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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S] 인간에 대한 초월적 통찰, 파우스트 [No.132]

글 |송준호 2014-11-04 7,415
악마와의 은밀하고 감미로운 계약.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며 생명을 이어간다. 
뮤지컬에서도 이 콤비의 매력을 현대에 되살렸다.  
뉴욕의 증권가를 배경으로 한 <더 데빌>은 악마와 돌이킬 수 없는  거래를 하는 ‘존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파우스트와 악마의 계약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괴테보다 앞섰던 실존 인물 ‘파우스트’

서양 근대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네 캐릭터가 있다. 파우스트와 햄릿, 돈 키호테와 돈 후안이 그들이다. 이들은 세상에 등장한 지 300~400년이 넘어가지만 수많은 모방과 재창작을 통해 후대의 독자들에게 존재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중 가장 먼저 세상에 데뷔한 캐릭터는 1587년에 구텐베르크 인쇄술을 통해 등장한 파우스트다. 파우스트는 괴테의 동명 저작으로 유명한 이름이지만, 그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인물은 아니다. 심지어 파우스트는 1480년에서 1540년 사이에 실존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중세에서 근세로의 전환기였던 당시는 유럽에 사회문화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확립, 루터의 종교 개혁,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과 도서 출판 보급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틈타 점성술사나 마술사들이 등장했고, 파우스트도 이때 점성술사이자 연금술사로 처음 출현했다. 그는 과학과 마술에 능통한 박사로 자칭하면서 사람들의 환심을 샀지만, 곧 사이비로 여겨지면서 악마의 일당이라는 루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 파우스트를 신화적인 인물로 만든 이는 바로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였다. 악마의 존재를 믿었던 그는 자신의 불운을 악마의 행위로 설명하곤 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을 하면서도 종교 재판에서 행해지던 마녀 사냥을 금하지 않았고 오히려 권장했다. 파우스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루터는 그를 악마와 연관시키면서 ‘파우스트와 악마의 계약’이라는 지금의 구도를 만들어냈다. 이로써 파우스트는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신화가 된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과 소문이 더해져, 프랑크푸르트의 출판업자 요한 슈피스가 1587년 민중본 『파우스트 서(書)』를 출간하면서 파우스트의 이름은 일반에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마법사가 악마와 계약을 맺어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는 이야기는 기독교 신앙을 굳건히 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당시 민중들은 이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이후 이 전설은 여러 가지 형태로 각색, 변형되어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다.

신화에 머물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문학 작품으로 승화한 것은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였다. 그는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적 생애』(1592)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들을 선보였는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파우스트를 지식인으로 설정한 점이다. 기존의 ‘마법사와 악마의 계약’에서 ‘지식인과 악마와의 계약’으로 컨셉을 바꾼 것이다. 당시 과학 실용주의를 강조한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지식인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다. 이후 말로는 1604년에 희곡 『포스터스 박사의 생과 사의 비극적 역사』를 써서 연극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는 훗날 영국의 유랑극단에 의해 독일로 역수입되기도 했는데, 당시 관객 중에 소년 괴테도 있었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그 유산들

어릴 때부터 파우스트 전설을 접한 괴테가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다룬 것은 대학 졸업 직후였다. 『파우스트 단편』(1790)을 미완성 상태로 출간한 그는 7년 후 다시 집필을 시작해 11년이 걸려 『파우스트』 1부(1808)를 내놨다. 2부의 집필은 말년인 1825년에서야 시작됐는데, 1831년 완성한 후 이듬해 그는 생을 마감한다. 말 그대로 일생에 걸쳐 쓴, ‘일생의 역작’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여정이다. 당대를 풍미한 시인이자 석학답게 괴테는 이 작품에 백과사전적인 지식들을 총망라했다. 그 시대의 뛰어난 문학적 기법들은 물론, 철학, 종교, 정치, 과학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세계관을 담아냈다. 인류 문화를 총동원한 이 결과물의 무게감은 종종 일반 독자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온리 원’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것이 보편적으로 지향해야 할 인간 정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괴테의 『파우스트』가 이전의 다른 파우스트 이야기와 다른 점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에 구원을 받는다. 괴테가 희곡이라는 형식과 지식인 설정까지 그대로 차용한 말로의 작품에서도 파우스트는 결국 지옥행을 피하지 못한다. 파우스트가 악마와 결탁한 저주받은 영혼이라는 시각이 기존의 것이었다면, 괴테는 그를 인간 한계에 맞서는 영웅이자 신에게 구원받은 영혼으로 새롭게 재해석했다. 이 ‘구원’이라는 테마는 종종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그로 인한 죄악의 문제와 충돌하는데, 괴테는 바로 그런 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자성을 제안한다.

이런 시공을 초월한 주제의식 탓에 괴테의 『파우스트』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번역되고, 음악, 미술, 연극, 무용, 클래식, 오페라,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괴테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모차르트가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어주길 바랐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훗날 베를리오즈(<파우스트의 겁벌>(1846)), 오펜바흐(<천국과 지옥>(1858)), 구노(<파우스트>(1859)), 보이토(<메피스토펠레>(1868)) 등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괴테와 『파우스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파우스트의 아이들                   



 1부와 2부 『파우스트』의 비교 체험                         
『파우스트』 1부는 ‘파우스트와 마르그리트’이고, 2부는 ‘헬레나’이다. 『파우스트』를 소재로 한 여러 오페라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구노의 <파우스트>는 1부의 내용을 요약해 표현한 작품이다. 이 극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대립하는 가운데,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마르그리트의 자기 파괴적인 헌신과 희생을 부각시킨다. 반면 2부까지 극 안에 포함한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는 괴테의 원작에 가장 충실한 오페라로 평가받는다. 주역이 파우스트나 마르그리트가 아닌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점이 흥미롭다. 



 환상적인 영상으로 그린 『파우스트』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파우스트』의 기본 컨셉을 환상적인 영상으로 구현한 판타지다. 파르나서스 박사는 수천 년 전 악마 ‘미스터 닉’과의 내기에서 이겨 불멸의 삶을 얻지만, 사랑하는 이를 만나자 영생 대신 젊음을 원한다. 악마는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훗날 태어날 아이를 요구하고, 박사는 이후 16번째 생일이 다가오는 딸을 악마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조력자의 도움으로 악마와 대결을 펼친다. 어둡고 불길한 상징들과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세계가 마술이라는 형식 안에서 절묘하게 교차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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