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소야곡> A Little Night Music 은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 <여름날 밤은 세 번 미소 짓는다>를 각색해서 스티븐 손드하임이 음악과 가사를 쓰고 휴 휠러가 대본을 담당한 뮤지컬이다.
제목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13번 곡 Eine Kleine Nachtmusik의 영문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작품의 줄거리는 원작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여름날 밤에 마담 암펠트의 전원 저택에 초대된 세 쌍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담 암펠트는 손녀 프레데리카에게 ‘오늘 같은 여름밤은 세 번 미소 짓는다’고 이야기 한다. 프레데리카는 할머니의 말에 따라 이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각각의 커플들이 벌이는 사랑을 목격하게 된다.
성공한 변호사로서 열 여덟 살의 신부와 결혼한 이후 11개월 동안 아직 한 번도 잠자리를 갖지 못한 중년의 프레데릭은 우연히 극장에서 젊은 시절 사랑을 나누었던 여배우 데지레 암펠트를 만나 파티에 초대 받는다. 그 초대에 아내 앤과 자신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헨릭도 가세하게 되는데 헨릭은 삶에 대해 항상 비관적인 대학생으로 은밀히 그녀의 계모인 앤을 사랑하고 있다. 또한, 데지레의 옛 남자인 말콤 백작도 질투에 불타 시골 저택에서 있는 파티에 불청객으로 참여한다.
결국 이들은 한바탕의 소동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 극의 마지막에 손녀 프레데리카는 할머니에게 자신은 여름날 밤의 미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자 이에 할머니는 여름밤은 두 번 미소 지었다고 대답한다. 처음은 변호사 프레데릭의 아들인 헨릭과 그의 계모인 앤의 젊은 커플의 사랑에게, 다음은 자신의 딸 데지레와 프레데릭의 바보 같은 사랑에게 미소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둘이 세 번째 미소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마담 암펠트는 서서히 눈을 감는다. 여름밤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죽음에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그간의 행보
뮤지컬 <소야곡>은 1973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그 해 토니상 작품상과 음악상을 수상했고 다음해 막을 내리기까지 총 601회 공연되었다. 그리고 1977년에는 초연 뮤지컬의 연출자였던 해롤드 프린스가 감독을 맡아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초연 이후 런던과 미국의 지역극단에서 즐겨 공연되어왔던 이 작품은 초연 이후 36년 만에 처음으로, 2009년 12월 앤젤라 랜스베리와 캐서린 제타 존스 주연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이 프로덕션은 2008년에 런던의 ‘미니어 초콜릿 팩토리` Menier Chocolate Factory 에서 공연되었던 작품을 배우만 교체한 채 그대로 뉴욕으로 가져왔다.
미니어 초콜릿 팩토리는 런던의 180석 규모의 작은 극장으로 리바이벌 뮤지컬 공연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극단이다. 2005년에 역시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를 획기적으로 리바이벌해서 웨스트엔드 그리고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진출했고, 2008년에는 뮤지컬 <새장 속의 광대> La Cage aux Folles 로 올리비에 뮤지컬 리바이벌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 이 극단은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과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을 지냈고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공동연출자이기도 한 베테랑 연출가 트레버 넌에게 <소야곡>의 연출을 맡겼고, 역시 흥행성과 작품성에서 좋은 평가를 얻어 웨스트엔드를 거쳐 브로드웨이로 수입되기에 이르렀다.
손드하임의 대중적 히트곡
1973년 오리지널 공연은 그 동안 인색했던 뮤지컬 작곡가로서의 손드하임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를 극적으로 바꿔놓은 공연이었다. 또한 난해하고 지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지만 대중적으로 히트한 노래가 없었던 손드하임의 뮤지컬 중에서 거의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낸 곡인 ‘센드 인 더 클라운스` Send in the Clowns 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손드하임은 초연에서 주인공 데지레 역할을 맡았던 배우인 글리니스 존스 Glynis Johns 가 노래를 못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연습과정에서 그녀가 비록 작고 가는 목소리를 지녔고 노래를 소화하기에는 짧은 호흡을 가졌지만 그래도 일정한 음역을 소화할 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녀를 위해 ‘센드 인 더 클라운스’를 만들었다. 이 노래는 일반 노래보다 끝이 짧게 끝나도록 작곡되었다. 이 노래를 통해 손드하임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센드 인 더 클라운스’는 뮤지컬보다 더 유명해졌다. ‘센드 인 더 클라운스’는 노래라기 보다는 대사에 가까운 곡으로서 이번 공연에서 데지레 역할을 맡았던 캐서린 제타 존스가 손드하임에게 이 노래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그는 노래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말하듯이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캐서린 제타 존스는 그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아주 감정적으로 노래를 소화하였다.
손드하임은 다른 곡들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이 뮤지컬에 주로 쓰인 음악도 일반적인 뮤지컬 음악과는 달리 복잡한 박자와 피치의 변화, 높은 음역 그리고 대위법 등을 사용해서 관객들은 물론 배우들도 소화하기 힘들게 했다. 그는 모차르트의 곡인 Eine Kleine Nachtmusik 에서 모티브를 얻어 음악을 만들었고 모든 곡의 박자는 왈츠의 4분의 3박자로 고정시켰다.
또한 다섯 명의 가수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이야기에 참여하기도 하고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초연 연출자였던 해롤드 프린스는 이 코러스를 일컬어 ‘이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는 반대로 유일하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인물들’이라고 하였다.
스타의 기용
이 뮤지컬은 현재 브로드웨이 매출 상위 5위 안에 들 정도로 흥행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흥행 성공의 배경으로 무엇보다도 스타 배우들의 영향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연에서 마담 암펠트 역을 맡아 열연을 보여준 올해 여든 네 살의 앤젤라 랜스베리 Angela Lansbury 는 그녀의 명성에 걸맞는 스타배우가 한 명 더 출연하기를 원했다. 이에 연출자 트레버 넌은 캐서린 제타 존스를 그녀의 딸 역할로 영입했다.
다섯 번이나 토니상을 수상한 앤젤라 랜스베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넘치는 대사 처리와 위트를 통해 그녀의 원숙한 연기를 한껏 발휘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과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교계의 명사 마담 암펠트 역할을 무대에서 훌륭하게 구현함으로써 뉴욕의 평론가들의 극찬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이 공연의 중심에 서있는 배우는 캐서린 제타 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하게 된 그녀는, 젊은 시절에 사랑을 나누었던 변호사를 우연히 만나 다시 그를 유혹하는 여배우 데지레 암펠트의 역할을 그녀만의 매력으로 구현해냈다. 그녀는 기존의 데지레 역할이 갖는 이미지와 구별되도록 노력했다. 초연 여배우의 이미지로 인해 지금까지 데지레는 초연 여배우의 이미지로 인해 이미 성공적인 시절을 보내고 난 뒤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든 섬세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그려졌다. 하지만 트레버 넌은 좀 더 젊고 강한 이미지를 원했고 이는 캐서린 제타 존스의 이미지하고 잘 부합되었다.
영국 태생인 캐서린 제타 존스는 일반인들에게는 주로 영화배우로 알려져 있고 또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시카고>를 통해 뮤지컬과의 인연을 갖고 있다. 그녀는 비록 이번 무대가 브로드웨이에서는 데뷔 무대이지만, 이미 어려서부터 런던의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 뮤지컬 <애니>의 오디션에 통과해 런던의 무대에 섰고 이후에도 댄서와 앙상블로서 무수한 작품에 출연하였다. 그리고 열아홉 살 때 뮤지컬 <42번가>의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에서 주인공의 언더스터디를 꿰차게 되면서 화려한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필름 스타로 부각된 기회는 실로 우연하게 찾아왔다. 스물두 살 때 그녀가 영국의 미니시리즈인 <더 달링 버즈 오브 메이> The Darling Buds of May 에 출연했고, 하룻밤만에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스타로 부각되었다.
그녀의 말을 빌면 이후로 ‘다시는 지하철을 타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고 한다.
연출자인 트레버 넌과의 인연도 웨스트엔드 무대에서부터 시작하였다. 트레버 넌은 열 여덟, 열 아홉살 시절의 그녀에게 트레버 넌이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어스펙트 오브 러브> Aspects of Love 의 오디션을 제안했다. 캐서린 제타 존스는 이 경험에 대해 얘기하면서 오디션 후에 트레버 넌이 자신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 그녀의 연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그 역할을 하기엔 너무 예뻐서 선발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제타 존스의 연기는 역할과 꼭 맞아 떨어져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지니고 있는 매력은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모두들 그녀의 매력과 연기를 칭찬하지만 한가지 아쉽게 여기는 부분은 그녀의 감정적인 연기와 강한 캐릭터의 설정이 오리지널 작품의 ‘데지레’의 섬세하고 세련된 모습과 부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데지레의 유혹을 받아 결국 그녀와 재결합하는 변호사 프레데릭의 역할은 유일하게 영국에서 공연되었던 뮤지컬에도 출연했던 알렉산더 핸슨 Alexander Hanson 이 맡았다. 그는 열 여덟 살 신부인 앤과 다시 결혼한 성공한 변호사의 역할을 유연하고 부드러운 연기로 무리없이 잘 소화하였다.
평단의 평가
하지만 이들 주연을 제외한 조연의 역할들은 다소 미숙한 연기와 과도한 캐릭터 설정으로 혹평을 받고 있다.
변호사 프레데릭과 결혼해서 11개월이 넘도록 잠자리를 거부하고 있는 앤의 역할은 너무 개인적인 설정이 지나친 나머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이다. 그 외 다른 배우들 역시 원작이 지니고 있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성실하게 무대에서 보여주기보다는 작품의 재미를 위해 코믹하고 과장해서 작품을 너무 가볍게 만들었다고지적 받고 있다.
하지만 연출적인 측면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버라이어티지의 평론가 데이빗 루니는 연출자 트레버 넌이 원래 부드럽고 유연한 흐름이 필요한 작품을 무겁고 우울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2008년에 영국에서 공연되었던 같은 작품에 대한 영국의 가디언지의 리뷰는 이와는 반대의 논조를 띤다. 평론가 마이클 빌링턴은 트레버 넌이 그의 최근작인 <갈매기>보다 훨씬 더 체홉의 느낌을 풍기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칭찬하였다. 이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브로드웨이의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달리 무겁고 진중한 느낌을 관객에게 가져다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이 성공한 것은 마이클 빌링턴이 지적했듯이 유머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이 극의 특징을 잘 살린 창작진의 재능(능력)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 평론가들이 주장하듯이 무겁고 둔한 작품에 활력을 가져다 준 캐서린 제타 존스와 앤젤라 랜스베리의 연기에 있는지는 좀더 고민해야 봐야 할 문제다. 어쨌든 브로드웨이의 성공 모델의 하나로서 스타 배우들의 출연은 여전히 유효한 카드인 것 같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8호 2010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