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SWEET CHARITY <스위트 채러티> 그녀가 꿈꾸는 달콤한 세상 [No.77]

글 |구지혜(런던통신원) 사진 |Catherine Ashmore 2010-03-09 6,293

작년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을 경제 산업적 측면에서 재조명해본다면 전반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한 해였다. 경기 불황은 여행과 레저 활동보다 저렴한 ‘극장’으로 영국 관객들을 불러들였고, 이에 따라 공연 수익이 기대 이상으로 껑충 올라갔다.

하지만 신작 뮤지컬에 대한 투자와 개발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인기 뮤지컬, 그 중에서도 대형 뮤지컬들은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이거나 중장년층의 뮤지컬 고정 팬들을 의식한 옛 뮤지컬의 리바이벌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영화와 공연 예술의 장르 교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무비컬은 경기 침체로 공연 투자자들이 소극적인 요즘, 뮤지컬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장르로 굳어지고 있다.    
오늘 소개할 <스위트 채러티>는 뮤지컬이 영화보다 먼저 만들어졌던 고전 뮤지컬의 리바이벌 작품이다.

 

 

 

2010년 웨스트엔드 소식
2010년 상반기 웨스트엔드 극장가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극장가는 벌써부터 상반기 작품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웨스트엔드 연극계는 영국 연극의 대표주자인 셰익스피어 연극을 새롭게 만들어 보려는 샘 멘더스와 루퍼트 굴드 등의 젊은 연출가들의 도전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안톤 체호프 서거 150주기를 맞이해 햄스터드  극장과 리릭 헤머스미스 극장 등에서 체호프와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뮤지컬계에서 반가운 신작 소식이 많이 들리고 있다. 먼저 뉴욕에서 히트를 친 <헤어>를 카메론 매킨토시가 웨스트엔드로 옮겨와 4월부터 공연할 예정이며, 같은 달에 가수 데이비드 에섹스 David Essex 의 1975년 히트 앨범을 바탕으로 만든 <올 더 펀 오브 더 페어>가 올라간다. 또한 오프 브로드웨이 최장기 기록을 갱신했던 <판타스틱스>가 6월 문을 연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2010년 상반기에 가장 기대가 되는 소식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 후속작인 <러브 네버 다이즈>일 것이다. <러브 네버 다이즈>가 로이드 웨버의 불굴의 의지를 담은 야심작이 될지, 아니면 과욕이 부른 실패작으로 기록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상반되게 스티븐 손드하임의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그의 히트 작품을 뮤지컬 넘버로 엮은 멋진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라는 훈훈한 소식도 들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말. 문을 연 <금발이 너무해>와 <스위트 채러티>, <시스터 액트> 등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시스터 액트>의 경우 작년 크리스마스 기간에만 50만 장의 티켓을 판매하는 등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웠다.

또한 <스위트 채러티>의 경우 오프닝 공연을 시작하고 나서 채 얼마 되지 않아 3월 말까지예정된 모든 공연이 전석 매진됐다. 1967년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처음으로 영국 무대에서 리바이벌이 된 <스위트 채러티>는 초연 때부터 재미난 드라마와 열정적인 춤 그리고 완성도 높은 노래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싸이 콜맨의 음악, 도로시 필즈의 가사, 그리고 닐 사이먼의 각본으로 만들어진 <스위트 채러티>는 오래된 이탈리안 흑백 영화인 <카비리아의 밤>이 원작이다. 1966년 뉴욕 팔라스 극장 공연 당시 연출자이자 안무가였던 밥 포시의 뛰어난 안무와 연출로 그해 토니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안무상을 받았다. 이후 <스위트 채러티>는 1969년 영화로 다시 제작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새롭게 다시 만들어진 <스위트 채러티>의 첫 번째 인기 비결은 바로 영국의 인기 드라마인 <이스트 엔더스>의 배우 탐진 아우스웨이트 Tamzin Outhwaite 가 주인공 채러티를 맡았다는 점이다. <이스트 엔더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전원일기> 정도로 최고의 국민 장수 드라마다. <스위트 채러티>의 제작사는 <포비든 브로드웨이>와 같은 극소수의 예외 케이스를 제외하곤 모든 프로덕션마다 매진을 기록하고 곧바로 웨스트엔드의 큰 무대로 보내는 놀라운 성공 뮤지컬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작지만 파워 있는 극장인 매니어 초콜릿 팩토리 극장이다.

100석 가량의 소극장에서 연속적으로 이런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어서, 일반 관객들뿐 아니라 평론가들 사이에도 매니아 초콜릿 팩토리 극장의 신작 뮤지컬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크다. 따라서 뮤지컬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일단은 <스위트 채러티>를 보려는 충동(?)이 생긴다. 이번에도 초콜릿 팩토리는 마니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달콤쌉살, 채러티의 매력을 만든 이들
형형색색 붉은 빛깔 커튼과 강렬한 빨간색의 조명이 화려하게 켜지면 뉴욕 타임 스퀘어의 뒷골목 댄스홀의 하루가 시작된다. 채러티 호프 발렌타인은 이 댄스홀에서 일하는 호스티스다. 순수한 마음의 채러티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해서 거리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털어준다. 그녀의 꿈은 진정한 사랑을 찾고 사랑하는 이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가는 것인데, 불행하게도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줄 착한 남자는 이 세상에 없어 보인다. 극의 시작부터 비참하게 남자친구로 부터 버림받은 채러티는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면,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깨닫고 우울해한다.

이때 그녀가 평소 동경하던 이탈리안 배우인 비토리오 비달을 우연히 만나고, 그는 그녀가 얼마나 특별하고 매력적인 아가씨인지 일깨워준다. 이에 채러티는 희망을 얻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YHMA 문화센터로 간다. 그리고 문화센터의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서 잘생긴 남자 오스카 린드퀴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채러티를 은행원이라고 믿고 있는 오스카. 그런 그에게 죄책감을 느낀 채러티는 망설임 끝에 진실을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스카는 채러티의 과거 따위는 상관없다며 결혼을 신청한다. 드디어 채러티의 소원대로 꿈꾸던 사랑이 이루어지고 새 삶이 그녀 앞에 펼쳐지려는 순간, 돌연 오스카는 도저히 채러티의 과거를 용납할 수 없다며 떠나버린다. 다시 홀로 남겨진 채러티.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지 않고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선언하며 돌아선다.


매니어 초콜릿 팩토리 극장 버전의 <스위트 채러티>는 1966년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특히 안무의 경우는 원작을 그대로 복원해 재현했다. 극 중 주무대가 댄스홀이다 보니 재즈, 탱고, 디스코 등 다양한 춤이 등장하는데, 스티븐 미어 Stephen Mear 의 안무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아주 크고 격정적이고 리드미컬하다. 특히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인 ‘빅 스펜더 Big Spender’에서 매력적인 댄서들의 현란한 춤과 노래에 숨이 멎을 지경이다. <스위트 채러티>의 향수를 찾아온 관객들은 이렇듯 작품의 원형을 살리려는 안무가의 노력이 반가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부분 때문에 원작 이상의 무언가를 새롭게 담으려는 시도와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함께 받고 있다.


연출가인 매튜 화이트 Matthew White 는 <리틀 숍 오브 호러스> 같은 비주얼이 강한 작품들을 주로 잘 만들어왔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스위트 채러티>에도 십분 반영됐는데, 댄스홀, 강변, 문화센터, 핫도그 가게 등 각 장소마다 특성들이 재미나게 표현되고 있다. 이렇듯 비쥬얼이 일단 좋으니, 관객은 작품에 쉽게 빠져들고 재미를 느낀다. 또한 이전의 매니어 초콜릿 팩토리 극장은 무대의 양쪽 끝을 쓰지 않고 가운데 부분만 써서 답답했는데, 연출가 화이트는 양쪽 무대도 모두 열어두어서, 넓은 시야를 관객들에게 확보해준다. 동시에 스케치 장면이나 오버랩되는 장면에서 양쪽 무대를 적절히 활용했다.

 

 


<스위티 채러티>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닐 사이먼의 대본인데, 위트 있는 대사와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 그리고 우리의 삶 가까이 발견되는 친근한 일상 속 코미디가 일품이다. 뉴욕 뒷골목 댄서들의 이야기, 게다가 오래된 이야기니 제법 식상할 법도 하지만 50여 년 세월을 거슬러온 2009년의 <스위티 채러티> 속 채러티는 지금 바로 내 옆의 친구 혹은 나의 이야기처럼 친근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채러티가 느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좌절되는 꿈과 희망은 50년 혹은 100년의 세월이 흘러도 늘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가 아니던가. 그래서일까? 젊은 10대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까지 관객층이 넓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다.


닐 사이먼의 대본만큼 콜맨의 음악도 인물 하나하나의 성격을 잘 살리고 통통 튀는 공처럼 한곡 한곡 재치가 엿보인다. 1950~1960년대 대중음악의 흐름을 한눈에 다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탱고 음악과 춤으로 만들어진 ‘The Pompeii Room’과 최고의 카바레 넘버인 ‘Big Spender’ 등 재미난 곡들이 참 많다. 이는 충분히 드라마를 고조시켜주며, 무엇보다 2시간 반이라는 긴 공연 시간 내내 극의 탄력이 붙도록 계속 흥을 돋운다.

 

 

앙꼬 없는 찐빵은 뭔가 아쉽다
뮤지컬과 영화. 이 두 장르는 오랫동안 같은 이야기를 다른 무대(필름과 스테이지) 위에 올렸다. <스위트 채러티>는 이탈리아의 영화에서 뮤지컬로 다시 영화로 두 번이 아닌 세 번의 변신을 한 작품이다. 그리고 몇 번의 리바이벌을 거쳐 다시 2009년 웨스트엔드 무대 위에 올랐다.


2009년 <스위트 채러티>는 기존의 프로덕션들과는 달리 본의 아니게 채러티 역을 맡은 배우보다 앙상블이 도리어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채러티의 역할이 그만큼 작아졌다기보다 주변 인물들이 강해졌다는 말이다. 이를 두고 평론가들은 날카로운 혹평을 보내기도 한다.


1950~1960년대 많은 뮤지컬들이 그러하듯이 <스위트 채러티>도 사회의 제도와 현실에 도전장을 내미는 당차고 재기 발랄한 여자, 채러티가 주인공이다. 따라서 극의 중심이 되는 채러티의 역을 누가 맡느냐는 작품의 성공을 가름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1969년 영화 버전에서 셜리 맥클레인의 열연을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더더욱 이번 프로덕션의 채러티에 대한 기대감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아우스웨이트는 외모에서 풍기는 상큼 발랄한 이미지와는 달리 목소리와 노래 실력은 영 기대 이하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채러티의 재기발랄함, 여리지만 강한 본래의 이미지가 반감되었다. 마치 앙꼬 없는 찐빵처럼 채러티는 그녀의 인기와 명성과 사뭇 다른 반응을 얻었다.


물론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닐 사이먼의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의 이례적인 흥행 참패를 지켜보면서 받은 충격을 떠올려 본다면 닐 사이먼의 원작을 현대식으로 잘 살려 변신시키는 방법이 무조건 주인공의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연출가가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가타부타 따져보지 않더라도, 결과론적으로 매니어 초콜릿 팩토리의 <스위트 채러티>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주변 인물들의 매력과 목소리에 귀를 좀 더 기울였다. 어쩌면 이것은 2010년이 원하는, 닐 사이먼 작품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1969년 영화에서 만났던 매력 있는 맥클레인의 채러티 이미지가 눈에 자꾸 아른거려서 안타깝지만 말이다.

 

<스위트 채러티>가 또다시 웨스트엔드로 프로덕션을 옮기는 매니어 초콜릿 팩토리 극장의 뮤지컬 성공 신화를 이어나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분명한 것은 <스위트 채러티>가 지금 웨스트엔드의 관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최고의 뮤지컬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읽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 눈물 흘리는 주인공 채러티가 가진 미덕처럼 우리들도 2퍼센트 뭔가 부족한 <스위트 채러티> 속에서 뭔가 새로운 변화를 읽어낼 수 있을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7호 2010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