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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지극히 아이들을 위한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No.122]

글 |이유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Helen Maybanks 2013-11-27 5,855

소문난 잔치에 관객은 넘쳐났다. 데이 티켓이 없음에도 박스 오피스에는 아침부터 길게 줄이 이어졌고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런던 왕립 드루리 레인(Theatre Royal, Drury Lane) 극장은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보기 위한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윌리 웡카 초콜릿의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에서 영국으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소년 앤드루(Andrew)는 공연 티켓을 쥐고 연신 “골든 티켓!”을 외치며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 6월 25일 사라 제시카 파커, 우마 서먼, 매튜 모리슨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레드카펫을 장식하며 화려한 개막을 알린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아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네 달째 웨스트엔드를 순항 중이다.

 

 

 


소설에서 영화로, 다시 뮤지컬로                                        

세상에서 초콜릿을 가장 좋아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초콜릿을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가난한 소년 찰리, 그의 집 근처엔 달콤한 향기로 아이들을 유혹하는 초콜릿 공장이 있다. 어느 날 베일에 싸여져 있던 공장의 주인 윌리 웡카는 초콜릿에 감춰 놓은 ‘골든 티켓’을 찾은 어린이 다섯 명에게 공장 견학을 시켜주겠다 선언하고, 전 세계 어린이들은 골든 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된다. 매일 밤 초콜릿 공장을 상상하며 잠들던 찰리 또한 운 좋게 골든 티켓을 손에 넣게 되고 윌리 웡카의 가이드에 따라 비밀의 초콜릿 공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1964년 출간돼 전 세계에 1,370만 부가 팔려 나간 로알드 달의 동화와 2005년 4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팀 버튼과 조니 뎁 콤비의 영화.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시작부터 원작과 영화의 검증된 흥행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제작을 맡은 워너브라더스는 이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해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마크 샤먼과 스콧 위트만에게 음악과 가사를 맡기고 지구에서 제일 잘나가는 안무가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의 피터 달링을 전면에 내세웠다. 게다가 여기에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샘 멘데스를 히든카드로 꺼내들었다. <007 스카이 폴>, <레볼루셔너리 로드> 등으로 흥행과 호평을 동시에 거머쥔 그는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뮤지컬 <카바레>로 올리비에 어워드를 수상하고 뮤지컬 <어쌔신>의 시작을 함께한 연출가이기도 하다.

 

 

 

 

장르에 충실한 변형과 변화                                               

이렇듯 화려한 크리에이티브 팀을 꾸렸으니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이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릴 것이냐는 것. 부담과 고민이 지속됐을 세월을 거쳐 공개된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그동안 웨스트엔드가 축적한 기술력에 지극히 무대적인 장치들을 조화롭게 섞는 데 집중한 듯 보인다. 영화에서 구현했던 오색찬란한 컴퓨터 그래픽에 뒤지지 않기 위해 정교하게 만든 다양한 간이 세트와 화려한 의상으로 무대를 꽉 채우고 원색의 조명과 레이저 효과로 원근감을 확보하는 등 극장 전체를 스펙터클한 3D 블록버스터로 완성시킨 것. 여기에 가면극과 같은 정통 무대 연출을 삽입해 ‘무대 예술’로서의 기대도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윌리 웡카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노래하는 ‘The Amazing Tale of Mr. Willy Wonka’ 장면에선 그림자극을 적극 활용해 어린이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고, 비밀의 공장에 들어가기 위해 골든 티켓을 확보한 아이들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이동 무대는 ‘The Double Bubble Duchess’ ‘It`s Teavee Time’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과 함께 아이들의 열렬할 환호를 받았다.
1막이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면 2막은 본격적인 공장 탐험기가 이어졌다. 윌리 웡카 초콜릿의 비밀 병기 움파룸파 족이 등장하자 극장은 거의 놀이동산 분위기로 변신, 오케스트라 피트 위로 살짝 보이는 지휘봉도 덩달아 한껏 더 들썩거렸다. 1막이 샘 멘데스의 영리한 연출이 돋보였다면 2막은 피터 달링의 화려한 안무가 장악한 무대였다. 초콜릿 폭포를 시작으로 줄어들지 않는 껌을 발명하는 연구실, 최상의 카카오를 선별하는 분류실 등 각각의 공간에 따라 만들어진 안무는 무대 전체를 풍성하게 감쌌다. 교묘한 눈속임 의상으로 난쟁이 변신에 성공한 움파룸파 역의 배우들은 피터 달링의 마법 같은 안무를 완벽하게 숙지하여 무대를 날아다니다시피 했다. 맨 앞줄을 장악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공연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움파룸파 족의 군무에 무대로 뛰어 올라갈 기세였다.

 

 

                           

 

 

찰리와 아이들에게 밀린 윌리 웡카                                     

아이들이 완벽하게 극에 몰입하는 데는 아역 배우들의 공이 컸다. “웨스트엔드의 미래는 빌리와 마틸다에게 있다”는 관계자들의 말에 ‘찰리와 아이들’을 추가해도 무방할 정도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아이들은 어른 배우들을 압도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에 비해 토니 어워드와 올리비에 어워드를 석권한 더글라스 호지의 윌리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윌리 특유의 휘황찬란한 의상으로 치장하긴 했지만 더글라스 호지의 윌리는 지루하고 촌스러웠다. 조니 뎁의 윌리를 향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영화 속 그의 말투를 베껴온 듯 보이는 몇몇 제스처와 대사 톤은 더글라스 호지와 계속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다.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지향하는 목표가 영화와 분명한 차별점이 있는 만큼 그의 윌리도 뮤지컬의 무대에 맞게 재설정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누구보다 인물 묘사에 탁월한 샘 멘데스 연출의 디렉팅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의문스러운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탁월하다 못해 훌륭했다. <레 미제라블>에서 가브로쉬로 활약했던 잭 코스텔로의 찰리는 ‘착한 어린이’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다정한 가정에서 욕심 없이 자란 동화 속 착한 어린이가 그대로 튀어나온 듯 연신 해맑은 표정을 잃지 않으며 더글라스 호지의 아쉬움을 채워주는 어른스러움을 발휘한 것. 객석의 아이들은 그가 골든 티켓을 발견하는 순간 자기의 일인 양 박수와 환호를 보낼 정도로 잭의 찰리에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여기에 먹보 소년 아우구스투스, 탐욕스럽고 버릇없는 버루카, 껌 씹기 챔피언 바이올렛, 게임 중독 마이크 모두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바이올렛을 맡은 미야 올라에는 데뷔 무대란 게 믿겨지지 않을 실력을 보여주었다. 승부욕과 나르시시즘에 푹 빠진 버릇없는 여자애 연기를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랄까. 몇 년 뒤 그녀가 웨스트엔드의 어떤 무대에서 어느 역할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잔혹 동화 대신 환상 동화                                                

“나는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정말로 환상적이지만 동시에 너무 냉소적이다. 나는 오히려 멜 스튜어트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살짝 고루하긴 하지만.” 샘 멘더스 감독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추구할 방향에 대해서 확실히 못 박았다. 국내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팀 버튼 이전에 이미 1971년에 멜 스튜어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멜 스튜어트의 영화는 팀 버튼의 영화와 비교하면 좀 더 원작의 따뜻한 결을 살리는 데 집중했고, 윌리 웡카 또한 예민하고 까다로운 조니 뎁에 비해 좀 더 영국 신사에 가까운 이미지다. 샘 멘더스는 많은 이들에게 깊숙이 파고든 팀 버튼의 찰리를 지우고 원작이 담고 있는 영국적인 특징들을 살리는 데 집중한 것. 결국 팀 버튼의 영화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맛이었다면 샘 멘더스의 뮤지컬은 ‘달콤하고 포근한 초콜릿’ 맛이라고 보면 되겠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아이들은 한동안 객석을 떠나지 못하고 윌리 웡카를 불러댔고 극장 로비에 마련된 초콜릿 숍의 윌리 웡카 초콜릿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고사리 같은 손에 초콜릿 하나씩 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당분간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흥행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골든 티켓!”을 외치던 소년 앤드루 또한 양손 가득 초콜릿을 쥐고선 아쉬운 듯 극장을 떠났다.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겐 언제나 내일이 온다’는 아주 정직하고 착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It`s just a story told with joy.” 샘 멘데스의 말마따나 이건 그저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니, 공연을 보고 행복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있을까? 단, 웨스트엔드의 아이들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이 달콤한 초콜릿이 쌉싸름한 초콜릿에 길들여진 어른들까지 섭렵할 수 있을지는 살짝 물음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2호 2013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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