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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쌍화별곡> 김순택,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No.110]

글 |정세원 사진 |심주호 2012-11-20 5,595


김순택은 올해로 데뷔 12년 차를 맞는 뮤지컬 배우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관객들 사이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해 <명성황후>의 고종으로, <모차르트!>의 쉬카네더 얼터로 무대에 올라 제 몫을 톡톡히 해낸 그는 지난 9월 원효에 대한 질투와 애증으로 고민하고 번뇌하는 <쌍화별곡>의 의상 역으로 관객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오랜 무명 시절을 겪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름보다 배역으로 먼저 기억되는 배우에 머물러 있지만, 자신을 향한 관객들의 작은 관심들이 그저 감사하다는 김순택은 “지금 이 길이 내가 상상했던 배우의 길”이라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뮤지컬 작품에 스태프로 먼저 참여해 경험을 쌓고 앙상블과 조연을 거쳐 주연으로 무대에 서는 것.’ 너무나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길을 김순택은 서두름 없이 걸어오고 있다. ‘점수 맞춰 대학에 가고 전공을 정하는 게 싫어서’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그가 백제예술대 뮤지컬학과 1기로 입학한 것이 그 첫걸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숫기가 너무 없어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무용이나 연기 실기 시간에는 항상 맨 마지막 차례에 쭈뼛쭈뼛했고, 남들보다 한 번이라도 덜 하게 되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그렇게 한두 달 보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연습 경쟁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연습실 문 열고 들어가서 청소하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문 잠그고 나오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은사였던 유희성 연출이 그에게 보여준 특별한 관심은 잠시나마 해이해지려는 어린 마음을 다잡는 데 큰 힘이 됐다. “아침 6~7시 사이에 전화해서 목이 풀렸는지 확인하셨어요. 한두 시간씩 뛰면서 호흡과 발성 훈련하다가도 전화가 오면 정리된 숨으로 받아야 했고, 점심시간에는 과제 체크, 밤 10시에는 연습 마무리, 밤 12시에는 잘 준비가 되었는지도 확인하셨죠. 그때 생활했던 게 지금까지도 몸에 배어 있어요. 덕분에 배우 훈련 제대로 받았습니다.”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사의 가르침을 김순택은 맹목적으로 믿고 따랐다. 겨울방학 내내 서울예술단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고향의 봄’ 한 곡을 혼자 부르다 확인받기를 반복했고, 2001년 현대극단의 <팔만대장경>으로 데뷔한 이후 줄곧 창작뮤지컬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왔으며, 유희성 연출의 작품이라면 이름 없는 배역이라도 마다않고 최선을 다해 무대에 올랐다.

 

2003년 ‘파랑’이라는 이름의 가수로 살았던 짧은 외도는 다시 돌아온 뮤지컬 무대에서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배우 일을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10년만 버티자고 다짐을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어요. 연습 두 시간 전부터 나가서 청소하고 연습하고 공연하고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주위에서도 너무들 힘들게 보시고.” 그러다 <고려의 아침>에 함께 출연하던 선배를 따라간 곳이 박효신, 박화요비가 소속된 어느 녹음실이었다. 뮤지컬 현장과는 달리 노래 한 곡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연습실 생활 1년 만에 데뷔 앨범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생각하지 못했던 댄스 가수로 나서게 된 것도 그렇고 시기적으로도 안 좋았어요. 이정, 채연, 버즈, 이승기, 테이 등 많은 신인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거든요. 무엇보다 가수로 빨리 유명해져서 뮤지컬 하러 가야지 하는 딴마음이 있어서 더 안 된 것 같아요.” 3년여 만에 다시 찾은 뮤지컬 오디션 장에서 주연급 배역을 운운하는 예상치 못한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그는 초심을 되찾기 위해 다시 현대극단을 찾았다. 어떤 배역이든 상관없다며 참여한 <장보고>를 비롯해 <별사탕>, <응급처치 경연대회>, <겨울연가> 등 오디션을 거쳐 오른 무대 위에서 김순택은 가수였을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조명의 따뜻함, 관객들의 진심 어린 응원에 큰 위로를 받았다.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김순택의 첫 무대이기도 한 <화성에서 꿈꾸다>에서 그는 정조와 함께 있는 아내 장덕(빙허각)의 뒤에서 새로운 빛을 따라 가라며 구슬프게 노래하던 벽파 서유본(이선생)을 연기했다. 애절함 가득한 음색이 꽤 인상적이었던 그를 <피맛골 연가> 앙상블 배우들 사이에서 발견한 것은 뜻밖이었다. <투란도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대 후 복귀작인 만큼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유희성 연출의 뜻을 따른 선택이었다. 실망할 법도 하지만 김순택은 언제나 그랬듯이 가장 먼저 연습실에 도착해 청소를 하고 앙상블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성실하게 해냈다. 함께 작업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명성황후>의 고종 역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앙상블 배우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좋은 동료이고 선배인지 알 수 있다.

 

이란영 안무가가 연출 데뷔작 <쌍화별곡>의 의상 역으로 김순택을 선택한 데에도 그의 인성과 성실함이 한몫했을 것이다. “앙상블 배우를 뽑는 오디션 장에서 주인공 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김순택은 자신의 가능성에 손들어 준 연출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대에서 돋보이는 배우가 되어야 했다. 이전과 다른 ‘낯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좀 더 좋은 작품, 좋은 배역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기회가 닿으면 좋겠지만 큰 욕심 부리지는 않으려고요. 그보다는 어떤 작품을 만나든 그 무대 위에 바로 서기 위해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네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 위해서 말이에요.” 잘 살기 위해 더 열심히 배우고 더 많이 고민하겠다는 그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0호 2012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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