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세종문화회관 뒤편 주차장 부지에서는 특별한 공연장이 들어섰다. 객석도 없고, 무대도 없고, 배우들은 공중을 뛰어다니다가 땅으로 내려와 관객을 안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델라구아다>의 전용홀이었다. 특별한 공연을 하기 위해 새롭게 전용 공연장을 만든 것이다. 근 1년간 공연한 <델라구아다>는 예술과 놀이의 경계에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남겼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바로 그 <델라구아다> 팀이 후속작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델라구아다>와 마찬가지로 본국인 아르헨티나에서 먼저 선보인 후 세계 여러 페스티벌을 거쳐 오프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델라구아다> 공연은 전통적인 무대의 개념이 없이 배우들이 공중을 달리고 천을 기어오르고, 벽을 뛰어다는 식으로 플라잉 기술이 많이 사용되는 작품이다. 뮤지컬 <타잔>이나 <스파이더맨>과 같이 고난도의 플라잉 기술력이 필요한 작품에는 <델라구아다>의 플라잉 기술 팀이 참여했다. <델라구아다>의 아티스트들이 타 작품에 참여할 때는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술력만 응용되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 때 이 플라잉 기술은 작품 세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푸에르자 부르타>에서는 어딘가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안개를 헤치고, 때로는 종이 벽들을 온몸으로 돌파하는 이들에게서 인간의 절박함과 고단함이 느껴진다. 날듯이 달려도 매번 제자리인 이들, 레일 위로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고 재배치하여도 또 어디선가 새로운 의자와 테이블이 올라오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 과정은 시지포스를 또올리게 한다. 안간힘을 쓰고 달려야 겨우 자리를 차지하는 현대인의 운명을 엿보는 것 같다.
한쪽 벽에서는 대형 천이 물결처럼 출렁이고 배우들이 그 벽을 뛰어다닌다. 관객들은 서서 벽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마치 신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게 된다. 거대한 천의 물결 속을 뛰는 배우들의 동작에서는 여유를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 찾을 수 있는 감정은 절박함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맞선 인간처럼 <푸에르자 부르타>의 퍼포먼스들은 절대적인 자연 앞에 발버둥치는 인간을 보여준다. 보여주는 방식이 움직임과 퍼포먼스를 통한 것이라 관객들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양복을 입고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배우들에게 적어도 필자가 느끼는 감정은 현대인의 나약함과 절박함이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델라구아다>가 그랬듯 기존의 공연 개념을 파괴하는 공연이다. 전통적인 무대도 객석도 없이 배우들은 공중이나 땅에 내려와 관객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마치 제의처럼 퍼포먼스를 즐기도록 한다. 기존의 연극처럼 언어가 중요하지도 않고, 배우들이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는다. 배우들은 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대로 느끼게 한다. 게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푸에르자 부르타>는 탈현대적인 작품이다.
각양각색의 조명들과 물이 담긴 투명 비닐 위로 퍼포머들이 뒹굴고 몸을 던진다. 그 관경을 관객들은 올려다 본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뒹굴며 퍼포머들은 자신을 내던진다. 레일 위를 끝없이 달리는 퍼포먼스와 더불어 이것이 <푸에르자 부르타>에서 중요한 퍼포먼스이다. 어떤 이는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갑갑한 현실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상반되지만 결국 관객에게 맡기고 배우들은 자신들만의 상황에 빠져들어 절박한 몸짓을 이어간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잠실운동장 내 빅탑시어터를 설치하고 올해 말까지 공연한다. 이 작품이 <델라구아다>만큼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2013년 한국 관객들이 탈현대적인 퍼포먼스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10월 11일~12월 31일 잠실종합운동장 내 FB빅탑시어터 02) 3445-5267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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