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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러브 네버 다이> 은막에 새겨진 유령의 기억 [No.108]

글 |김영주 사진제공 |무비앤아이 2012-09-10 4,816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의 극장판은 소규모 개봉에도 불구하고 8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례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미 여러 차례 라이선스와 투어 공연으로 볼만한 사람들은 다 보았다고 하지만 금전적인 부담 없이 작품의 명성을 확인할 기회를 원하는 대중이나, 최고의 캐스팅으로 다시 한번 공연의 감동을 맞보고 싶은 뮤지컬 마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진 결과였다. 그 성공에 힘입어 속편인 뮤지컬 <러브 네버 다이>의 극장 상영이 확정되었다. 아직 국내 초연이 진행되기 전이라 한국 관객들에게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신작을 최초로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팬텀의 실종, 그 이후                                           
파리 오페라극장의 지하에 숨어살던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남장을 하고 그 무리 팀에 섞여 있던 사랑스런 무희 맥 지리는 누구보다 먼저 유령의 거처에 발을 디뎠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가득한 발레리나는 무시무시한 정체불명의 존재가 앉아있을 옥좌를 덮은 검은 천을 벗겨냈지만, 그 비밀스러운 공간의 주인은 이미 ‘유령처럼’ 사라진 후였다. 다만 남은 것은 뼈로 만들어진 것처럼 하얀 가면. 발레리나는 홀린 듯이 신비로운 물건을 손에 쥐고 높이 들어 올려 불빛에 비춰보고, 그 작은 손에 조명이 모이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오페라의 유령>은 열린 결말이라고도 할 수 없는 명확한 엔딩을 보여주었지만 팬텀이라는 천재적인 괴물에게 애착을 가진 이 작품의 팬들은 그 다음 이야기에 대해 저마다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전편에서 이미 완벽한 기승전결로 결말을 보여준 작품에서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사실 안전한 시도는 아니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첩보 추리 소설 작가로 명성이 높은 프레데릭 포사이스에게 속편 격인 <맨해튼의 유령>을 써달라고 부탁했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유령에 대한 두 번째 뮤지컬을 만들었다. 제목은 <러브 네버 다이>. 작품 속 하이라이트에 등장하는 메인 테마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웨스트엔드와 호주에서 막을 올린 <러브 네버 다이>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 중 가장 빠르게 극장용 공연 실황 영상이 제작되었다. 웨스트엔드에서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호주 출연진들로 멜버른의 리젠트 시어터에서 촬영했다. 뮤지컬 <러브 네버 다이>를 상연한 영국과 호주를 제외한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에서 극장 개봉을 했고, 호주에서는 DVD로만 출시되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에서 첫 개봉을 하게 된 이 작품은 <오페라의 유령>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후를 배경으로 한다.

 

 

유령, 땅으로 내려오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작품이 시작하고 한참이 지나도록 목소리와 그림자로만 무대를 지배했던 팬텀은 <러브 네버 다이>에서는 극의 시작과 함께 무대 중앙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그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크리스틴에 대한 그의 사랑과 집착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고독과 싸워온 팬텀은 크리스틴이 자신이 쓴 곡을 불러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꿈과 희망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그를 탈출 시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널 수 있게 도왔고, 코니 아일랜드에서 놀이공원을 만들고 공연을 올리기까지 큰 공을 세웠던 마담 지리와 맥 지리에게는 다른 열망이 있다.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어리고 사랑스러운 발레리나였던 맥 지리는 여인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매혹적인 무희가 되었다. 뭇 사내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당당하게 무대를 압도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팬텀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 것. 하지만 팬텀이 도박에 빠져 재산을 날린 라울을 거액의 계약금으로 유혹해서 크리스틴과 그 아들 구스타브까지 코니 아일랜드로 불러들이면서 갈등이 깊어진다.

 

 

작품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내용만 보아도 <러브 네버 다이>의 팬텀이 10년 전에 비해 인간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긴 인연으로 얽힌 두 쌍의 남녀가 엇갈린 사랑을 놓고 갈등하는 내용이 작품의 핵심 스토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전작에 비해 마법 같은 무대장치와 특수 효과를 통해 팬텀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가진 존재인지 보여주는 시간은 많지 않다. 가면으로 가린 얼굴이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연상시키는 당당한 체격의 미남자 벤 루이스는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신비로운 존재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있는 로맨스물의 남자 주인공에 가까워 보인다.

 

10년 전이나 현재나 크리스틴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여전히 두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변함없이 우유부단하다. 첫 등장부터 살아 움직이는 포쉐린 인형처럼 숨 막히게 아름다운 안나 오브린은 오페라 가수 출신답게 당대의 프리마 돈나로 추앙받는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설정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었다. 코니 아일랜드의 신비로운 놀이공원과 호텔을 오가는 무대는 보석상자처럼 화려하고 아름답다. 과거와 겹치는 장면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오페라의 유령>의 멜로디와 함께 안개 자욱한 물 위에 드리운 구름다리가 향수를 자극한다.

 

전작에 비해 가장 손해를 본 캐릭터는 역시 무능력한 남편의 표본처럼 그려진 라울일 것이다. 현재 스펙만으로도 <오페라의 유령> 때에 비해 팬텀에 현저히 밀리는 데다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신비로운 아이 구스타브의 생부가 누구냐 하는 모두가 예상 가능한 비밀까지 극 초반에 밝혀지고 나면, 등장하기만 해도 측은한 마음이 절로 생기는 루저가 된다.

 

다소 상투적인 사각관계보다 흥미로운 순간은 팬텀이 어린 구스타브에게서 자신의 흔적을 찾아낼 때이다. 열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기괴한 서커스 광대들의 외모에 두려움보다 매혹을 느끼는 구스타브를 보면서 팬텀은 그 아이가 어둠 뒤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자신과 똑같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팬텀과 구스타브가 유리관 속 배양액에 담긴 생명체처럼 꿈틀대는 반인반수들을 둘러보며, 자신들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강력한 성인 남자의 보컬과 보이 소프라노의 미성이 함께하는 록비트의 넘버 ‘The Beauty Underneath’로 확인하는 장면은 무대보다 영화관에서 볼 때 더 매력적인 신일 것이라고 점쳐본다. 밥 크로울리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영화에서 이름값을 제대로 했고, 캐릭터를 제대로 반영한 그의 아름다운 의상을 공연장에서보다 훨씬 세세하게 볼 수 있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실제로 극장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극장에서는 접근 불가능한 근거리에서 무대를 촬영한 것에도 만족감을 보였지만 그가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 극장용 공연 실황이 매우 드물게도 라이브 공연을 녹화하는 것처럼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장소에서 따로 촬영해야 했던 클로즈업 장면의 일부를 제외하고 배우들은 4일 동안의 촬영 내내 모든 시간을 노래해야 했다. 보통 가수의 몸짓이나 행동을 먼저 촬영한 후에 보컬을 얹곤 하는데, 대다수의 뮤지컬 영화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 영화의 경우, 연기자들이 촬영을 하면서 실제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관객들은 완전히 색다른 다이내믹함과 동시에 극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8호 2012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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