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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극장편> 남산의 역사성을 담은 실험극 [No.126]

글 |박병성 사진제공 |남산예술센터 2014-04-04 4,670

언어 중심의 연극에서 탈피해 새로운 연극 스타일을 실험해온 크리에이티브 바키(VaQi)의 대표 이경성이 이번에는 남산예술센터를 소재로 새로운 스타일의 연극에 도전한다. 그동안 이경성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그것을 일반적인 ‘연극’이란 이름으로 묶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는 극장의 무대를 고집하지 않고 거리나 횡단보도에서의 공연을 벌였고, 언어 중심의 연극보다는 이미지나 움직임, 혹은 행위 중심의 극을 지향해왔다. 그의 지금까지의 작업처럼 이번 공연 <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극장편>도 연극이라는 장르로 한정시키기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작품에서 이경성은 남산예술센터 극장에 주목했다. 1962년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받아 지어진 드라마센터(현 남산예술센터)는 한국 최초의 현대식 극장이었다. 이곳에서 연극사에 길이 남을 오태석의 <초분>(유덕형 연출), <햄릿>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안민수의 <하멸태자>, 이상우의 민족 마당극 <장산곶매>가 공연되었다. 뮤지컬계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살짜기 옵서예>를 만든 예그린악단이 바로 이곳 드라마센터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재정난에 빠졌을 때는 결혼식장이나 미8군 공연단의 재즈 공연장, 때론 영화관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1974년 국내 수많은 배우와 가수를 배출한 서울예술전문대가 2000년대 초반 안산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드라마센터는 학생들의 실습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경성은 이 공연장의 역사성뿐만 아니라 주위 공간에도 주목한다. 1962년 남산 케이블카가 설치되고 1969년에는 서울을 상징하는 남산타워가 완공됐다. 지금까지도 많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애용되고 있다. 하지만 남산에는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남산은 정권의 연장을 위해 민주 투사들을 고문하고, 인권을 유리한 상징적인 장소였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중앙정보부는 끔찍한 고문으로 멀쩡한 사람도 죄인을 만들고, 건강한 사람도 병신을 만들어 내보내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1973년 최종길 교수는 이곳에서 의문사를 맞고, 1974년에는 인혁당 재건 사건이 조작된 곳이다. 극장에서 삶을 고민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있을 때,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남산 중앙정보부에서는 그 어떤 연극보다 끔찍한 조작과 고문의 잔혹극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경성은 1962년 극장이 생기고 지금까지의 극장을 중심으로 남산의 공간이 지니는 의미를 아카이빙과 인터뷰, 다큐멘터리와 토론 양식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로 담아낸다. 당시 초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과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이끌어낸 유치진의 만남을 극화 하는가 하면, 재즈를 보급했던 미 8군의 이야기는 무용으로 풀어낼 생각이다. 인터뷰를 통해 남산 주변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오디션 형식으로 끔직한 고문의 흔적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이경성 연출은 ‘이 공연의 대본은 마지막 공연을 마칠 때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한다. 공연 전까지도 확정짓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주면서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다.

 

3월 15일~30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02)758-2150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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