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뉴지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브로드웨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겠다. 브로드웨이는 지금 두 명의 살아있는 레전드가 말 그대로 ‘별들의 전쟁’을 치르기 전이다. 해리 코닉 주니어와 휴 잭맨이 브로드웨이로 돌아온 것이다. 해리 코닉 주니어는 아메리칸 팝에 굵게 한 획을 그은 가수이자, 작곡가, 배우이며, 휴 잭맨은 울버린, 반 헬싱 등의 캐릭터로 친숙한 배우인데, 두 사람 모두 브로드웨이 무대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고향 떠나 성공한 그들이 둘 다 자기 이름을 건 원맨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극장에서 공연한다.휴 잭맨의 쇼 오프닝 날 저녁 참석하는 유명 인사들로 한 블록의 교통이 마비되었다. 6시 30분에 오프닝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브닝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뉴욕 호사가들이 다섯 차례에 걸친 극장 측의 간절한 안내 방송 따위엔 아랑곳없이 수다를 떠는 바람에 7시가 훨씬 넘어서야 공연이 시작됐다. 이 쇼는 왜 사람들이 스타의 충성스런 팬이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스타성’이나, ‘무대 장악력’이란 애매한 단어가 무얼 의미하는지 그 자체로 제시해주고 있다. 해리 코닉 주니어 쇼는 아직 오픈 전이라 보지 못했지만, 이미 이 사람의 지난 경력으로 볼 때, 작곡이면 작곡,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춤이면 춤,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사람들이 어떤 극장에 줄을 많이 설까?
이런 와중에도, 풍요 속의 빈곤인지, 새로운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곧 정식 오픈할 <보니 앤 클라이드> 외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다. 대신,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사람들 배꼽을 수집하면서 1년 가까이 선전하는 작품이 있다 해서, 이번 달은 오프브로드웨이 나들이를 갔다.
뉴스 형식을 빌린 풍자극
‘NEWSical’이라 쓰고, ‘뉴지컬’이라 읽는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뉴스’를 테마로 한 작품이다. 간단히 말해 TV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장르는 레뷔 코미디 뮤지컬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뉴스’라는 형식을 빌려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매력인데, 뉴스에 나오는 모든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풍자의 소재가 된다. 뉴욕 포스트지 리뷰 기사 중에 이런 글이 실렸다. “요즘 뉴스를 보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는데, 이 쇼는 우리가 되도록이면 웃게끔 만들어준다.” 방송에 나오는 몇몇 유명 인사들의 정신 나간 행동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고 마는 사람들에게 <뉴지컬>은 통쾌함을 안겨준다. 예를 들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으로 분한 배우가 나와서, 자서전을 냈다고 자랑을 하는 장면에선 “어떤 사람들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는데, 실로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심지어는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이죠!”라며 비아냥댄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이런 시니컬한 유머가, 재치 있는 극본과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에 녹아있다.
재기 넘치는 코믹 장면들
<뉴지컬>은 남자 둘, 여자 둘 총 네 명의 배우가 두 시간가량 TV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을 연기하는데, 1인 몇 역인지 세어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뉴스의 한 코너가 그리 길지 않듯이, 에피소드가 굉장히 빠르게 전개된다. 첫 장면에서는 엄청 큰 가짜 귀를 단 백인 남자 배우가 ‘버락 오바마’로 분하여 연기하며 노래한다. “여러분, 제가 오바마같이 생기진 않았죠? 그런데 어떻게 오바마 역을 하냐구요? 하지만 난 어쨌든 오늘 밤 그럴듯하게 오바마가 되어야 해요. 그게 내가 돈을 받는 이유거든요. 오바마는 엄청 큰 귀를 가졌어요. 내가 오바마를 닮진 않았지만, 이렇게 큰 귀를 달아보면 어쨌든 오바마 비스무리한 이미지가 될 것 같네요.” 이런 식으로, 네 명의 배우들은 여러 명사들의 특징적인 부분을 캐치해 연기해낸다. 오바마부터 시작해서, 레이디 가가, 사라 페일린, 조지 부시, 모건 프리먼, 래리 킹, 오프라 윈프리, 셀린 디온 이외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유명해진 일반인까지 수많은 아메리칸 셀러브리티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을 흉내 내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배우 지망생들이 이 작품을 보면 참 많은 도움이 되겠다 싶을 정도다. 각각의 성격, 말투, 말할 때의 버릇, 목소리, 표정 중에서 하나만 재현해도 특정 인물이 떠오른다. 특히, 곱상하게 생긴 젊은 백인 남자 배우가 모건 프리먼 특유의 무표정하게 상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빛, 허.허.허. 하고 끊어서 내는 듯한 웃음소리, 목에 공기가 낀 것 같은 특이한 목소리를 정확히 흉내 내어 대사를 하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또 한 여배우는 요즘 R&B 가수들이 모든 노래에 지나친 멜리스마를 넣어 감정 과다로 노래하는 걸 풍자라도 하듯, 셀린 디온의 창법을 다소 과장되게 흉내 내어 노래했다. 신기한 건 이 뮤지컬 배우가 정말 똑같이 모창을 해냈는데, 디온의 음악적인 영혼은 배제한 채 손동작이나 표정 등을 과장해서 보여주니 그렇게 웃길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재치 넘치게도, 뉴스 사이에 나오는 막간 광고도 잊지 않았다. 요즘 미국에서는 희한한 발명품들 몇 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스프링이 달려서 양 끝의 쇠 부분이 디용디용~하고 움직이는 아령과, 이중턱을 줄여주는 휴대용 운동기구가 그것들 중 하나다. 이중턱을 줄여주는 운동기구는 목과 턱 사이에 기구를 끼고 규칙적으로 고개를 움직이며 턱을 자극하면 턱이 들어간다고 선전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이런 게 필요하겠지만, 일반적으론 어찌 저런 발명품을 만드나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매우 얇은 면재질의 수면 담요에 모자와 팔 부분을 만들어서 입으면 포근함이 느껴지는 ‘스너기’도 겨울을 맞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작가는 이 세 가지 아이템으로 3중창을 만들었는데, 이 장면은 음악적 아이디어와 어우러져 정말 코믹했다. 한쪽에선 예쁘게 생긴 남자 배우가 극세사 담요에 얼굴을 살포시 묻고, “아~ 부드러운 나의 스너기~ 스너기~”라며 노래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몸집깨나 있으신 아주머니가 턱과 목 사이에 기구를 끼고 고개를 흔들며 “하나, 둘, 셋, 넷. 계속하자. 이중턱이 없어질 때까지”라고 한다. 또 한쪽에선 “디용~디용~ 이렇게 흔들면서 운동하면 효과가 두 배!”라며 근육질의 남자 배우가 나와 미국 보디빌더들 특유의 자신감 있는 미소를 보여준다. 세 사람이 이 장면을 천연덕스럽고 진지하게 3중창으로 노래를 하니, 좌중엔 웃다가 사래 들려서 기침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뿐 아니라, <애비뉴 Q>처럼 인형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최근 사생아를 낳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가정과 사회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풍자한 장면에서 사용된다. 근육질의 남자 배우가 슈워제네거 특유의 악센트, 튀어나온 앞니로 인한 구강 구조까지 표정으로 완벽히 재현해낸다. 그리고 인형들이 계속 등장하며, “아빠, 아빠!”를 외치는데 터미네이터는 그저 좋아서 그들을 껴안으며 웃는다. <터미네이터>의 배우이자 주지사였던 슈워제네거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어땠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이렇듯 작품 특성상 하나의 맥을 형성하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없다. 이것이 이 작품의 형식적 특성이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하기에도 각 에피소드들이 너무 짧다. 음악도 상당히 전통적인 레뷔 쇼 스타일이니, 보이는 그대로 참신한 현대적 스타일의 유쾌한 레뷔 쇼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 명의 피아노 반주자가 모든 배경음악과 반주를 담당한다. 하지만 극이 상당히 빠르게 전환되고 코믹한 대본 자체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굳이 음악에 더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하루저녁, 확실히 웃고 갈 수 있는 코미디를 택하고 싶다면 이 작품이 꽤 괜찮을 것 같다.
작품의 태생적 한계
디테일한 연기와 풍자로 꾸며진 <뉴지컬>은 참 신선했다. 하지만 이 극을 다 이해하려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야겠다 싶었다. 미국에서 최신 유행하는 것과 사건을 다루는 것이니만큼 전체적 정서가 지극히 미국적이다. 일반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소재는 다양해도 인간사에 공통으로 통용되는 주제를 전달한다면, 이 극은 궁극적으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관객이 미국 성인들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뉴욕으로 놀러 와 브로드웨이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이 극을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브로드웨이의 작품들은 내수 시장만 노려서는 절대 운영될 수 없는데, 이 극은 타깃이 너무 제한되어 있는 관계로 <스프링 어웨이크닝>처럼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뮤지컬이면 다 브로드웨이에 가야 되나?’, ‘왜 오프에 맞게 개발된 작품을 브로드웨이 같은 상업 공간으로 보내려 하나?’라고 묻는다면 적당히 답할 말은 없다. 사실 이 자체만으로도 목적에 합당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뉴지컬>이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작품이 ‘뉴스’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2002년부터 개발을 해오고 있는데, 뉴스의 특성상 한 달 이상이 넘어가면 그 뉴스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닌 이유로 <뉴지컬>의 작가 릭 크롬은 새로운 이슈 거리가 나올 때마다 작품을 새로 써야 했다. 10년 정도 개발을 했으면 그 작품은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남고, 상업 프로듀서의 손으로 넘어가야 할 텐데, 작품이 완성되지 못하고 계속 수정·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상업 프로듀서로서는 기피할 수밖에 없다.필자가 보았던 날은, 나이 어린 미국 팝 가수가 연상의 여자와 성관계를 해서 임신시켰다는 보도가 나간 지 1주일도 안 되었는데, 이미 그 사건이 극 안에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대사를 외울 시간조차 없어서 그 장면은 노래 없이, 배우가 앉아서 스크립트를 읽으면서 진행했다. 여성 앵커 컨셉으로 설정하여 큰 무리는 없었다. 극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다행히도 이 작품의 특성상 이 장면 역시 길어야 3~5분 정도의 짤막한 단편적 사건 중 한 부분이기 때문에 대세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사건이 생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개발을 해야 한다면, 창작자로서 다른 작품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양날의 칼이다.
작가 릭 크롬의 인터뷰
필자가 공연을 본 날, 운이 좋았는지, 극장에 잠깐 들렀던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릭 크롬이 대본, 작사, 작곡을 모두 담당했다. 원래는 ‘What in the World’란 제목으로 2002년에 기획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개발해 온 작품이다. 이렇게 오랜 개발 기간을 거쳤기 때문인지 확실히 밀도가 있다. 그래서 짧은 에피소드가 수십 가지가 있는데도, 재미없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특정 스타일의 작품을 계속 반복, 수련하며 쌓아온 개인의 노하우와 열정, 내공이 이 쇼 안에 모두 집약된 느낌이었다. 릭 크롬의 다른 작품
하지만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나름 1년 가까이 선전해온 그 자신조차도 이렇게 말한다. “언젠간 나도 세상에 남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지금 이 작품이 잘 운영되고 있다 해도, 막이 내리고 3개월 후면 사람들은 우리를 잊게 되겠지요. 나도 세상에 남을 작품을 쓰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네요. <뉴지컬>을 업데이트하기도 너무 바쁘거든요.”
그는 이런 레뷔 코미디 스타일 창작에 재능과 노하우가 있다. 오프에서의 성공도 좋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브로드웨이 진출이나 기억되는 작품을 쓰고 싶은 것이라면, 한계가 보이는 적당한 성공의 유혹을 과감히 자르거나,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대신 해줄 클론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성공도 좋지 아니한가? 참신한 시도로 소극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소극장만의 맛을 살린 작품도 우리에겐 필요하니까 말이다. 브로드웨이 극장에서는 이처럼 시니컬하고, 대놓고 아슬아슬하게 말하거나, 노골적이어도 겁나게 웃긴 작품을 볼 순 없다.이미 하얗게 머리가 센 중년의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그의 행보가 젊은 창작자들의 그것보다 더 궁금하다. 그리고 그를 응원한다. 문득 사진작가 김중만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연매출 17억 원을 웃도는 상업 작가의 길을 걷다가, 순수 사진작가로 전향했더니 한 해 8천만 원으로 매출이 줄더란다. 그럼에도 전향한 이유는 ‘더 이상 소모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의 일을 해주고 돈을 받지만 자기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자기 일을 해도 남는 게 없다고 느낄 때, 예술가는 좌절한다. 소모되거나 계속 자기를 쏟아부어야 유지가 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닌, 하나의 정립된 형태를 갖추는 작품을 썼을 때, 우리는 비로소 관문을 하나 넘었다고 느낀다. 필자 생각엔, 릭 크롬 역시 자신의 바람대로 세기의 명작을 남기고 싶다면 더 나이 들기 전에 다른 작품을 하나 써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나이가 들면 지치는 게 너무 당연하니까.
자투리 이야기
처음 이 뮤지컬의 제목은 ‘NEWSical’이 아니라, ‘What in the World’였다고 한다. 릭 크롬은 프로듀서들이 제목을 바꿨다며, 아직도 제목이 맘에 안 든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리 봐도 홍보엔 ‘뉴지컬’이 제격이 아닌가 싶다. 역시 뮤지컬은 뭘로 봐도 혼자만의 작품, 혼자만의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9호 2011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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