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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oadway 미국의 뮤지컬 창작 지원 사업[No.80]

글|지혜원(뮤지컬칼럼니스트) 2010-06-08 6,017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본을 필요로 한다. 돈 많은 상업 프로듀서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이에 맞는 창작 인력을 꾸려 작품을 개발해나가는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지만, 대부분의 뮤지컬 창작 작업은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다. 훌륭한 뮤지컬 작품이 탄생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에 걸쳐서 극본과 음악의 개발 과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재정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던밀리> Photo by Joan Marcus

 

미국의 공연예술 지원정책
공연예술을 비롯한 예술 분야의 지원은 문화정책 혹은 예술경영이라는 다소 거창한 표현 아래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라마다 정책 성향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문화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의 공연예술 지원 정책은 일반적으로 국가(연방정부) 차원과 주정부나 지역의 차원으로 나뉘어 이루어진다.

 

특히 연방정부 산하의 행정 부처들이 각각의 성격에 맞는 지역이나 단체의 개별 프로젝트를 선별하여 지원하는 프로그램들과 더불어 운영하는 국립예술기금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 이하 NEA ) 은 문화예술 지원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66년에 설립된 NEA는 수준 높은 예술 창작을 위한 지원 사업과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쳐왔다. 매년 의회로부터 편성된 예산을 각 비영리 예술단체와 창작자 등을 선별해 지원하고, 각 주와 지역의 예술단체, 창작자를 지원하는 또 다른 예술기관에 지원하기도 한다.

 

역할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NEA의 역할은 단순히 지원금을 통한 지원사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실 미국의 예술 분야 지원금의 전체를  본다면 NEA의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04년에 발표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체의 한 해 문화예술 지원액 중 연방정부가 담당하고 있는 비율은 2퍼센트, 그중 NEA가 지원하고 있는 비율은 고작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EA 기금이 예술단체와 예술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NEA의 지원금을 받았다는 것이 그만큼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NEA의 지원금 중 예술단체를 위한 지원금은 전체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중 상당부분이 매칭 지원금 Matching Grants 의 성격을 띤다. 이는 정부가 예술단체에 재정 지원을 할 경우 민간 부문에서 이에 상응하는 후원금을 확보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로, 민간 부분의 역할을 확대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즉 NEA의 지원금은 비영리 공연단체에 일종의 종자돈 역할을 하는 셈이다.


비영리 공연단체나 창작자를 지원하는 NEA의 공연예술 지원금은 단체의 성격이나 프로젝트의 장르에 따라 지원금 신청을 나눠 받고 있다. 공연단체의 운영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기에, 새로운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는 해당 프로젝트 별로 뮤지컬 부문의 지원금 Musical Theatre: Access to Artistic Excellence 을 신청할 수 있다. 이 지원금은 신작의 경우 워크숍이나 쇼케이스 등의 개발 단계, 혹은 창작자를 보조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고, 기존 작품의 재공연이나 교육 프로그램, 관객 계발 프로그램 등의 운영비 보조금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민간 비영리 공연단체가 크게 발달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특히 새로운 작품의 창작에 비영리 단체들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상업 프로듀서가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제작비를 전액 충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새로운 뮤지컬을 창작하는 일은 비영리 공연단체의 지원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상업 프로듀서가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는 경우라고 해도 비영리 공연단체와 협업을 통해 작품을 발전시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창작 영역에서 비영리 공연단체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고 하겠다. 상당수의 비영리 공연단체들이 새로운 작품을 발굴해내고 개발하는 것을 이들의 설립 취지로 내세울 만큼 상업 프로듀서가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톡톡히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비영리 공연단체는 대부분 연방정부의 후원금이나 지역 예술지원 단체의 후원금, 민간 후원금 등에 기대어 운영되고 있다. 티켓 수익만으로 단체를 운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NEA는 바로 이들 비영리 공연단체들이 지원금을 신청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지원 기관이자 공연예술을 위해 비영리 섹터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아이 러브 유 비코즈> Photo by Joan Marcus

 

NAMT의 효율적인 뮤지컬 창작 지원 시스템
특별히 뮤지컬 창작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되는 지원 기관도 있다. 1985년에 설립된 전미뮤지컬시어터협회 National Alliance of Musical Theatre ( 이하 NAMT )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뮤지컬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뮤지컬협회가 담당하고 있는 혹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역할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NAMT는 새로운 뮤지컬의 창작은 물론 개발, 제작, 실제 공연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유명 프로듀서부터 미국 전역에 이르는 지역의 비영리 공연단체와 공연장, 교육기관, 개인 프로듀서에 이르기까지, 145명에 이르는 NAMT 회원의 성격 또한 다양하다. NAMT의 뮤지컬에 대한 기본 취지는 개별 프로젝트에 창작 지원금을 지원하는 부분보다는(실제 지원금이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 회원(사) 간의 교류와 협업을 증대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양질의 뮤지컬 작품이 개발, 공연되고 향후 재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교의 역할을 하는 데 있다.


NAMT에 회원으로 가입된 공연단체와 프로듀서들은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뉴 뮤지컬 페스티벌 Festival of New Musicals 과 연간 2회에 걸쳐 개최되는 컨퍼런스에 참석할 자격을 갖고, 더불어 창작 지원금을 받을 기회를 얻는다. 특히 매년 열리는 페스티벌과 연 2회 개최되는 컨퍼런스는 뮤지컬계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네트워킹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리를 통해 공연 예술계의 네트워크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새로운 작품의 창작 역시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이다. 가을 컨퍼런스는 뉴 뮤지컬 페스티벌 직전에 개최되며 새로운 작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봄 컨퍼런스는 매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경영과 행정에 관련된 주제를 선정한다.


신작 뮤지컬 창작 지원금 National Fund for New Musicals 은 지난 2008년 신설된 창작 지원 프로그램으로 비영리 공연단체들과 창작자들이 개발 단계부터 상호 활발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뮤지컬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길고 험난한 여정이다. 뮤지컬을 만드는 창작자 대부분이 자신의 창작품이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 없이 작품을 개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NAMT는 이러한 창작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작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공연단체와 프로듀서 등과 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작가에게는 프로듀서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프로듀서들끼리도 서로 의견과 자료는 물론 세트나 의상 등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협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드라우지 샤프롱> Photo by Craig Schwartz

 


보조금은 작품의 개발 단계에 따라 초기 협업 단계 Early Collaboration Grant, 개발 단계 Project Development Grant, 제작 완성 단계 Production Grant  등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지급한다.

초기 협업 단계의 지원금은 주로 해당 프로젝트를 위해 비영리 공연단체와 협업 중인 창작자를 위한 지원이다. 극본의 초고나 몇 곡의 노래를 작곡하는 동안의 지원금이라고 보면 되는데, 최고 약 3백만 원(2천5백 달러)까지 지원된다. 2010년 5월부터 이 지원금은 별도로 분리해 작가 지원금 Writers Residency Grant 으로 대체된다.

작가 지원금은 NAMT의 비영리 공연단체 회원이 작가진을 꾸려 작품을 개발하는 단계를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으로, 수여자마다 약 1백만 원(1천 달러) 정도가 지급된다. 이때 작가는 해당 프로젝트에 한해 공연단체에 전속으로 속해있어야 하며, 공연단체는 작가에게 창작에 필요한 제반시설(창작 공간, 피아노, 사무용품 등)을 지원하고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하며 필요한 경우 숙식과 교통편도 제공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은 리딩이나 데모 녹음, 혹은 초고의 형태로 완성된다. 이렇다 할 보조 없이 창작에 몰두해야 하는 작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인 셈이다. 작가 지원금은 1년에 네 차례에 걸쳐 심사가 이루어지며 회원 한 명(단체)당 1년에 한 번씩 지원할 수 있다. 지원 개발 단계는 워크숍이나 리딩 같은 신작 개발에 필요한 과정을 지원하는데, 최고 약 7백만 원(6천 달러)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제작 완성 단계의 작품에 지원하는 보조금은 한 개 이상의 극장에서 공연되는 프로덕션에 지급되는데 1천1백만~2천2백만 원(1만~2만 달러) 사이에서 지원금이 결정된다. 2009년에는 총 일곱 단체(명)가 선별되어 보조금을 지원받았는데 각각의 보조금은 약 3백만 원에서 1천1백만 원(2천5백 달러~1만 달러) 수준이었다. NAMT는 이 보조금을 신설할 때 이미 1억 원(십만 달러) 이상의 재원을 확보한 상태였으며, 더욱 많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도 꾸준히 노력 중이다. 
NAMT의 대표 캐시 에반스 Kathy Evans 는 “NAMT의 신작 뮤지컬 지원 보조금 프로그램이 전체 공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완성된 작품이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하며 작업하던 창작자들에게는 더욱 확실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막대한 제작비와 위험 부담으로 인해 신작 개발을 주저하던 공연단체 역시 초기 단계부터 창작자들과의 협업을 지원받음으로써 더 안정적으로 작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너티즈>

 

 

새로운 뮤지컬의 마켓 플레이스, 뉴 뮤지컬 페스티벌
1989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NAMT의 뉴 뮤지컬 페스티벌은 더 다양한 신작 뮤지컬들이 관계자들 앞에서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정형화된 뮤지컬의 소재나 형식보다 새로운 소재, 장르, 형식의 뮤지컬 창작을 도모한다. 매년 총 8편의 작품이 선정되는데, 선정된 작품은 2일간의 페스티벌 기간에 전체 공연이 아닌 45분 정도의 스테이지 리딩 기회가 제공된다.

페스티벌의 취지가 마켓 플레이스를 표방하고 있기에 이렇듯 단기간에 짧은 공연으로 여러 편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이 작품들이 향후 더욱 더 발전된 형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프로듀서와의 연계를 돕고 있다. 이는 더욱 많은 관계자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동안 2백여 편이 넘는 신작 뮤지컬을 시장에 선보였고 3백여 명의 극작가와 작곡가를 배출했다. 페스티벌을 통해 소개된 작품의 75퍼센트가 다른 무대에서 재공연되는 기회를 가졌던 것 또한 대단한 성과다. 2008년의 경우 6백 명 이상의 공연 관계자가 참석했으며 8편 중 무려 6편의 작품이 무대를 옮겨 공연되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모던 밀리>, <드라우지 샤프롱>, <아이 러브 비코즈>, <배너티즈> 등은 뉴 뮤지컬 페스티벌을 거쳐 브로드웨이나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선보인 작품들이다.


NEA와 뉴욕 주 예술 위원회의 후원을 받는 뉴 뮤지컬 페스티벌은 NAMT의 회원사, 혹은 전문 공연제작단체의 후원(추천)을 받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공연이 가능한 극본과 완성된 음악을 제출하면 된다. 지원 요건이 까다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페스티벌에서 선정된 작품들이 대부분 오랜 시간 개발 단계를 거쳐 이미 시험 무대를 거친 작품들임을 감안한다면 출품 작품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지원 작품은 NAMT 회원으로 구성된 예술감독과 프로듀서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선정된 작품은 별도의 비용 부담 없이 NAMT의 후원을 받아 45분 버전의 공연 기회가 부여되며 NAMT는 향후 해당 작품에 대해 일체의 로열티를 요구하지 않는다. 공연장 대관료 및 모든 장비의 대여료는 물론, 작가, 배우, 연출, 스테이지 매니저, 밴드 등 공연 인력의 수당과 리허설 비용, 마케팅 비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용은 NAMT에서 부담한다. 필요한 경우 작가의 교통편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창작팩토리,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등 뮤지컬 창작에 힘을 실어주는 지원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창작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지원 사업이 더 현실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단발적인 창작 보조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창작자와 제작사 사이의 긴밀한 유대를 통해 창작 뮤지컬의 생명력을 지속시키는 방안이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0호 2010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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