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캐릭터들. 그 중심에는 특별한 분장의 힘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위키드>, <캣츠>, <헤드윅>의 주인공들이 대표적인 예! 그들의 분장은 곧 그들의 상징과도 같다. 이 세 작품을 담당한 채송화 분장 디자이너의 설명을 바탕으로, 백스테이지 속 분장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위키드> 편
이건 그냥 평범한 녹색이 아니야!
<위키드>의 글로벌 공식 메이크업 스폰서는 맥(M.A.C). 파운데이션, 펜슬, 립스틱 등 분장 도구 대부분이 맥 제품이다. 엘파바를 초록 마녀로 변신시키는 건 바로 맥의 녹색 파운데이션! 엘파바를 위해 맥에서 특별히 개발한 컬러인 랜드스케이프 그린(Landscape Green)이다. 전문가용 컬렉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일반 매장에서는 찾을 수 없다.
<위키드>에서 초록색은 작품 전체를 상징하는 컬러다. 그만큼 엘파바의 초록 분장이 중요하다. 여기서 이 작품만의 특징이 발견되는데, 공연 한 달 전, 테크니컬 리허설 때부터 엘파바는 무조건 분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명에 따른 초록색 피부 톤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한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 피부에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것. 관객에게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였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피부가 비칠 정도로 초록색을 반투명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수성 물감을 반투명하게 칠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란다. 그래서 리허설 기간, 초록색 피부 톤을 잡는 데만 1~2주가 소요된다.
엘파바의 파운데이션은 바디페인팅용으로 쓰이는 수성 물감이다. 그래서 일반 파운데이션과 다르게 큰 브러쉬를 사용해 그려야 한다는 것이 특징. 얼굴뿐 아니라 목과 손 등 피부가 보이는 부분들까지 꼼꼼히 발라줘야 하며, 이때 브러쉬 자국이 남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매 공연, 피부 톤을 잡는 데는 약 20분이 소요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메이크업을 고정시키기 위해 벤나이(Ben Nye) 투명 파우더로 마무리한다.
이미 예리한 관객들은 눈치를 챘을까? 엘파바의 분장에는 시간의 흐름도 담겨 있다. 그래서 1막과 2막의 모습에 살짝 변화가 생긴다. 좀 더 어린 시절의 엘파바를 그린 1막에서는 학생다운 느낌으로, 셰이딩을 강하게 하지 않고 하이라이트를 밝게 주어 화사한 표현을 한다. 반면 엘파바의 성장이 시작되는 2막에서는 블랙 립스틱과 스모키 화장으로 성숙한 느낌을 더했다.
변신에는 스피드가 관건!
<위키드>엔 분장 팀이 공연 6~7시간 전부터 상주하는데, 가발 손질에 약 3시간, 메이크업을 하는 데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위키드>의 가발은 모두 인모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배우들의 머리 모양을 떠서, 그들에게 딱 맞는 사이즈로 제작한다. 글린다 가발의 경우 엘파바의 메이크업처럼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역할을 한다. 1막 첫 신에서는 버블 가발, 쉬즈 대학에 갈 때는 쉬즈 가발, 2막 첫 신에서는 업스타일의 가발,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버블 가발로 돌아온다. 이때 주인공들이 쉬즈 학교에 입학하는 쉬즈 장면은 공연 중 가장 빠른 퀵체인지가 이뤄지는 부분. 이때 글린다 역시 버블 가발에서 쉬즈 가발로 재빨리 교체해야 한다. 그래서 이때 배우를 쫓아가며 흘러내리는 가발을 고정시켜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캣츠> 편
고양이로 태어나는 신성한 순간!
<캣츠>는 배우들이 직접 분장을 해서 더 특별한 공연이다. 배우들이 손수 고양이 분장을 해야 한다는 건 계약서에도 적혀있는 사실! 배우들에게 분장 과정 자체가 사람에서 고양이로 변화하는 의식과도 같기 때문이란다. 분장이 끝난 배우들은 그때부터 말을 할 수 없고, 완벽하게 고양이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이 <캣츠>의 철칙. 이런 프로페셔널한 정신이 <캣츠>의 명성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캣츠>는 공연 한 달 전부터 배우들을 위한 분장 워크숍을 연다. 배우들이 분장을 인지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자신의 분장을 마스터하기 위해, 하루에 1~2시간씩 일주일 정도의 훈련을 받는다. 자세히 보면, 캣츠는 캐릭터마다, 배우마다 분장이 다 다르다. 공연마다 각 캐릭터의 오리지널 분장을 바탕으로 해당 배우의 얼굴에 맞게 조금씩 디자인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역시 <캣츠>는 분장부터 개성 만점이다.
메이크업은 먼저,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로 크리오란(Kryolan) 파운데이션을 사용하는데, 다양한 컬러와 강한 지속성이 장점이다. 작품의 특성상 배우들이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분장이 잘 지워지지 않는제품을 쓰는 것이 좋단다. 모든 고양이들이 흰색이기 때문에 흰 색깔의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골고루 칠하고, 노란색, 오렌지색, 갈색 등의 컬러를 덧칠한다. 밝은 톤에서 어두운 톤의 순서로 발라 나가는 것이다. 기초화장이 끝난 후엔 파우더로 유분이 번지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색깔이 필요한 부분에 섀도를 바르고, 눈과 코 등에 라인을 그린다.
<캣츠>는 의상과 분장의 차이가 거의 없어야 하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다. 고양이들 역시 엘파바처럼 피부가 드러난 부분에 모두 파운데이션을 칠해야 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얼굴과 몸, 가발, 의상 등의 문양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걸 분장을 하는 동안 계속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 올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캣츠>는 메이크업보다 가발의 비중이 더 큰 공연이다. 극장에도 가발 담당 스태프들이 공연 3~4시간 전부터 상주해 있다. <캣츠>의 가발은 각자의 캐릭터에 맞는 색깔의 야크털을 한 올 한 올 심어 제작한 것이다. 단, 그리자벨라의 것만 인모가 섞여 있다. 무대에 오르는 고양이들은 30마리, 거기에 커버 배우들의 것을 포함해 총 60개의 가발을 미리 손질해둔다. 그냥 두면 사람 머리카락처럼 축 처지기 때문이다. 이를 손질하는 데 대략 1시간이 소요된다.
<캣츠>는 여느 작품보다 파워풀한 춤이 많다. 그만큼 가발이 떨어지지 않게 그것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우선 가발을 고정할 수 있게, 배우들의 머리로 핀컬(핀으로 고정시켜 컬을 만들어가는 것)을 만든다. 그 위에 가발 망을 씌운 다음 캣츠 가발을 꼼꼼히 고정시킨다. 이런 작업을 통해 강한 움직임에도 흔들림 없는 분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헤드윅> 편
이런 화장은 처음이지?
<헤드윅>의 분장 시간도 만만치 않다. 남자 배우들에게 여성성을 부여하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게다가 이것이 일반 여성들의 화장과는 좀 다르지 않은가. 작품 자체가 콘서트 컨셉이기 때문에 더욱 화려한 무대 화장을 해야 한다.
<헤드윅> 분장의 포인트는 아이 메이크업! 맥, 메이크업 포에버(Makeup Forever), 아뜰리에(Atelier) 등 발색력이 뛰어난 다양한 제품들이 쓰인다. 특히 글리터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종류만 12가지가 넘는다고. <헤드윅>은 본격적인 분장에 앞서, 특수한 작업(?)도 이루어진다. 헤드윅 특유의 곡선형의 얇은 눈썹을 만들기 위해, 먼저 배우들의 눈썹을 가리는 특수분장을 해야 한다. 수염 붙일 때 쓰는 본드인 스프리트껌과 더마왁스로 눈썹을 가려주는 작업이다. 그러면 모나리자처럼 배우들의 눈썹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때 모든 배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같은 행동을 한단다. 바로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는 것! 헤드윅이라면 누구나 그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있다.
눈썹이 사라진 상태가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분장에 들어간다. 파운데이션과 파우더를 바르고, 아이홀을 잡아 글리터를 올리고, 속눈썹을 붙인 다음 볼터치를 하고 눈썹을 그린다. 신기한 점은 분장을 마치고 나면, 상남자 같던 배우들이 전에 없던 여성스러움을 지니게 된다는 것. 그때부터 배우들의 눈빛이 확 달라진단다. 그만큼 분장의 힘은 강력하다.
가발도 개성 시대
헤드윅의 가발은 과장된 형태가 많아서 그 모양을 만들기엔 인조 가발이 더 적합하다. 하지만 2여 년 전부터 인모 가발과 섞어 쓰고 있다고 한다. 인모 가발은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들어 준다는 장점이 있다. 두 소재의 가발을 적절히 섞음으로, 과장된 부분과 자연스러운 부분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다.
헤드윅(Hedwig)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위그 가발(머리형으로 된 가발)은 이 작품의 중요한 상징이다. 뱀 머리처럼 생긴 일명 오리진 가발은 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
<헤드윅> 역시 배우들의 개성에 맞게 가발의 디자인을 변형시키고 있다. 초연 때는 컬러나 길이에 변화를 주는 정도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폭넓은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웨이브, 화이트 업, 파라포셋 등 다양한 스타일의 헤드윅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 작품은 배우가 끌고 가는 힘이 크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도 분장에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9호 2014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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