고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더티 댄싱을 선보인다. 주최 측은 순수해 보이는 어린이의 더티 댄싱을 보고 무대를 중지시키려 한다. 하지만 식구들은 애써 여기까진 온 올리브의 무대를 지키기 위해 모두 무대에 난입해 음악이 끝날 때까지 함께 춤을 추어준다. 올리브는 당연히 수상에 실패하지만, 식구들은 전보다 돈독해진 가족애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는 고물 버스에 올라탄다.

 

 

 

 

캐릭터 못지않게 독특한 극본, 음악, 안무                            

특별한 한 명이 아닌 모든 사람이 주인공인 이 작품은 음악이 ‘소스’ 역할을 한다. 워낙 스토리와 분위기가 탄탄해서 음악으로 굳이 뭘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연극으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프로듀서들은 기존 블랙 코미디에 좀 더 가벼운 색깔과 즐거움을 입히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결국 음악이 주도하는 게 아닌, 스토리 중심으로 전개하며 음악이 색을 더해주는 방식으로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강한 캐릭터들에 비해 음악은 다소 부드럽게 나온 인상이 있다.
다만 오케스트레이션은 극장 규모보다 크다. 나중에 더 큰 중극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일까? 이 정도 사이즈의 극장이면 오케스트레이션도 작은데, 신시사이저를 많이 써서 거의 오케스트라 같은 효과를 낸 넘버들이 있었다. 악기 편성도 다양하고 곡에 따라 색채도 많이 변했다. 다소 좀 존재감이 떨어지고 빈약한 오리지널 넘버들에 비해 공을 많이 들인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작업량이나 퀄리티로만 따지면, 무대 장치에는 거의 돈을 안들이고 오케스트레이션에 돈을 쓴 그런 느낌이었다.
연출과 안무는 참 기발하다. 세컨드 스테이지 시어터는 소극장과 중극장 사이의 크기인데, 여기서 성공하면 더 큰 중극장으로 진출한다. 그래서 소극장에서의 투자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무대장치를 많이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움직이는 버스는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배우들이 일제히 의자의 정렬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표현된다. 멈춰버린 버스를 밀다가 시동이 걸려서 이걸 쫓아가는 장면을 소도구만으로 표현한 것은 기발한 발상이다. 배우들이 일정한 속도로 의자 옆에서 달리다가 순간 뒤로 확 이동하면, 버스의 속도에 사람이 뒤처지는 착시 효과를 느끼게 된다. 또 버스에 타서 오른쪽 왼쪽으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장면은 배우들이 한번에 일사불란하게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주면서 그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처럼 배우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버스 신을 상상하게 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미국식 정서 담긴 가족의 의미                                          

이 작품이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많은 미국인이 가진 문제를 미국식으로 치료해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연 없는 사람은 전 세계에 한 명도 없겠지만, 필자가 느끼기에 이 가족들의 사연과 해결 방식은 지극히 ‘미국적’이다.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 특유의 낙관주의에서 비롯된다. 아메리칸 드림을 몸소 이뤄낸 이민자들은 ‘성공’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미국인의 DNA에 깊게 뿌리내렸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든 남에 대해서든 부정적인 말을 거의 안 한다. 특히 어린이의 꿈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배가 나오고 돋보기 안경을 쓴 아이가 미인 대회에 나가겠다고 하면, 우리나라 부모는 그냥 공부를 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일반적인 가정은 일단 자식의 선택을 존중한다. 실패해서 좌절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미국은 누구든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고, 서로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태도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긴 꼬마들도 말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것을 잘 들어주는 게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많은 미국 부모들은 애들에게 꼼짝을 못한다. 올리브의 미인 대회 출전도 그렇다. 애가 꿈이 있다는데 그걸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면 나쁜 부모가 되기 때문에 애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모든 식구가 버스에 탄다는 설정은 그런 미국이라는 환경을 감안해야 이해가 된다. 드웨인을 대하는 엄마 아빠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몇 달 동안 말을 안 하고 핸드폰으로만 대화를 원하는 자식을 때려서라도 정신차리게 만들긴커녕, 참으면서 대화를 이끌어내려 하는 모습은 참으로 미국 부모답다. 그래서 이 좁디좁은 고물 버스는 욕망의 화로이자 소통의 통로가 된다. 모두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다가도, 결국은 부딪치기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기도 한다.
이 대회는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허상이었다. 귀여운 어린아이들을 철저히 어른들의 필요에 따라 상업화한 천박함이 가득한 행사였다. 하지만 그런 일그러진 모습 뒤로 점잔을 떠는 어른들의 초상을 벌거벗기듯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 바로 올리브의 더티 댄싱이다. 이때 예의 문제적 가족들이 아이를 끌어내지 않고 끝까지 그 꿈을 보호해준 것은 미국적인 정서를 잘 녹여낸 극적인 설정이다. 이처럼 서로 부딪치고 아웅다웅하는 과정에서 우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인생을 배운다는 점을 느낀다. 결국 이 막장 가족의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우리의 인생을 그대로 담아낸 이야기였던 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4호 2014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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