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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재즈와 탭댄스에 대한 화려한 기억 <톱 햇> TOP HAT [NO. 105]

글 |정명주(런던 통신원) 사진 |Brinkhoff and Mogenburg 2012-06-27 4,398

미국 재즈 음악을 대표하는 어빙 벌린의 낭만적인 음악과 전설적인 댄싱 커플인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화려한 발자취가 담긴 뮤지컬 <톱 햇(Top Hat)>이 지난 5월 9일 런던 올드위치 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및 할리우드의 인기 스타로 10편이 넘는 뮤지컬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히트작인 1935년 RKO 라디오픽쳐스사의 동명 영화를 세계 최초로 무대화한 것이다. <톱 햇>은 ‘Cheek To Cheek’을 비롯하여 어빙 벌린의 향수 어린 재즈 명곡이 가득한 작품으로, 연미복을 입고 ‘높은 모자(Top Hat)’를 쓰고 지팡이를 든 신사들의 탭댄스 장면이 인상적인 뮤지컬 넘버 ‘Top Hat, White Tie and Tails’에서 제목을 따왔다. 1930년대의 미국적 낭만이 가득하여, 최근에 개막한 <크레이지 포 유>, <싱잉 인 더 레인>과 함께 또 한번 웨스트엔드에 옛날 미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톱 햇>은 중년 이상의 관객들이 유난히 많이 찾는데, 특히 일부 여성 관객들이 단체로 드레스에 모자까지 갖춘 화려한 차림으로 극장에 와 시대적 분위기를 만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낭만 가득한 1930년대 미국으로 떠나는 여행
이 작품은 1935년을 배경으로 하며, 핸드폰이 없던 시대를 그리고 있으니 반드시 핸드폰을 꺼달라는 코믹한 안내 방송으
로 공연을 시작한다. 그리고 곧 커튼 위로 유혹적인 붉은 조명이 드리우고, 트럼펫이 부드럽고 달콤하게 재즈 선율을 연주하는 서곡이 잔잔하게 흐른다. 눈을 감고 들으면 더욱 감미로운 어빙 벌린의 선율을 따라, 타임머신을 타고 낭만이 가득한 1930년대의 미국으로 가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다. 잠시 후 막이 오르고 세계적인 스타 제리 트레버를 소개하는 목소리와 함께 양복을 입고 지팡이를 든 4명의 탭댄서가 등장하고, 바로 이어서 주인공인 제리 트레버가 12명의 탭댄서를 거느리고 화려하게 등장한다. 제리 트레버는 원작 영화에서 프레드 아스테어가 맡아 매력을 한껏 발산했던 역할이다. 이번 런던 뮤지컬 무대에서는 지난 십여 년간 볼룸댄스 열풍을 불러일으킨 BBC TV의 댄스 경연 대회 Strictly Come Dancing에서 2008년 최종 우승자로 선발된 톰 챔버스가 열연한다. 무대 위에 뉴욕 브로드웨이의 전광판들이 나타나면서, 첫 번째 뮤지컬 넘버 ‘Puttin On the Ritz’가 시작된다. 스타카토로 전개되는 단순한 리듬을 따라 제리 트레버와 앙상블의 탭댄스가 신나게 펼쳐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공연이 끝난 후의 스테이지 도어이다. 기자들이 몰려와 제리가 런던으로 투어 공연을 떠난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으며 그의 세계적인 인기를 축하한다.


뉴욕, 런던, 베니스로 이어지는 낭만적인 로맨스
제리는 런던으로 투어 공연을 가고 거기 호텔에서 도도한 여인 데일 트레몽을 만나게 된다. 데일은 런던에서는 아직 유명하지 않은 미국의 스타 제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런던 공연의 프로듀서인 호레이스로 오해한다. 그녀는 호레이스를 만난 적이 없지만, 그와 3년 전에 결혼한 아내 마지를 얼마 전에 알게 되어 친구가 되었다. 마지는 호레이스와 함께 며칠 후에 베니스로 여름휴가를 간다며, 데일에게 같이 가자고 초대한 상황이다. 그래서 데일은 호레이스로 오인하고 있는 제리가 자기에게 ‘작업’을 거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그녀는 제리를 거부하고 피하려고만 하고, 제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그녀에게 작업 공세를 펼친다. 엇갈리는 두 사람의 로맨스는 런던에서 베니스로 무대를 옮겨 가며 이어진다. 고급스런 호텔의 로비와 아름다운 베니스의 바닷가에서 재즈 선율에 따라 아주 낭만적이면서도 코믹한 드라마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제리는 수시로 호텔방에서는 솔로로, 무대에서는 앙상블과 함께 최고의 탭댄스를 선사한다.

 

 

 

원작 영화의 명장면을 재치 있게 재구성한 무대
전체적으로 이번 프로덕션은 RKO사의 원작 영화의 인기와 명성에 큰 덕을 보고 있다. 영화사를 빛내는 작품인 <시민 K>와 <킹콩>의 제작사였던 RKO는 1920년대부터 캐서린 햅번과 프레드 아스테어 등의 톱스타를 기용하며 할리우드 영화계를 이끌었다. 1933년에 제작한 <플라잉 다운 투 리오>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스타덤에 올랐고, 이들의 활약과 함께 RKO가 주도하는 뮤지컬 영화가 한동안 크게 인기를 끌었다. 마크 샌드리치가 감독을 맡고 프레드 아스테어와 허메스팬이 공동 안무했던 이 영화는 어빙 벌린이 쓴 ‘Cheek To Cheek’, ‘Top Hat, White Tie and Tails’ 등 총 다섯 곡의 노래를 모두 미국 가요 차트의 상위권에 올리면서, 그해 세계 박스 오피스에서 2위를 기록한 히트작이다. 앨런 스콧과 드와이트 테일러의 재기 넘치는 코미디 대본은 오해로 엇갈리는 로맨스 스토리와 다양한 코믹 캐릭터가 어우러져 흥미진진하다.


이번 무대는 이러한 원작 영화의 코미디와 탁월한 음악, 그리고 훌륭한 탭댄스 안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프레드 아스테어가 옷걸이와 함께 멋지게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명장면으로, 2010년에는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이 무용 공연 <신데렐라>에서 이를 흉내 내어, 신데렐라가 옷걸이를 왕자님인 듯 안고서 멋지게 듀엣을 선보이는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연출가 매튜 화이트가 나름의 기지를 발휘하여 이 장면을 특이하게 재구성했다. 무대 앞쪽에서 제리 역의 톰 챔버스가 호텔방에서 혼자 옷걸이를 안고 신나게 춤을 춘다. 동시에 무대 뒤쪽에는 이층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호텔방이 아래위로 보이고, 남자 무용수가 제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옷걸이를 안고 춤을 추는 모습이 위층 방에 그림자로 표현된다. 그 아래층 방에서는 데일이 침대에 누워 위층의 발소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다. 무대 앞의 톰 챔버스의 춤동작과 이층 방에 드리운 그림자 속 무용수의 동작은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해 감탄을 자아낸다.


이외에도 매튜 화이트는 안무가 빌 드리머, 무대디자이너 힐드가드 베크틀러와 함께 원작 영화의 장점을 잘 살려, 영상에서의 편집 효과를 무대에 장난스럽게 재현한다. 앞서 묘사한 댄스 장면처럼, 무대를 세로로 둘로 나누어 동시 장면으로 연출하거나, 무대의 가로를 삼등분하여 왼쪽과 오른쪽은 막으로 가리고 가운데 부분에만 동영상을 투사하는 등 특이한 장면을 연출했다. 데일과 제리가 마차를 타고 가는 장면은 무대 왼쪽과 오른쪽, 양쪽 모두를 일부 막으로 가리고 가운데만 부분적으로 보여주는데, 여기에 평면적인 마차 모양의 장치가 내려와 그림자처럼 자리한다. 이 마차 장치 밑부분의 의자에 데일이 앉고, 윗부분에는 마부 복장의 제리가 채찍을 들고 올라가 앉는다. 그러면 말발굽 소리가 음향으로 들리기 시작하면서, 마차의 몸체는 움직이지 않는데 아래에 바퀴 모양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뒤쪽으로는 풍경이 영화처럼 지나가면서 이들이 마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 표현된다. 간단하면서도 재치가 담긴 설정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효과는 베니스 호텔에 하루 먼저 도착한 데일과 마지가 제리와 호레이스를 기다리는 장면에서도 활용된다. 왼쪽과 오른쪽 무대는 막에 가려져 있고, 가운데 무대에 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 제리와 호레이스가 코믹하게 잠깐 보인다. 그리고 이 가운데 부분은 사라지고 왼쪽 무대에 데일과 마지가 호텔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두 여자가 남자들의 비행기가 도착할 때가 다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가운데 무대를 통해 미니 비행기가 날아와 바닷가에 착지하는 모습이 만화처럼 보인다. 연출과 안무, 디자인을 맡은 세 사람 모두 웨스트엔드에서의 경력이 거의 없는, 전국 투어 및 지방 극장 프로덕션에서 활약하던 창작 팀임을 고려하면 원작 영화의 맛을 잘 살리면서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톰 챔버스와 섬머 스트랄렌의 열연
출연진 역시, 유명한 뮤지컬 스타는 없지만 탄탄한 실력의 배우들이 참여했다. TV를 통해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톰 챔버스의 경우, 전설적인 무용수 프레드 아스테어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꽤나 훌륭한 탭댄스를 선사하며 무대를 장악했다. 뮤지컬 전문 배우가 아니기에 가창력 면에서 불안한 순간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춤꾼인 프레드 아스테어를 위해 작곡되었던 어빙 벌린의 곡들은 많이 어렵지 않아 크게 위험한 순간은 없었다. 1막의 첫 곡인 ‘Puttin’ On the Ritz’를 비롯해, 제리가 데일에게 첫눈에 반하고 나서 부르는 코믹 송 ‘I’m Putting All My Eggs in One Basket’, 그리고 1막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Top Hat, While Tie and Tails’ 등 제리의 솔로는 모두 춤 위주로, 음역이 넓지 않은 단순하고 가벼운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서 두 사람이 공원에서 데이트하며 부르는 ‘Isn’t This a Lovely Day(To Be Caught In the Rain?)’, 2막의 그 유명한 ‘Cheek To Cheek’ 등 데일과의 듀엣곡 역시, 엘라 피츠제럴드 같은 인기 재즈 가수들이 불러 유명하지만, 높은 가창력을 요구하는 멜로디는 아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톰 챔버스는 훌륭한 춤 실력과 매력적인 미소를 강조하며 무난한 연기와 가창력을 선보였다. 그에 비해 <러브 네버 다이즈>의 마담 지리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드라우지 샤프론>의 자넷 등 웨스트엔드 뮤지컬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은 데일 역의 섬머 스트랄렌은 안정적인 노래 실력과 연기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1막의 솔로 곡인 ‘You’re Easy to Dance With’를 비롯하여,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제리에게 빠져드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Wild About You’, 그리고 2막의 ‘Better Luck Next Time’을 통해 멋진 가창력을 선보이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어빙 벌린의 재즈 명곡이 나올 때마다, 일부 중년 관객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조연들의 몸을 던진 코미디
<톱 햇>에서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하는 이는 코믹한 설정의 조연들이다. 제리의 런던 투어 공연의 프로듀서인 호레이스 역의 마틴 볼은 집사에게 무시당하고, 그의 재력을 보고 결혼한 얄미운 아내 마지에게 구박을 받다 못해 얻어맞아 눈에 멍까지 드는 영국 신사의 역할을 코믹하게 소화한다. 호레이스의 말 안 듣는 집사 베이츠를 연기한 스티븐 보스웰은 수시로 변장해 데일을 미행하는 코믹한 상황을 연기하며 많은 웃음을 선사한다. 또한 호레이스의 인정머리 없는 악처 마지 역의 비비엔 패리의 연기 역시 큰 박수를 받았다. 마지와 호레이스가 부르는 코믹 듀엣 곡 ‘Outside of That, I Love You’는 부부간에 서로 마음에 안 드는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나열하면서, 그럴 때만 빼고는 사랑한다는 내용의 가사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조연 중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선사하는 인물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알베르토 베디니 역의 리카도 아폰소이다. 볼품없이 땅딸한 몸매의 베디니는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아름다운 데일이 입고 모델을 해준 덕분에 디자이너로 성공하게 되면서, 그녀를 평생 옆에 두고 싶어 청혼을 한다. 데일은 제리를 마지의 남편으로 오해하고 친구의 남편과 사랑에 빠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이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해 버리기로 한다. 그래서 데일과 베디니는 베니스 호텔에서 즉석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베디니 역의 리카도 아폰소가 오페라 스타일로 열창하는 코믹 송 ‘Latins Know How’는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특히 나중에 주례가 가짜였기 때문에 결혼식은 무효이며, 데일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제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오열하는 리카도 아폰소의 절절한 연기는 큰 박수를 받을 만했다.


웨스트엔드 작품보다는 지방 투어 작품을 주로 제작해 왔던 케네스 H 왁스가 리드 프로듀서를 맡고, 5명의 공동 제작자에 한국의 연극배우 윤석화가 이름을 올리기도 한 뮤지컬 <톱 햇>에는 제작진과 창작진 및 출연진을 통틀어 대스타는 없다. 하지만 원작 영화의 명성과 중견들의 탄탄한 실력이 발휘된 공연이다. 특히 옛날 미국 영화를 뮤지컬로 제작하며 ‘미국 바람’이 불기 시작한 웨스트엔드의 최근 트렌드에 한몫을 거드는 작품으로,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당분간 좋은 성적을 낼 듯하다. 최근 그리스의 경제 파국으로 인해 급속화되고 있는 유로 지대의 경제난 속에서, 날로 어려워지는 영국의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도피성’ 엔터테인먼트로서, 낭만적인 미국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중·장년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5호 2012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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