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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 PEOPLE] 변정주 연출가&송형석 신경정신과 전문의, 행복은 또 다른 삶에도 있다 [No.115]

글 |송준호 사진 |김호근 2013-04-30 5,582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덮어두면 곪는다. 방치된 상처는 결국 주변의 살 전체를 썩게 한다. 이것은 언뜻 피부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정신과의 영역일 수도 있다. 끝내 드러내지 못한 욕망, 해소되지 않은 갈등,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는 언젠가 가장 안 좋은 형태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연일 사회면을 채우는 우리 주변의 비극들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하고 소름 돋는 일은 가족의 파탄이다.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의 갑작스런 붕괴, 그 뒤에 드러난 오래된 상처의 흔적들은 지금 우리의 가족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더뮤지컬>은 이번 호부터 공통의 관심사를 교차점으로 공연계의 인물과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뮤지컬이 단순히 오락이나 여흥이 아닌, 이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그 첫 번째 자리로 초연 후 2년 만에 돌아온 <넥스트 투 노멀>의 변정주 연출가와 송형석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초대했다. 상처와 가족, 그리고 평범함의 가치에 관한 생각들과 함께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의문점을 나눠봤다.

 


 

사회적 규범이 만드는 마음의 병

먼저 송 선생님께 <넥스트 투 노멀>에 대한 감상을 들어볼까요.
송형석   오랜만에 환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우리를 이렇게 보고 있겠구나, 하는. 그리고 닥터 매든은 별로 멋이 없어요(웃음). 꼭 레지던트 2~3년 차 같달까요. 제가 윗사람이었으면 혼냈을 것 같아요. 다이애나가 여기서 더 나아질 가능성이 많은데 너무 쉽게 놔주는 게 아쉬웠어요. 또 다중인격장애와 정신분열증에서 나오는 환각은 다른데, 다중인격장애는 자기 안에서 주체가 바뀌는 거고 정신분열증의 인격은 자기 것이거든요. 다이애나는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것도 중증 환자로 볼 수 있어요.
변정주   전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의학적으로 게이브는 다이애나의 망상 속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세계가 있고, 게이브가 그 세계에 실존하는 인물이라면 그 둘이서는 그들만의 소통을 하는 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사랑과 영혼>으로 바뀌네요.
송형석   ‘접신 상태’로 볼 수도 있군요. 그런데 뇌의학으로 보자면, 이게 사람 몸도 다 로봇처럼 조작될 수 있다는 건데요. 이런 관점에서 환자를 볼 때 이상한 경우가 있어요. 정신분열증이라고 하면 몸의 기능이 다 망가져야 되는데, 이상하게 누구와 얘기하는 그 부분만 고장 나 있고 다른 데는 멀쩡한 거예요. 방금 말씀하신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는 또 정상으로 돌아와요. 반면 다이애나는 그렇게 볼 수가 없는 게 조울증도 있고 자살충동도 못 이기거든요. 이 정도면 치료하기 어려운 수준이죠.
변정주   저는 이 작품이 정신분석학적이기도 하지만 사회학적이기도 한 것 같아요. 마지막에 다이애나가 가정을 떠나잖아요. 원래 그 증상의 배경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해서 결혼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8개월 만에 죽어서 ‘멘붕’이 온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집을 떠남으로써 치유가 되는 거라고 봤어요. 입센의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처럼요. 단란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압박이 복합적으로 만든 병이고, 그걸 놓음으로써 치료의 시발점이 되는 거죠. 그런 결혼과 육아의 사회적 규범들이 사람들을 답답하게 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다이애나만 환자로 몰리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댄이나 나탈리도 환자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 당위들을 놓아야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문제도 해결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행복은 즐겁게 놀 때 온다

송형석   동감하는 게 저희 병원에도 댄이나 나탈리 같은 사람들이 오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댄 같은 사람도 많아요. ‘가족에 집착하지 말고 원하는 감정대로 살아라’ 조언하지만, 정말 답답한 게 이거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제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너 좋아하는 게 뭐냐’에요. ‘1억 원을 갖게 된다면 한 달 동안 뭐 할 거냐’ 물으면 말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예요.
변정주   전 여행을 가겠습니다.
송형석   좋아요. 그럼 묻겠습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변정주   유럽요.
송형석   그다음은요? 어디에서 어떻게 쓰실 건데요?
변정주   베니스요. 하루 호텔비가 70~80만 원이니까. 항공료를 더하면 벌써 꽤 나오죠. 일단 비엔날레 보고, 차 렌트해서 틈나는 대로 주변 도시들로 놀러 다닐 겁니다. 사실 비슷한 일정을 해봤거든요. 2주에 800만 원 정도를 썼어요. 아, 1억 원이랬죠. 혼자서는 어렵겠어요. ‘걸’이 있어야겠네요(웃음). 선물도 사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면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송형석   이렇게 적극적으로 답하시는 분들은 걱정할 게 없죠. 하지만 대개는 막연하게 대답하거든요. ‘거기서 뭐 할 건데’ 물으면 모른다고 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 그 압박에 눌려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제가 보기엔 댄은 꽤 괜찮은 사람인데, 너무 고생하더라구요. 좋은 남편, 좋은 아빠만 되어도 훌륭한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남자’를 자기 아이덴티티로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그걸 못하면 막 죽으려고 하는 거죠. 좋은 남편이나 괜찮은 인간, 이런 건 관심도 없어요. 그래서 전 하다못해 ‘신나게 노는 인간’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댄도 집을 나가야겠네요.
송형석   그렇죠. 아내 걱정은 그만하고, 대신 딸 걱정은 좀 해야죠. 이게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인데, 서양 사람들은 아내와의 관계를 너무 중시하는 거 같아요. 이 작품에서도 딸이 마약을 하건 말건 신경도 안 쓰고 아내한테만 집착을 하거든요.
변정주   세 사람에 비해 헨리는 그런 강박이 없어요.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나탈리는 클래식을 하고 헨리는 재즈를 하는 설정이거든요. 대충 치는 게 창작이라고 할 정도로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죠. 그런 인물이 사랑을 가르쳐주는데, 재밌게도 사회 규범이나 그 또래가 지녀야 할 가치 기준에서 벗어나 있어요. 그래서 전 규범이나 윤리 의식에서 벗어날 때 행복해진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을 통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송형석   우리나라는 그 메시지를 대량 투여해서라도 사람들을 좀 놀 수 있게 해줘야 될 것 같아요. 노는 방법을 너무 몰라요. 뮤지컬을 보면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면서 논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관객들도 그걸 보면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나 생각을 해봤으면 해요. 브라질 삼바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1년 내내 축제 준비를 한다고 말하고 다니잖아요. 사실은 그냥 노는 건데. 그런데 그렇게 살아도 삶은 절대 망가지지 않거든요. 사람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변정주   동감합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도 밴드 활동을 하고 만화도 그리시잖아요. 사실 우리 나이 대 남자들은 놀 줄 몰라요. 이쪽 일 안 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주말에 하는 게 술 진탕 마시고 집에서 뒹굴거리는 거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전 제일 재미있는 장난감이 문화 예술인 것 같아요. 여자들도 그런 남자를 좋아하구요(웃음). 문화 예술을 가지고 얘기를 하다보면 친해지기도 쉽고 대화도 재미있어지거든요. 그런 일종의 놀이들이 그냥 술 먹고 클럽 가서 노는 것보다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드는 데 훨씬 도움이 되죠. 선생님 말처럼 사람들이 문화나 예술, 나아가 역사나 철학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점점 반대로 가고 있네요. 대선까지 잘못해서….


이 발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일동 웃음).

 

분석에 대한 의사와 연출가의 차이

송 선생님 아이디도 공교롭게 닥터 매드(DrMAD)더군요.
송형석   제가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박사를 존경하거든요. 악하고 선한 걸 떠나 정신과 의사들이 그렇잖아요. 상대방 행동을 예리하게 파악해서 마음을 꿰뚫는 데 권력이 있는 거고, 정신과 의사니까 그런 게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죠. 지금 봐도 저는 공감해주는 스타일은 아니고 해부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변정주   궁금한 게 의사는 환자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게 하는 환자가 있을 것 같아요.
송형석   그럼요. 그럴 땐 보통 때보다 더 드러내기도 해요. 좀 다른 건 의사는 상대 문제를 반영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공격이 와도 그걸 튕겨내야 하거든요. 근데 다이애나 같은 경우는 자아가 망가진 사람이라 튕겨내봐야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럴 때는 뮤지컬에서처럼 당신이 록스타를 원한다면 내가 그렇게 돼주마 하면서 감정 표현을 하는 거죠.
변정주   그래서 의사의 가치관이 정신과에서는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제 주변에 나이 드신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이분이 평소 확실하게 보수적인 걸 제가 안다는 말이죠. 이분한테 가면 의사로서 진단을 하기보다는 그냥 어른으로서 설교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송형석   물론 그런 분들이 있을 수 있죠. 어느 분야나 미숙한 사람들은 있잖아요. 저도 10년 전을 되돌아보면 참 미숙했거든요. 그래서 의사는 중심을 잘 잡고 특정 성향을 드러내기보다는 상대의 성향에 맞춰서 대응을 해야 합니다. 가령 댄이 찾아와서 딸이 마약을 한다고 상담을 해요. 그런데 여기에 대고 “대마초 정도는 피워도 돼요” 이러면 황당하겠죠. 눈치를 봐야 돼요. 상대의 상황에 맞게 편을 들어주는 거죠. 그런데 온 가족이 함께 왔는데 “그럼 당신 생각은 어떻소?” 하고 되물을 땐 난감해지죠.


그러네요. 선생님 생각은 어떤지 말씀해보시죠.
송형석   그때는 어물쩡~ 얼버무리면서 넘겨야죠(웃음).
변정주   어우 어렵네요. 정신과 의사란.
송형석   제 생각보다 환자를 치료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거짓말도 필요한 거죠.
변정주   그런 면에서는 저희와는 반대네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안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연기라는 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진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융통성도 없어서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일은 안할 뿐더러 못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배우라고 하면 그들의 평소 모습조차도 꾸며진 거라고 의심할 때가 있어요.

 


 

그런 분들은 연출가도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이니까 역시 의심하겠네요.
변정주   제 말이요! 연출가는 가짜를 꾸며내는 게 아니라 어떤 진실한 현실을 전달하려고 하는 사람인데요.
송형석   저도 비슷해요. 환자 보는 거랑 제 가족들 대하는 거랑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제가 환자에게 진실하게 대하는 거라고 보는 건데요. 그런데 부작용은, 그렇게 하니까 아내가 자꾸 자기를 환자 다루듯이 한다는 거예요. 마치 간 보는 것처럼 말이죠(웃음).
변정주   그러고 보니까 아까 우리 트위터 ‘맞팔’했을 때 제 트윗 유심히 보시던데 혹시 또 분석하신 거 아닌가요? 마음만 먹으면 하실 수 있잖아요.
송형석   그렇잖아도 아까 팔로우하자마자 보니까 불평불만이 쫙 있길래 요즘 심경이 한 방에 들어오던데요.
변정주   아 이런, 벌써 분석당했네(웃음).
이런 식으로 서로의 직업에 대한 선입견도 클 것 같아요.
송형석   저희가 사람을 분석하려고 작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알려져서 그런지 사람들이 경계를 많이 한단 말이죠.
변정주   혹시 저도 지금 그러고 있나요?
송형석   예(일동 웃음). 아니 그런데 그게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경계를 하고 있으면 사람이 실수를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럼 그 실수를 가지고 파악을 하는 거죠.

 

놓을 때 오는 행복

요즘 ‘힐링’이 대세잖아요. 이건 반대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고 있나 말해주는 말 같아요. 남들처럼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집에서 살아야 평범한 삶이라고 여기고, 그러지 못하면 ‘루저’라고 생각하는 거죠.
변정주   이 작품의 인물들도 모두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린 모두 특별해지려고 하거든요. 솔직히 다 평범한 사람인데, 그런 현실을 인정 안 하려고 하죠. 비범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람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잖아요. 행복의 기준도 다르구요. 결국 이 작품에서 말하는 것처럼 평범이냐 비범이냐를 떠나 무엇이 행복한 삶이냐를 생각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나탈리가 말하듯이 ‘평범함 그 근처까지만’ 가도 충분히 좋은 삶이니까요.
송형석   사람들이 평범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을 조절(Control)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거든요. 사람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가장 안정돼요. 문제는, 그게 안 되거든요. 그런데도 자꾸 하려고 하니까 상처가 생기는 거죠. 이 극에서도 정신과 의사까지 끌어들이지만 다 실패하잖아요. 결국 다이애나는 자신이 생각한 평범함의 기준, ‘행복한 가족’이라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면서 지옥에서 탈출하게 되죠. 그래서 저도 환자들에게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그 가치관을 고수하는 한 평생 가도 행복하지 못할 거다”라고 말해줘요.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의외로 쉽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거든요. 그런 대안에 대해서 다들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5호 2013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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