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스파이더 맨: 턴 오프 더 다크> Spider-Man: Turn Off The Dark [No.88]

글 |이곤(뉴욕 통신원) 사진 |Jacob Cohl, Joan Marcus 2011-03-04 5,304

지난 11월 28일, 오랜 진통 끝에 드디어 뮤지컬 <스파이더 맨>의 막이 올랐다. 6천 5백만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고의 제작비, 록그룹 U2의 보노(Bono)와 디 엣지(The Edge)의 음악, 그리고 <라이온 킹>의 줄리 테이머의 연출 등으로 <스파이더 맨>은 이미 제작 단계에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뉴욕의 언론매체들이 공연 첫 날부터 앞 다퉈 프리뷰를 쏟아낸 것은 사뭇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프리뷰 기사의 대부분은 실망과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첫 프리뷰는 기술적인 결함으로 다섯 번이나 중간에 멈춰야 했고, 이는 당일 공연에 참석했던 관객은 물론 언론의 주된 비난의 구실이 되었다. 이 작품에는 원작이 요구하는 극적 판타지를 구현하기 위한 고도의 플라잉 기술이 필요했고, 총 스물일곱 번에 달하는 배우의 플라잉 장면을 위해 모든 제작진들의 역량, 그리고 연습 기간이 할애되었다. 하지만 프리뷰 당일까지 공중장면의 기술적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했고 결국 그 날 공연은 여러 번의 지체 끝에 3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을 기록했다.

 

 

뮤지컬의 제작과정
<스파이더 맨>은 40년 동안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마블 코믹 북(Marvel Comics)의 만화를 바탕으로 연출자인 줄리 테이머와 글렌 버거(Glen Berger)가 대본을 쓰고, 록그룹 U2의 보노와 디 엣지가 음악과 가사를 맡아 창작한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보노의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하다. 보노는 그동안 록 뮤지션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뮤지컬 창작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첫 프로젝트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 2007년 첫 독회 뒤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뮤지컬은 곧 이어 발생한 금융위기로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2010년 2월에 오픈하기로 한 기존의 계획이 어긋나게 되면서, 참여하기로 했던 오리지널 캐스팅 배우들이 중도에 하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보노와 줄리 테이머는 제작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클 콜(Michael Cohl)을 영입하였다. 마이클 콜은 롤링 스톤즈와 U2를 비롯한 록그룹의 콘서트를 주로 제작해 온 인물로 그 역시 보노의 제안을 받고 처음으로 뮤지컬 제작에 뛰어든 셈이었다. 그의 수완 덕분에 제작비 문제는 곧 해결되었고, 공연은 다시 정상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11주의 연습에도 불구하고 플라잉 기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2010년 11월 14일로 예정되었던 프리뷰의 시작이 11월 28일로 연기되었고 예매된 티켓을 환불해주는 해프닝을 겪기도 하였다. 연출자 줄리 테이머는 매끄러운 공중장면을 위해 더 많은 연습 시간을 요구했지만 1주일에 1백만 달러에 달하는 운영비의 압박으로 더 이상 공연을 미루는 것이 어려워졌고, 결국 11월 28일 단 한 번의 런 스루도 해보지 못한 채 공연의 첫 스타트를 끊어야 했다.

 

 

 

뮤지컬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
필자가 공연을 관람한 것은 첫 프리뷰로부터 4일이 더 지난 12월 2일 목요일이었지만 여전히 공중장면(Aerial Scenes)은 매끄럽지 못했다. 배우들을 보조하기 위해 대기하는 크루가 고스란히 관객의 눈에 노출되었고 안전을 위해서인지 불필요한 부분까지 무대를 전반적으로 밝혀 놓아 극으로의 몰입에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첫 프리뷰 때처럼 그렇게 자주 멈춰서지는 않았지만 1막에서 플라잉 케이블이 잘못 작동되어 약 5, 6분 정도 지체되었다. 하지만 그러나 그날 공연의 이변은 스파이더 맨과 대립하는 주요 악역중의 하나인 아라크네 역의 나탈리 멘도자가 부상 때문에 출연하지 못한 것이었다. 멘도자는 첫 프리뷰 공연 때 무대 뒤에서 대기하다가 무대장치를 지탱하던 로프와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의사의 충고에 따라 그녀는 당분간 휴식과 치료를 통해 몸을 회복한 뒤 다시 공연에 컴백할 예정이라 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상은 이미 이전에 부상으로 교체된 두 배우의 전력과 더해져 이 공연의 안전성에 대한 외부의 우려가 증폭되는 계기가 되었다. 연습과정에서 두 명의 배우가 착지하면서 입은 부상 때문에 공연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이는 배우노조와 뉴욕 주 노동국에서 공중 장면들을 체크해 그 장면을 최종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 때문인지 이 공연에 참여한 제작진은 물론 외부의 관심이 대부분 어떻게 공중장면을 매끄럽게 처리할 지에 집중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는 상당한 연습 시간을 필요로 했고 이 때문에 다른 창작적인 부분들이 희생되고 덜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느껴졌다. 
프리뷰를 통해 드러난 <스파이더 맨>의 기술적 문제와 완성도의 문제는 TV 토크쇼의 주된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직 정식 오픈(2011년 1월 11일)까지는 시간이 남았고 그 사이 공식적인 리뷰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프리뷰에 참석한 관객은 마치 연습을 보고 있는 듯한 씁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첫 프리뷰 때 참다못한 한 여성이 소리쳐 자기가 마치 실험용 쥐가 된 듯한 기분이라며 항의했다고 한다. 또한 140달러가 넘는 티켓 가격을 지불하고도 중간에 견디지 못하고 나간 관객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신화적 분위기의 오프닝과 혁신적인 무대기술
뮤지컬은 영화 <스파이더 맨> 첫 편의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왔다. 1막은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는 고등학생인 피터 파커(Peter Parker)가 노먼 오스본(Norman Osborn)이 실험 중인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지닌 스파이더 맨으로 변한다는 단순한 플롯이다. 그리고 그 안에 그가 마음에 둔 이웃집 여학생 메리 제인 왓슨(Mary Jane Watson)과의 연애담이 삽입된다. 이 뮤지컬이 원작 만화나 영화와 다른 새로운 부분은 줄리 테이머가 그리스 신화로 부터 빌려 창작한 캐릭터 ‘아라크네(Arachne)’이다. 아라크네는 직물을 짜는 자신의 솜씨를 뽐내며 아테네 여신에게 내기를 걸었다가 여신의 미움을 받아 거미로 변한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로, 줄리 테이머가 가장 공을 들인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극의 시작을 여는 신화 속의 아라크네의 이야기는 오렌지 색 천을 길게 늘어뜨린 공중그네에 올라탄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러한 신화적 분위기의 오프닝에서 현실의 학교 장면으로 전환은 거대한 패널로 만들어진 학교 교실이 극장 천정에서 내려오면서 이루어진다. 무대 구조물은 마치 종이로 오려낸 그림책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책장을 넘기듯 패널이 분리되며 만화적인 느낌의 교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안에 역시 만화적인 느낌의 책걸상들, 그리고 학생인형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 장면은 앞으로 자주 보게 될 만화적 배경과 일상적인 캐릭터의 어색한 조화를 드러내는 첫 시작이다. 2차원 만화 느낌의 컷 아웃(Cutout) 배경물은 스파이더 맨이나 아라크네 또는 그린 고블린(Green Goblin) 같은 만화적인 캐릭터들과는 잘 어울렸지만 피터나 메리 제인 같은 실제 인물과는 왠지 어색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이러한 배경과 인물의 조화를 위해서는 실제 배우가 입는 의상이나 연기 역시 스타일화 되거나, 배경이 사실적이 되어야 하는데 이 두 차원이 조화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은 이 공연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대사로 이루어진 장면들에서는 전반적으로 아직 갈등과 액션이 분명하게 형상화되지 못했고, 대사가 배우의 입에 밀착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피터와 메리 제인의 하교길 장면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다. 러닝 머신처럼 움직이게 된 바닥 위를 걷는 주인공의 걸음에 맞춰 5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만화적인 느낌의 컷 아웃 배경들이 마치 우리가 책 페이지를 넘기듯이 넘어가면서 다른 풍경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집에 이르면 집의 외부를 보여주는 패널에서 다른 패널이 분리되며 실내가 보여지고 그 안에 자리 잡은 두 가족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장면은 불우한 가정환경을 지닌 두 주인공이 정서적으로 더 친밀해 지고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노먼 오스본의 실험실은 SF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차갑고 미래적인 커다란 실험기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중에서 커다란 브릿지가 내려와 1, 2층의 연기 공간을 형성하고 바닥에는 영상이 투사되어 미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러한 바닥의 영상 투사는 주로 스파이더 맨이 도심의 빌딩을 오르내리는 장면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바닥에 투사된 영상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스파이더 맨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마치 빌딩을 타고 오르내리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었다.
실험실에서 거미에 물린 피터는 그날 저녁 자신이 지닌 초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벽 위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주인공을 형상화하기 위해 이 장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플라잉 기술이 선보여진다. 케이블에 매달린 배우는 벽 위 아래로 종횡무진하며 뛰어다니고, 처음엔 고정된 듯이 느껴졌던 벽도 주인공의 움직임이 격렬해짐에 따라 점점 분리되어 공중으로 사라져간다. 하지만 아직 케이블을 설치하고 제거하는 연습이 덜 된 듯 플라잉 장치를 담당한 크루가 관객의 눈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초능력을 확인하게 된 주인공 피터는 본격적으로 스파이더 맨이 되어 악당과 싸우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며 종횡무진 모험을 펼친다. 한편 스파이더 맨의 활약상에 질투심을 느낀 오스본 박사는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어 그린 고블린으로 자신을 변형해 스파이더 맨에 맞선다.
1막은 스파이더 맨과 그린 고블린의 싸움으로 끝을 맺게 되는데, 이 결투 장면에서 가장 화려한 플라잉 기술이 펼쳐진다. 두 사람은 플라잉 장치를 통해 1층 관객들 위로 날아다니며 격투를 벌인다. 그 중의 압권은 스파이더 맨이 그린 고블린의 등위에 올라타 함께 날아다니는 장면이다. 공중에서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우는 장면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창작진들이 의도하고자 했던 케이블 기술의 효과가 충분히 드러난 듯이 보였다. 이 장면에서 줄리 테이머가 원했던 공중 장면의 박진감이 절정에 달하고 결국 1막은 그린 고블린의 죽음 , 그리고 스파이더 맨의 메리 제인 구출로 막을 내린다.
플라잉 장치를 통한 공중 장면은 기대를 뛰어넘는 특별한 무엇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빠른 속도감을 통해 지금까지 다른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진감을 만들어 내었다. 연습과정에서 다쳐 제외된 두 명의 배우가 모두 플라잉에서 착지하는 순간 부상을 당했던 만큼 플라잉 장치 자체의 위험성보다는 빠른 속도의 플라잉으로부터 착지하는 순간이 배우에게 가장 큰 부담일 것이고 이러한 속도에 배우들이 적응하는 시간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노의 음악으로 승부하는 2막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 1막에서 이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들은 거의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2막에서 제작진은 1막과의 차별점을 영상의 적극적인 사용에서 찾은 것 같다. 2막은 전반적으로 영상 이미지가 무대를 지배했다. 마치 2막을 위해 의도적으로 1막에서 영상 사용을 최소로 한 듯 보일 정도였다. 마치 영화를 보듯 실제로 움직이는 배우들 역시 영상의 일부가 된 듯이 보였고 따라서 훨씬 더 2차원적인 이미지가 무대를 지배했다. 또한 1막에서 죽은 그린 고블린을 대신해 연출가 줄리 테이머는 아라크네를 악역으로 변화시켜 스파이더 맨과 맞서게 한다. 또한 그녀의 장기인 가면과 의상을 사용해 창조한 여러 명의 괴물 악당들을 등장시켜 코믹하면서도 다채로운 시각효과로 가득 찬 무대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2막에서는 피터와 메리 제인의 갈등과 러브 스토리에 보다 중점을 두었고 그들의 노래가 상대적으로 부각되었다. 뚜렷하게 인상에 남는 곡이 없었던 1막에 비해 2막에서는 메리 제인이 부르는 ‘If the World Should End’와 피터가 부르는 ‘The Boy Falls From the Sky’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아라크네와 스파이더 맨의 마지막 결투 그리고 그들의 듀엣곡 ‘Love Me or Kill Me’로 멋진 대미를 장식했다.

 

 

 

 

 

극장을 나오며
프리뷰에서 지적된 스토리의 빈약함, 그리고 기술적인 결함이 현재 이 뮤지컬의 가장 커다란 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술적인 부분은 매끄러워질 테고 플라잉 장치를 통한 공중장면은 충분히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단순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명확한 주제의식의 부재는 평론가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기에는 다소 역부족으로 보인다.
6천 5백만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 그리고 한 주에 1백만 달러의 운영경비가 소요되는 이 뮤지컬은 알려진 바로는 5년 동안 거의 전석을 매진시켜야 제작비를 만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론도 이 뮤지컬의 장래에 대해 그리 밝지 않은 전망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브로드웨이에 이 뮤지컬과 견줄만한 기술력과 재미를 지닌 뮤지컬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다만 향후 이 뮤지컬보다 훨씬 뛰어나고 화려한 스펙터클을 갖춘 작품들이 많이 나타난다면 수익에 있어 문제가 되겠지만 과거 몇 년간 브로드웨이의 모습을 돌이켜 보건대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