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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aodway 브로드웨이에서 극장주로 살아가기

글 |지혜원(뉴욕통신원) 2009-10-26 8,633

40개의 극장이 빼곡하게 들어선 뉴욕 한복판의 극장가. 세계 공연 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브로드웨이의 낮과 밤을 뒤흔드는 거대한 세력은 바로 이 극장들을 소유하고 있는 극장주들이다. 그들의 영향력은 과연 어디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브로드웨이의 막강한 권력자, 공연장 소유주
화려하게 밝혀진 뉴욕 미드타운 한복판의 극장가. 매일 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울고, 웃는 세계 최대의 공연 시장 브로드웨이에도 권력 관계는 존재한다. 브로드웨이의 최대 권력자는 과연 누구일까?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는 물론 세계 공연 시장을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인 카메론 매킨토시일까? 혹은 영국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견주어지는 미국 뮤지컬계의 자존심 스티븐 손드하임일까?

2004년 가을, ‘한번쯤 브로드웨이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지극히 막연하고 무모한 희망을 품었던 그 시절에 필자는 ‘어떤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할까’를 고민한 적 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가장 널리 알려진 회사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작품명 외에는 아는 것이 전무했기에, 일단 규모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로 압축해 지원서를 넣었다. 그래서 선택한 회사들이 슈버트(Shubert Organization), 네덜란더(Nederlander Organization), 쥬잠신(Jujamcyn Theater Company), 디즈니 시어트리컬(Disney Theatricals) 등이었다. 운 좋게도 네덜란더 사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바로 브로드웨이의 대부분의 극장을 소유한 극장주들이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실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메론 매킨토시, 데이비드 스톤(David Stone), 케빈 맥컬럼(Kevin McCullum) 등의 프로듀서나 스티븐 손드하임, 스티븐 슈왈츠 등의 유명 창작자들이 뉴욕의 공연 시장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의 제작을 창작의 완성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실제 공연까지로 본다면, 브로드웨이의 가장 최대 권력자는 바로 프로듀서도, 창작자도 아닌 극장주들인 것이다.

 

 

우리나라 공연계의 발전 과제가 논의될 때마다 흔히 대두되는 문제점 중에 하나가 공연장의 부족이다. 작품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공연장의 수가 대관 경쟁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40개의 극장이 모여 있는 브로드웨이는 훨씬 상황이 나은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이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작품에 적합한 극장, 관객에게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극장을 확보하기 위한 프로듀서들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오픈 런으로 운영되는 브로드웨이 공연의 경우 10년 이상 한 곳에서 공연하고 있는 작품이 적지 않다. 이러한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는 극장은 현실적으로 대관이 불가능한 실정이므로 대관 가능한 극장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면, 1998년부터 오페라의 유령이 21년째 공연 중인 마제스틱 극장, 증간에 극장을 옮기기는 했으나 현재 시카고가 공연 중인 엠버서더 극장, <라이온 킹>이 공연 중인 민스코프 극장 등은 대관 대상에서 제외된다.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프로듀서 혹은 관객들의 선호도가 높은 극장과 낮은 극장으로 나뉜다. 타임즈 스퀘어를 중심으로 둘러싼 극장들 - 민스코프 극장, 팰리스 극장, 마퀴 극장 등 - 은 높은 접근성으로 프로듀서들이 선호하는 공연장들이다. 막을 올리기 전에는 흥행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극장의 객석 수 또한 극장을 결정하는데 민감한 요소이다. 브로드웨이의 모든 극장이 기본적으로 500석 이상이기는 하지만, 597석의 헬렌 헤이즈 극장에서부터 1,933석의 거쉰 극장에 이르기까지 객석의 규모는 다양하다. 작품에 따라 어느 정도 규모의 극장에서 공연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프로듀서의 선택이기는 하지만,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극장 대관이 가능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몇몇 프로듀서들이 개인적인 친분을 동원해 수개월 전부터 대관을 약속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 4월 개막했던 <레스타트>가 한 달 만에 막을 내린 후 2007년 4월 <금발이 너무해>가 개막할 때까지 거의 1년여 간 팰리스 극장에서는 어떤 작품도 공연되지 않았다. 네덜란더 사의 대표가 프로듀서 중 하나로 참여하고 있기도 했지만, 그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메인 프로듀서 할 러프티그(Hal Luftig)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다. 드레스 리허설에서 만난 그는 1년여의 기간을 비워두면서까지 팰리스 극장을 고집한 이유로 1,700석이 넘는 객석 규모와 극장의 입지 조건 등을 꼽았다.

<금발이 너무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연장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연장 소유주가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공연의 경우 해당 소유주의 극장 중 하나에 대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그들이 먼저 좋은 공연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이야기다.

 

 

 

독과점 구조의 브로드웨이 공연장들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40개의 극장의 2/3를 웃도는 31개 극장을 슈버츠 사(17개)와 네덜란더 사(9개), 쥬잠신 사(5개)가 소유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힘은 자본력이지만, 단순히 공연장 사업에 뛰어든 사업가(혹은 장사꾼)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쌓여진 경험을 바탕으로 극장을 운영하면서 미국 공연계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많은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슈버츠 사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 주의 시라큐스 지역에서 먼저 공연 사업을 시작한 샘, 리, 제이콥 슈버트 3형제는 1900년 뉴욕 시에 진출하게 된다. 다수의 공연을 제작하는 동시에 공연장을 사들이던 슈버트 형제는 뉴욕에 진출하고 난 뒤 불과 십수 년 만에 전국적인 공연장 사업을 통해 공연계에서 막강한 세력을 갖게 되었다.

 

 

1929년에는 브로드웨이의 가장 주요한 공연장인 윈터 가든 극장, 샘 슈버트 극장, 임페리얼 극장 등을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기에 이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캣츠>, <드림걸즈> 등 작품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슈버트 사는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작품으로는 다니엘 레드클리프(Daniel Radcliffe)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에쿠우스>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파격적인 형식으로 새로운 뮤지컬의 트렌드를 서보였던 <패싱 스트레인지> 등이 있다. 현재 슈버트 사가 소유하고 있는 극장으로는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 중인 마제스틱 극장, <맘마미아>가 공연 중인 윈터 가든 극장, <시카고>가 공연 중인 앰버서더 극장 등이 있다. 브로드웨이를 제외하고도 오프 브로드웨이의 리틀 슈버트 극장을 비롯해 보스턴, 필라델피아, 워싱턴D.C. 등지에 다수의 극장을 소유하고 있다.

 

슈버트 형제(좌)와 마제스틱 극장(우)


네덜란더 사는 1912년 데이빗 네덜란더(David T. Nederlander)에 의해 설립되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출발한 이 공연회사는 거의 100여 년 동안 가업의 형태로 대를 이어 사세를 확장해왔다. 공연장 운영만이 아니라 작품의 제작과 배급에도 꾸준히 힘을 기울여온 네덜란더 사는 네덜란더 극장, 민스코프 극장, 팰리스 극장 등 브로드웨이에 포진한 9개 극장을 비롯해 LA, 디트로이트 등 미국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극장들은 물론 런던에도 3개의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제임스 네덜란더 시니어(James M. Nederlander)와 그의 아들 제임스 네덜란더 주니어(James L. Nederlander)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최근 제작에 참여한 작품으로는 지난 시즌 리바이벌 되었던 <아가씨와 건달들>, <9to5>, <넥스트 투 노멀> 등이 있다. 이따금씩 네덜란더 사의 이름으로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주로 제임스 네덜란더 본인이 프로듀서로서 제작에 관여하는 경우가 보다 잦다.

 

 


이들보다 적은 수의 극장을 소유하고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닌 쥬잠신 사는 자동 제어기기 전문업체인 허니웰(Honeywell)의 전 사장이었던 제임스 빙어와 그의 아내 버지니아 맥나이트 빙어(Virginia McKnight Binger)에 의해 1956년 설립되었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쥬잠신’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자녀들인 쥬디, 제임스, 신시아의 이름 철자를 조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쥬잠신 사는 현재 알 허쉬펠드 극장, 유진 오닐 극장, 세인트 제임스 극장 등 주요한 극장 5개를 운영하며 작품 제작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퍼블릭 시어터에서 리바이벌 된 <헤어>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지난해 공연되었던 <어 케이터드 어페어>(A Catered Affair) 등에 참여하였다.

 

 

극장 운영을 넘어선 전방위 운영체제
슈버트 사의 영역은 그들이 소유한 17개의 극장의 운영에만 그치지 않는다. 티켓 에매 시스템은 그들이 공연계에서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다. 브로드웨이 공연예매 시스템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다르다.

한 공연의 티켓 구매가 다수의 예매처에서 가능한 우리나라와 달리 브로드웨이는 티켓 구매 시스템이 각 공연장 별로 통합되어 운영된다. 이 중 슈버트 사가 소유한 17개의 극장과 쥬잠신 사의 5개의 극장은 모두 텔레차지(Telechrge)의 시스템을 이용하는데 바로 이 텔레차지가 슈버트 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더 사의 극장들은 경쟁사인 티켓마스터(Ticketmaster) 시스템을 이용한다.


슈버트 사는 미국 공연계에 자신들이 공헌하는 (혹은 공헌해야만 하는) 역할이 상업 공연의 제작이나 공연장 운영 이상의 것이라 인식하고 있다. 1945년 슈버트 형제에 의해 설립된 슈버트 재단은 미국 공연계의 비영리 극단이나 개인, 지역극장, 무용단들을 후원하는 단체로 지원서를 접수받아 선발된 소수에게 후원금을 지원한다. 또한 1976년부터 꾸준히 아카이브 구축작업을 해왔다. 대본이나 음악자료는 물론 무대 디자인, 사진, 홍보물, 극장 건축에 대한 자료에 이르기까지 슈버트 사의 귀중한 공연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온 것이다. 슈버트 아카이브(www.shubertarchive.org)는 1986년부터는 자료를 원하는 일반인에게도 제한적으로 공개가 허용되고 있다.


네덜란더 사는 브로드웨이의 관객몰이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인 단체 판매에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룹 내 마케팅 본부 산하에 단체 판매 부서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10여개의 단체 판매 에이전시 중 하나인 셈이다. 이들은 자사 소유 극장만이 아니라 타 극장의 공연들도 모두 취급하며 단체 판매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형태로 운영된다. 브로드웨이에서 단체 판매는 꽤 비중 있는 세일즈 부문이다. 주로 학교나 기타 단체, 여행사를 통한 단체 관람객들의 단체 구매가 대부분인데, 적게는 10~15장에서부터 많게는 수백 장에 이른다. 공연 마케팅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입소문 마케팅이다 보니 이러한 단체 관람객의 유치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하여, 실제 필자가 근무하기도 했던 네덜란더의 마케팅 부서에서는 이 단체 티켓 구매 고객들을 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주요 고객과는 특히나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00여 년간 가업으로 운영되어 온 네덜란더 사는 현재 대표를 많고 있는 제임스 네덜란더 부자 말고도 많은 일가 친척들이 공연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 중 해외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네덜란더 월드와이드(Nederlander Worldwide)의 활약이 눈에 띈다. 최근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 중인 이들은 몇 해 전 중국 내 현지 업체와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고 중국 전역에 대한 공연장 사업과 공연 배급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되었던 세컨드 클래스 프로덕션인 <42번가>와 중국 내 여러 도시에서 공연되었던 <아이다> 등의 투어 프로덕션 등을 배급했다. 올해 초에는 중국 공연 <소울 오브 샤올린>(Soul of Shaolin)을 브로드웨이로 진출시키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극장주들의 과점 형태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 이러한 체제를 유지해오며 그들이 사세를 확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공연장 운영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해 오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을 사랑하는 프로듀서이자 누구보다 브로드웨이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견제할 만큼 강력한 각 노동조합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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