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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LIFE GRAPH] 자연스러운 연륜, 서범석 [No.133]

글 |배경희 2014-11-14 4,660
배우 인생 20년의 출연작 중 절반이 넘는 편수가  창작뮤지컬로 쓰인 서범석.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로  꼽혀왔던 그가 라이선스 뮤지컬로  이름을 알리고 전보다 더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길을 돌아보자. 



초석을 다진 작품 <명성황후>
“90년대 중반, 객석에서 <명성황후>를 봤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어요.
당시로는 볼 수 없었던  무대 매커니즘에 거의 비명을 지를 정도로 놀랐죠. 
저 큰물에 가서 내 꿈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에  98년 <명성황후>에 뛰어들어 그 뒤로  5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중에서 왜 2002년 공연을 꼽느냐면,  오랜 조연과 앙상블 생활을 거쳐  드디어 홍계훈 역을 따냈거든요. 
당시 홍계훈은 모든 남자 배우들의  꿈의 배역이었죠. 언제라도  시켜주기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역할이 주어져서 무대에 서보니  제 부족함을 알게 됐어요. 
연기적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택한 작품이  많은 연기파 배우를 배출한 <지하철 1호선>이고요. 
그 두 작품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작품들이죠.” 


잊을 수 없는 순간 <블루사이공>
“<블루사이공>은 96년 당시 대단한 창작뮤지컬이 나왔다고 호평받았던 작품이에요. 그래서 재공연 오디션이 열렸을 때 주저 없이 지원했죠.
처음엔 조연으로 합격했는데, 어느 날 극단 대표님이 절 부르시곤  
‘범석아, 너 병장 역 하면서 주인공 언더스터디 할래?  아니면 무대에 못 올라도 주인공 공부만 할래?’  하고 물으셨어요.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몰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공부만 하겠습니다’라고 했죠. 두 달 동안 죽어라고 연습했더니  결국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졌어요. 
<블루사이공>을 하면서 난생 처음  극한의 다이어트도 해봤어요.  한 달 동안 무려 8킬로그램을 감량했죠. 
하지만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고음이 안 올라가는  경험을 하고선 다시는 무리해서  살을 빼지 말자고 생각했죠.”


터닝 포인트 <노트르담 드 파리>
“<노트르담 드 파리>에 출연하기 전까진 창작뮤지컬을 고집했어요. 
전 세계의 정서를 아우를 수 있는 고전에는 거부감이 없었지만, 막연히 남의 나라  얘기하는 작품은 하기 싫었기 때문이죠. 
사실 <노트르담 드 파리>도 오디션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콰지모도에 캐스팅된 김법래가  프롤로를 아직 못 구했다며 제가 그 역에 어울릴 것 같으니 오디션을 보라고 권했어요. 
그때가 한창 창작뮤지컬 출연 배우의 설움을  느끼고 있을 때라 ‘나도 라이선스 뮤지컬 해봐?’ 하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게 됐죠. 
이 작품에서 정말 많은 박수를 받으면서  여태껏 내가 쌓아왔던 것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노트르담 드 파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오디션 없이  출연 제의를 받게 해준 작품이에요. (웃음)” 


깊은 애착 <서편제>
“<서편제>는 다분히 한국적인 작품이잖아요?  저한테 제일 먼저 섭외가 들어왔죠. 
제 장점이 제가 하면 웬만한 라이선스 뮤지컬도 창작뮤지컬처럼 보이게 하는 거니까. (웃음) 
연출님이 유봉은 제 인생의 배역이라고  칭찬해 주셨는데, 솔직히 전 아직도  유봉이란 인물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다만, 소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광기 어린 인물이 아닌 외로운 예술가의  이면을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유봉이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한이 쌓일 시간’은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예요.”


꿈의 배역 <맨 오브 라만차>
“<맨 오브 라만차>는 노래로 먼저 접한 작품이에요.
어떤 콘서트에서 우연히 ‘라만차’의 대표곡 ‘임파서블 드림’을 부르게 됐다가 가사 내용에 완전히 반했죠. 
‘임파서블 드림? 이건 어떤 작품에 나오는 거지?’ 하고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공연되는 작품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각종 행사에서 노래 부를 기회만 생기면 무조건 ‘임파서블 드림’을 불렀어요. 
왜냐, 꿈은 언젠가 이뤄진다는 걸 잘 알았거든요. 
엄청난 노력 끝에 ‘임파서블 드림’을 ‘라만차’의 무대에서 부를 수 있게 됐을 때, 정말 영광스러웠죠.
그런데 정말 속상하게도  마음만큼 잘하지 못한 것 같아요. 내년 <맨 오브 라만차> 10주년 공연에서  단 몇 회라도 공연할 수 있게 되길, 
지금은 그걸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웃음)”


무대에서 사는 느낌 <두 도시 이야기>
“<두 도시 이야기>는 초연을 보고 제작사에 연락했어요. 이 작품 꼭 하고 싶다고요. 
관객이 보기엔 어땠는지 몰라도, 이 작품은 무대에서 연기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왜냐면  저도 시드니 칼튼처럼 가장 소중한 한 가지를 위해 다른 나머지는 욕심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웃음) 
전 칼튼처럼 염세주의자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그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저 느껴지는 대로 편하게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이번 국립극장 공연은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두 도시 이야기>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새로운 이미지 <뿌리 깊은 나무>
“예전에 선배들이 항상 했던 얘기가 배우는 무조건 왕 역할을 한 번 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역할의 완성은 왕이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저하고 왕의 이미지는 거리가 좀 있죠. 저는 그간 서민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는 이야기를 주로 들어왔으니까. (웃음) 
그런 제게 무려 세종대왕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으니 무조건 한다고 했죠. 
요즘 한창 세종대왕의 사상에 젖어있어서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한글이 탄생하게 됐는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잘 보여주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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