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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젊음이 가득한 브리티시 팝 펑크 뮤지컬 <루저빌> LOSERVILLE [No.110]

글|정명주 |사진|Tristram Kenton 2012-11-26 4,515

영국의 청소년 극단인 유스 뮤지컬 시어터(Youth Musical Theatre, U.K.,약칭 YMT)에서 제작한 <루저빌>이 웨스트엔드에 진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기 펑크 록 밴드 출신의 작곡가 제임스 본이 인기 앨범 ‘Welcome to Loserville’의 삽입곡을 활용해서 만든 작품이다. 10월 17일 런던 개릭 시어터에서 오픈한 <루저빌>은 1970년대 초에 이메일을 처음으로 발명한 컴퓨터 천재인 미국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그린 저예산 뮤지컬이다. 젊은 창작진이 만들고, 28명에 달하는 전 출연진 모두 20대 초반인 점이 눈에 띈다.

 

 

 

한 장의 음반에서 뮤지컬로 발전한 <루저빌>                                               
브리티시 팝 펑크 밴드 ‘손 오브 도크(Son of Dork)’의 창단 멤버이자 작곡가인 제임스 본(1983년생)은 2000년대 초에 활동했던 ‘버스티드(Busted)’라는 펑크 록 보이 밴드의 멤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2005년에 ‘손 오브 도크’라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면서 첫 번째 싱글 앨범 ‘Ticket Outta Loserville’로 UK 싱글 차트 3위에 올랐다. 영국에서는 대개 ‘컴퓨터 천재’ 하면 두꺼운 안경을 쓴, 패션 감각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는, 특히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외곬의 인물로 여긴다. 그래서 컴퓨터나 테크놀로지의 어느 한 분야에 빠져 있는 사람을 ‘너드(Nerd), ‘기크(Geek)’, ‘도크(Dork)’ 등으로 부르며 놀리곤 한다. 제임스 본이 밴드의 이름으로 택한 도크는 특히나 사회성이 부족하면서도, 지식욕과 연구욕이 강한 너드에 비해서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컴퓨터를 잘 고치는 등의 기술적인 재주가 있는 기크에 비해 기술력도 떨어지는, 별다른 재주 없는 컴퓨터광을 가리킨다. 손 오브 도크의 첫 번째 앨범은 ‘Welcome to Loserville’이라는 제목으로 컴퓨터광에 대한 이야기를 코믹한 13곡의 노래로 엮은 것이었다.
제임스 본과 이웃이었던 뮤지컬 작가이자 작곡가 엘리엇 데이비스는 이 앨범을 들은 후, 흥미로운 인물과 스토리를 살려 뮤지컬로 만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엇 데이비스는 청소년 극단 YMT의 예술감독 존 브로미치를 만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뮤지컬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늘 젊은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찾고 있던 YMT는 흔쾌히 워크숍을 통해 뮤지컬로 개발하는 것을 수락했다. 만 21세까지의 청소년 및 청년들을 단원으로 보유하고 있는 YMT는 젊은 신진 작가들과 워크숍을 통해 뮤지컬을 개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개는 반 정도 쓴 대본으로 어린 배우들과 리허설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 가는 방식이다. 워크숍은 대개 여름방학 동안 2~3주에 걸쳐 개최된다. 하루 종일 리허설을 하면서 어린 배우들에게 질문 및 제안 사항을 받고, 작가들은 이를 고려해 밤새 대본을 고쳐 쓰고, 다음 날 다시 리허설을 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루저빌>의 경우, 제임스 본이 밴드 멤버들과 만들었던 앨범 수록곡 13곡 중에 뮤지컬에 사용할 곡들을 골라내고, 이를 이용해 엘리엇 데이비스가 대본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두 사람이 함께 쓴 새 노래들을 추가해 나가며 완성했다. 그리고 이 대본과 노래로 2009년에 YMT 단원들과 워크숍을 거쳐 작품을 다듬어갔다. YMT의 단원들은 초, 중, 고, 대학생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배우들이기 때문에, YMT의 제작 공연은 대개 지방 극장에서 단기 공연을 하고 마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루저빌>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독특한 음악성을 높이 인정받은 덕에, 오디션을 통해 전문 배우를 기용하고 지방 극장인 웨스트요크셔 플레이하우스와 공동 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런던의 웨스트엔드 프로듀서들이 이 지방 극장 공연을 관람했다. 그 결과 웨스트엔드의 유명 프로듀서인 케인 왈라스가 메인 프로듀서로 나서고, 런던에 6개의 주요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나이맥스 시어터 그룹의 니카 번즈가 극장주로서 개릭 시어터를 제공하는 동시에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웨스트엔드 진출의 신화를 쓰기에 이른다.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하이스쿨 뮤지컬                                                                
젊은 밴드의 히트 앨범에서 시작한 뮤지컬이기에 <루저빌>은 비트가 강한 신나는 노래를 중심으로 한다. 손 오브 도크의 앨범에 수록되었던 ‘Slacker’, ‘The Little Things’, ‘Ticket Outta Loserville’, ‘Holly, I`m the One’, ‘Sick’, 펑크 록 계열의 이 다섯 곡에는 이미 1970년대 초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컴퓨터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도크류의 남학생들, 마이클과 루카스 일행이 등장인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최초의 여자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소녀 홀리가 이곳으로 전학 오면서, 그녀를 사이에 두고 ‘절친’인 마이클과 루카스 사이의 우정이 깨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러한 기본 설정을 살려 엘리엇 데이비스와 제임스 본이 함께 쓴 <루저빌>은 미국 고등학교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킹카와 퀸카, 그들의 사이드 킥들, 그리고 새로 전학 온 촌스러운 여학생 홀리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 등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잘생긴 킹카 에디의 외모는 언뜻 <그리스>의 남자 주인공 대니를 연상시키지만 그는 겉멋만 든 악한으로 등장하고, 전학생 홀리는 <그리스>의 여주인공 샌디와 닮았지만 컴퓨터 실력을 갖춰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학생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바보 같은 외모지만 컴퓨터 천재인 마이클이 홀리와 팀을 이뤄 컴퓨터를 연구하면서 에디의 방해 작전에도 불구하고 둘은 세계 최초로 이메일을 발명하는 고등학생 커플이 된다는 이야기다.

 


 
신예 배우들의 젊은 에너지가 가득한 무대

커다란 안경을 쓰고 촌스럽게 짧은 빨간 바지를 입은 남자 주인공 마이클, 주인공과 매우 비슷한 패션의 컴퓨터광 친구 루카스가 고등학교 컴퓨터실에서 미래를 꿈꾸는 것으로 <루저빌>은 시작한다. 천장에 이진법의 숫자 0과 1이 잔뜩 써진 스케치북 수십 개가 매달려 있고, 그 밑에서 마이클이 철제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컴퓨터를 열심히 두드리는 모습은 만화의 한 장면 같다. 마이클과 루카스를 비롯해 이 컴퓨터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듯한 그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몽땅한 촌스러운 칠부바지 차림이다.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전형적인 기크의 모습이다. 역시나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여자에게 차이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내용(‘Don`t Let`Em Bring You Down’)이거나, 컴퓨터 해커 친구에 대한 내용(‘Slacker’)이다. 주인공 마이클 역의 아론 시드웰과 루카스 역의 리처드 로웨는 멍청해 보이는 외모의 컴퓨터광을 코믹하게 표현해 많은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록이 가미된 신나는 팝송풍의 뮤지컬 넘버들이 나올 때마다 젊은 혈기를 다해 열창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사랑스런 금발의 전학생 홀리가 등장해, 지성과 외모를 겸비한 예외적인 여자가 되기를, 최초의 여자 우주 비행사가 되기를 꿈꾼다. 그녀가 꿈꾸는 미래는 컴퓨터로 세상을 바꾸기를 희망하는 마이클의 미래와 어디선가 만날 듯한 예감을 제공한다. 반면 다른 학생들 중에서는 희망 따위 없이 외모만으로 현재의 삶에 승부를 거는 이들도 있다.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에 완벽한 미소를 자랑하는 킹카 에디는 자신의 완벽한 외모를 자화자찬하기에 바쁘고, 그런 에디를 자신의 천생연분으로 점찍어 놓은 전형적인 금발의 퀸카 레이아는 그에게 시집가는 것 말고는 달리 인생의 계획이 없다. 이외에도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영어를 잘 못하는 여학생들을 포함해 그야말로 다양한 고등학생 군상들이 대거 등장한다.
<루저빌>에 선생님이나 어른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전 출연진이 10대와 20대이다. 홀리 역을 맡은 엘리자 호프 베넷를 비롯해, 에디 역의 스튜어트 클라크나 레이아 역의 샬롯 하우드 등 <루저빌>의 출연진 대부분이 이제 막 연극 학교를 졸업한 신예 배우들이다. 이들에게서는 무대에 서있는 것 자체를 행복해하고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느껴진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만화 같은 이미지

연출가 스티븐 덱스터는 젊은 창작진이 쓴 신나는 펑크 록의 선율을 따라가며, 신예 배우들만 기용해 속도감과 코믹성을 살린 무대를 펼친다. 전체적으로 만화 같은 이미지가 대거 활용된다. 의상과 무대뿐만 아니라 연기 스타일까지도 정형화된 코믹 연기로 설정한 것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신예 배우들의 연기력을 고려한 선택인지, 아니면 코믹한 설정을 위한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때문에 나름의 열연과 열창을 선보이는 젊은 배우들의 무대에서 연기나 인물 해석에 대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프란시스 오코너의 저예산 무대 장치는 연필과 스케치북을 주로 활용했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부품을 연상시키는 철골 구조의 무대장치가 중심에 놓여 있고, 매 장면마다 코러스들이 크고 작은 스케치북을 바쁘게 펼치고 넘기면서 학교 정원 또는 학교 식당을 표현하게 하면서, 재치 있게 만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10명에 달하는 코러스들이 매번 스케치북을 들고 무대 뒤에 일렬로 서서 한 장씩 이미지를 넘기고, 주요 인물들이 그 앞에 서서 연기를 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20명에 달하는 젊은 배우들이 다양한 율동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순간이 종종 연출된다. 이에닉 윈스튼의 에어로빅 댄스를 닮은 안무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매우 컬러풀하고 활기 가득한 무대가 완성되었다.

 

 

제임스 본의 코믹한 가사와 비트가 강한 펑크 록 넘버들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과 비트가 강한 선율을 기본으로 한 제임스 본의 펑크 록 음악은 전체적으로 헤드뱅잉을 유도하는 신나고 젊은 분위기를 풍긴다. 컴퓨터실에서 마이클 일행이 부르는 첫 곡 ‘Living in the Future Now’부터 시작된 강한 비트의 록 음악은 신나는 드럼 연주에 맞춰, 코믹한 가사에 희망이 가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때로 잔잔한 선율들이 가미되는데, 마이클이 홀리에게 반해 짝사랑을 노래하는 ‘The Little Things’, 그리고 홀리가 우주 비행사를 꿈꾸며 노래를 부르는 순간 등은 발라드 선율로 사랑스럽게 진행되기도 한다. 손 오브 도크의 첫 번째 앨범 수록곡이기도 하며, 이 작품에서 루카스가 홀리 때문에 제일 친한 친구 마이클을 질투하게 된 상황을 노래하는 곡, ‘Holly, I`m the One’은 어쿠스틱 기타로 잔잔하게 이어지는 팝송 스타일이다. 특히 1막의 마지막 곡인 ‘Ticket Outta Loserville’에는 전체적으로 강렬한 리듬을 따라 열창하다 때로 서정적인 솔로 파트가 삽입되면서, <렌트>를 연상시키는 멋진 순간을 선보였다.

 

 

 

지나치게 희화된 인물과 이야기

<루저빌>은 창작뮤지컬을 찾아보기 힘든 웨스트엔드에 오랜만에 등장한 젊은 기운 가득한 신작이라는 점에서 개막 자체가 크게 환영받는 분위기이다. 개릭 시어터의 객석에서는 보기 드물게 10~20대 관객이 대거 자리하여 환호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감수성을 담은 30대 초반의 창작진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앳된 출연진이 선보이는 무대는 참신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코믹하고 희화된 인물들을 그리면서, 이미지뿐만 아니라 등장인물과 이야기 전체가 진정성이 부족한 코믹 만화에 그쳤다는 점이다. 그래서 등장인물 중에 감정 이입할 대상을 찾기 어렵고, 당연히 감동받을 부분도 거의 없는 공연이 되고 말았다.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이미지 표현은 탁월하지만, 휴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음악 역시, 독특한 설정과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가사들이 뮤지컬로서 잠재성을 지니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음악적 구조는 뮤지컬의 드라마틱한 기승전결 구조를 만들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루저빌>은 잠재성을 증명한 젊은 뮤지컬이지만, 유머와 감동을 동시에 전하는 인기 뮤지컬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은 듯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0호 2012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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