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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aodway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의 생존전략 [No.74]

글 |지혜원(뉴욕통신원) 2009-11-27 6,614

탄탄한 대본과 음악, 훌륭한 연출자, 실력 있는 크리에이티브 팀, 연기 잘하는 배우, 작품에 적합한 공연 환경…. 이들이 작품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프로덕션을 움직이는 프로듀서이다. 위험부담이 큰 공연 시장인 만큼 성공한 프로듀서들에겐 그들 나름의 전략이 숨겨져 있다.

 

뮤지컬 프로듀서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이론적으로 프로듀서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인 자본력만 갖춰도 일단은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로드웨이는 물론 다른 공연 시장에서도 프로듀서로서의 자질은 차치하고 제작비를 충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프로듀서 행세를 하는 (혹은 스스로를 프로듀서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두 번의 제작 참여를 넘어서 프로듀서로 성공하는 길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성공한 프로듀서에게는 공연계는 물론 관객들의 문화 소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식견과 안목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듀서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라이온 킹]

 

전략과 브랜드화로 승부한 디즈니
디즈니의 브로드웨이 진출은 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에 개봉한 <인어공주>를 시작으로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알라딘>, <뮬란>, <타잔>에 이르기까지 한때 주춤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약 10여 년간 흥행 독주를 이어갔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브로드웨이 진출을 시도한 디즈니를 향해 공연관계자는 물론 디즈니 내부의 스태프들 가운데서도 그들의 성공을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온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돌풍은 분명 놀라운 성과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속 상상의 세계가 무대 위에서 재현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게다가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1980년대부터 성공 행진을 이어온 메가 뮤지컬에 익숙해진 관객들도 디즈니의 야심 찬 시도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994년 브로드웨이 무대 위로 옮겨간 야수 왕자와 아리따운 벨의 동화는 기대 이상의 완성도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겨놓은 디즈니의 성공은 그동안 디즈니 테마파크에서 갈고 닦은 어린이 가족 공연에서의 노하우를 보안한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은 1997년 <라이온 킹>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보인 이후부터다. 아프리카 밀림을 화면 속이 아닌 무대 위로 옮긴다는 것은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디즈니는 뮤지컬 연출은 처음이었으나 다양한 분야에서 연출가와 디자이너로 활약 중이던 줄리 테이머를 전격 영입해 그녀의 상상력에 힘을 실어 주었다. <라이온 킹>은 첫 장면부터 청중을 압도하며 등장하는 코끼리, 기린, 사슴, 사자 등은 관객들의 눈앞에 아프리카를 고스란히 펼쳐 놓는데 성공했고, 이듬해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6개의 토니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2000년에 막을 올린 <아이다>는 디즈니의 브로드웨이 진출이 기존의 애니메이션 성공작에 편승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또 다른 시도였다. 베르디의 오페라를 각색한 뮤지컬 <아이다>는 비록 전작들의 성공에는 미치지 못 했지만 디즈니 뮤지컬이 어린이가족 뮤지컬로만 이미지가 안착되는 것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디즈니 시어트리컬의 토마스 슈마커 사장은 “관객들이 디즈니 뮤지컬에 갖는 기대치는 남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등을 통해 쌓아온 디즈니의 풍성하고 수준 높은 볼거리를 뮤지컬에서도 기대한다는 것이다.

 

            [디즈니 시어트리컬 토마스 슈마커]

 

그들은 브로드웨이에서 디즈니만의 스타일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아이다> 등 세 편의 뮤지컬이 동시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자 디즈니는 본격적으로 ‘디즈니 뮤지컬’을 브랜드화시키기 시작했다. ‘디즈니 온 브로드웨이’라는 프로모션을 기획, 디즈니 작품들을 한데 묶어 함께 마케팅 하는 방식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의 성공과 당시 계획되어 있는 작품들만으로도 앞으로 적어도 두 편 이상의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동시에 공연될 것을 확신하였기에 내린 결정이다. ‘당신이 이미 관람한 디즈니 작품을 좋아했다면, 디즈니의 다른 작품들도 반드시 좋아할 것이다!’라는 프로모션으로 흥행작의 인기를 막 개막한 작품이거나 그리 흥행성적이 좋지 않은 작품(현재까지는 <타잔>과 <인어공주>의 흥행 성적이 가장 낮았다)에 힘을 실어주었다. 관객들에게 디즈니 뮤지컬 자체의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미녀와 야수]

 

또한 디즈니는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인 티켓 판매를 최대한 자제해 왔다. 최대 40~50퍼센트의 할인율을 적용하면서까지 객석을 채우기에 급급한 여타 프로듀서들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행보였다. 관객들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판단되면, 할인 티켓을 판매하기 보다는 아예 공연의 막을 내리는 쪽을 선택했다. 각각 1년 2개월, 1년 7개월 간 공연되었던 <타잔>과 <인어공주>가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디즈니의 탄탄한 자본력이 뒷받침되어 주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지만, 이는 투어나 해외 라이선스 시장을 겨냥해서라도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디즈니는 명실상부 브로드웨이 어린이 가족 뮤지컬에 있어 절대 강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디즈니사의 최대 강점이었으나 브로드웨이 진출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었던 ‘어린이 중심’이라는 선입견을 역으로 이용해 성공한 셈이다. 비록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작품들이라고 할지라도 연출과 디자인, 배우들의 기량 등을 최대한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작품의 질을 높이고 디즈니 뮤지컬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면서도, 어린이 관객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음으로써 어른과 어린이 관객 모두를 공략할 수 있었다. 이제 브로드웨이를 찾은 가족 관광객이 ‘디즈니 온 브로드웨이’ 프로모션을 빗겨 다른 작품을 먼저 예매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략적 연합으로 성공한 프로듀서들
프로듀서가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는 다양한 역량을 필요로 한다. 단순히 자본을 끌어오는 일만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팀을 구성하고 그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일부터 작품을 다듬고 완성해 가는 일, 효과적인 홍보, 마케팅 전략을 수행하는 일까지 한 편의 작품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놓치고 갈 수 없는 부분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은 유명 프로듀서들조차 이 모든 영역에서 제 몫을 다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작품을 다듬고 완성해가는 예술적인 측면에 탁월할 것이고, 누군가는 비즈니스에 능할 것이고, 누군가는 마케팅 수완이 남다를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 중 하나가 바로 각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프로듀서들이 파트너십을 이루어 함께 작업하는 것이다. 브로드웨이에는 오랜 세월 전략적 결합을 통해 파트너이자 조력자로 함께 작품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프로듀서들이 있다.


<프로듀서스>, <헤어스프레이>, <영 프랑켄슈타인> 등의 제작자로 승승장구 중인 프랭켈-바루-비에텔-루스 그룹(Frankel-Baruch-Viertel-Routh Group)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20여 년간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다수의 작품을 제작, 매니징 해 온 이들 프로듀서의 결합은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부동산업에 종사하던 톰 비에텔(Tom Viertel)과 스티븐 바루(Steven Baruch)는 1984년 LA에서 관람한 <펜 앤 텔러(Penn & Teller)>라는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 작품을 뉴욕으로 가져와 공연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프로듀싱 경험이 전무한 이들로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이들이 만난 사람이 바로 지금은 문을 닫은 뉴욕의 비영리 극단인 서클 레퍼토리 컴퍼니(Circle Repertory Company)에서 수년간 매니징 디렉터로 일하며 다양한 제작 경험을 쌓아온 리차드 프랭켈(Richard Frankel)이었다. 이어 마크 루쓰(Marc Routh)가 합류하면서 이들의 본격적인 연합 비즈니스가 시작되었다.

 

[헤어스프레이]


네 사람의 파트너십은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이들은 매주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비즈니스의 주요한 사안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지만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분담한다. 작품 제작 경험이 많은 리차드의 강점과 톰과 스티븐이 부동산업에 종사하며 쌓아온 부유한 사람들과의 두터운 친분은 작품 제작에 가장 필요한 두 가지 요소(자본과 경험)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마크가 유통 부분에 힘을 보탰다. 투자-제작-유통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연합체제인 셈이다.


이들의 분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이낸싱이다. 스티븐 바루는 약 1천 명에 가까운 투자자 그룹을 운영하며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소수의 거액 투자를 유치하기보다는 다수의 소액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투자자들과 프로듀서의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고안해낸 방편이다. 비록 적지 않은 투자자 그룹을 유지, 관리하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방식이다. 스티븐은 특히 ‘거액 투자자들에 의해 작품의 제작 과정에 제약이 가해지는 부분이 줄어드는 점’을 장점 중 하나로 꼽았다. 투자가 이루이지고 제작이 결정된 작품의 제너럴 매니징은 대부분 리차드―프랭켈 프로덕션즈에서 맡는다. 또한 이들은 브로드웨이 아시아 컴퍼니를 자회사로 운영하며 작품의 유통 과정도 아우르고 있다. 1991년 시몬 자넷과 함께 회사를 설립한 마크 루쓰는 <헤어스프레이>, <프로듀서스> 등 이들 프로듀싱 그룹이 제작하는 작품들은 물론, 로저스&해머스타인 작품들(Rodgers & Hammerstein Theater Library)의 아시아 투어와 라이선스 업무를 전담하는 등 글로벌 유통의 중심에 서있다.

이들의 또 다른 자회사 브로드웨이 아시아 엔터테인먼트는 유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작품의 제작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레아 살롱가가 주연을 맡은 뮤지컬 <신데렐라>의 아시아 투어 공연을 제작했다. 여러 개의 회사 법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하지만, 실제 이들 모두가 한 건물에서 사무실을 나눠 쓰고 있다. 각각의 회사에 모두가 참여하고 있지만, 보다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서 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합리적인 모델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 프로듀서의 영입
브로드웨이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흥행을 위해 스타 캐스팅을 하는 것은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니다. 그러나 스타 프로듀서를 영입하는 일은 그리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누구인지가 작품의 성패를 가를 만큼 작품 자체의 이미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바로 2005년 개막한 <컬러 퍼플>과 같은 예가 그러했다.


이 작품의 메인 프로듀서인 스콧 샌더스(Scott Sanders)는 처음 작품을 개발하던 1997년 무렵부터 오프라 윈프리의 제작 참여를 유도했다. 그녀가 1985년 개봉했던 영화 <컬러 퍼플>에 직접 출연했음은 물론 흑인 사회에서는 가히 멘토이자 롤 모델인 그녀의 브랜드를 빌려 작품의 흥행성을 보태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샌더스의 계획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 8년간 계속된 <컬러 퍼플>의 디벨로핑 기간 동안에도 오프라 윈프리와의 공동제작은 성사되지 않았다. 2005년 11월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의 프리뷰 개막일을 6주 앞두고서야 그는 오프라 윈프리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리고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자금조달은 물론 이미 작품의 제작이 거의 다 완료된 시점이었다.

 

[오프라 윈프리(좌)와 컬러 퍼플(우)]

 

그 시점에 그녀가 참여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스콧 샌더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오프라 윈프리에게 제안한 것은 극장 간판에 ‘Oprah Winfrey presents The Color Purple’이라는 문구를 쓰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오프라로서는 8년간이나 작품을 만들어온 프로듀서의 작품에 거저 이름을 올리는 것이 편할 리 없었다. 스콧은 “내 이름으로는 단 두 장의 티켓도 팔 수 없겠지만, 당신은 이 작품의 틀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라며 그녀의 이름이 바로 이 작품의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 될 것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오프라 윈프리를 전면으로 내세워 <칼라 퍼플>의 모든 마케팅 계획이 수정되었고, 관객들은 단지 그녀가 제작에 참여한 공연을 관람하겠다는 이유로 시카고에서, 애틀랜타에서 뉴욕까지 날아오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타 배우도, 스타 크리에이티브 팀도 갖추지 못했던 이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2년 넘게 브로드웨이 흥행작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작품의 셀링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낸 스콧 샌더스의 직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뮤지컬 프로듀서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열정만으로 겁 없이 뛰어들기에 공연계는 그리 녹록한 분야가 아니다. 프로듀서로 성공하고 싶다면 우선 프로듀서로서의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 그것을 상호 보안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 함께 나누고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작업에도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본 기사는 <더뮤지컬> 통권 제 74호 2009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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