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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RAVEL] 일본 <셜록홈즈> 관람기 [No.126]

글 |최종윤 (<셜록홈즈> 작곡가) 사진제공 |최종윤 (<셜록홈즈> 작곡가) 2014-04-07 3,961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의 초연 개막을 앞두고,
크리에이티브 팀이 잠시 연습실을 벗어나 일본을 향했다.
일본으로 라이선스를 수출한
<셜록홈즈1: 앤더스가의 비밀>의 첫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노우성,
한국의 대표 셜록 홈즈 송용진과 함께
동경예술극장을 찾은 최종윤 작곡가가 일본에서
<셜록홈즈>를 보고 감회를 전해왔다.

 

 

원작자를 향한 기분 좋은 환대

<셜록홈즈2>의 준비가 한창이던 1월 21일. 이른 아침 공항에서 노우성 연출을 만났다. 아직도 살짝 잠이 덜 깬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그를 오전에 만난 건 처음 있는 일인 듯싶다) 그의 눈은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마도 전날 자정까지 있었던 스태프 회의가 그를 이곳 공항에서도 생각에 빠지게 만든 것 같았다. 한참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이 연출가에게는 절대 휴식이 아닐 테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공연장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 짐을 내렸다. 일본에서 첫 일정은 토호엔터테인먼트와의 만남. 첫인상부터 호의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양복까지 다시 다려 입고 갔다. 일본의 큰 공연 단체의 대표와 만난다는 생각에 비즈니스 테크닉이 없는 나로선 매우 긴장됐는데, 이치무라 상과 쿠리마 상은 편한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축하와 환영의 메시지와 함께 곧바로 선물부터 받게 됐는데, 큰 봉투 안에는 빨간 표지의 책이 두 권 있었다. 그저 자극적인 표지 색깔에 감탄하고 있는데, 통역가가 그 책들이 일본판 <셜록홈즈>의 대본과 악보라고 알려주었다. 일본어 궁서체로, 그것도 세로로 쓰여 있는 대본. 감탄과 흥미에 웃어버렸지만, 마음은 정말 날아갈 듯 기뻤다. 악보 역시 모두 일본어로 바꾸어 다시 정리해, 내가 만든 한국어 악보보다 나아 보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책 뒷부분을 보세요.’ 통역의 얘기를 듣고 맨 뒷 페이지를 보니 일련번호가 있었다. 근데 우리가 받은 대본이 ‘No.1’인 게 아닌가. “원작자이시기 때문에 1번을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 공연을 올리게 돼 다시 한 번 기쁘게 생각한다”는 쿠리마 상. 세심하게 저를 감동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밤새 밀려온 문자들로 골머리를 앓으며 새벽에 잠든 노우성 연출. 이곳에서만큼은 좀 쉬셔야 할 것 같아 깨우고 싶지 않았으나, 고베 소고기로 맛난 ‘아점’을 해결한 후 우리는 다시 공연장으로 향했다. 반갑게도 공연장 로비에서 배우 송용진을 만났다. 공연 관람 때문인지, 새색시와의 첫날밤 때문인지, 상기된 얼굴로 나타난 용진 씨. 사실 그는 일본에 오기 하루 전날 결혼식을 올렸다. ‘오리지널 홈즈’답게 일본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신혼여행지도 일본으로 돌렸던 것. 덕분에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이 돼 기뻤다.
우리는 공연 직전 프레스 콜에도 초대받게 되었는데, 공연장 로비에서 진행된 행사는 짧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약 20여 분 만에 초스피드로 진행된 프레스 콜. 공연 오프닝 날 배우들과 같이 공식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창작자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나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걸 원해서가 아니라 창작을 한 사람으로서 배려를 받는다는 점에서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었다. 단체 촬영 후 한국 홈즈와 일본 홈즈 두 사람이 같이 사진을 찍었다. 언젠간 <레 미제라블>이 그랬듯 영국과 미국, 또는 유럽의 홈즈들이 모두 모여서 25주년 기념 공연을 올리는 소망을 품어보았다.

 

                                

 

감격스러운 첫 공연

공연장 앞은 공연 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로비는 각종 기념품과 팸플릿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팸플릿은 원작 소설을 연상케 하는 고급스러운 모습이었는데, 팸플릿을 열자마자 바로 내 사진부터 보여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내 이름 세 글자를 빼곤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지만, 내 작품을 다른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올려 주었으며, 그 증거로 남은 이 팸플릿 안에 소개된 크고 작은 사진과 이름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객석에 들어와 앉자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초연할 때가 떠올랐는데, 마음 졸이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8시 정각에 시작된 공연은 한국 공연보다 약간 긴 느낌이었다. 중간 중간, 한국 버전보다 조금 더 설명적인 듯했다. 우리 버전은 자세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배우와 관객을 믿고 맡긴 데가 있는데, 일본 공연은 친절한 방법을 택한 것 같았다. 또한 한국에서는 없었던 서곡이 추가되었다. 전곡이 그대로 사용되었으나, 현지에서 작업해 추가된 서곡을 들으니 이 작품에 대한 이들의 해석 방향이 어떠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버전과 캐스팅 방향은 비슷했으나, 한 가지 차이는 전체 배역들이 우리보다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즉 홈즈와 왓슨, 포비 등의 배역은 대본상의 나이에 거의 맞췄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에너지와 분위기, 특히 홈즈와 에릭 간의 캐릭터 밸런스가 한국 버전과는 큰 차이가 나 보였다. 배우들의 연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홈즈 역을 맡은 하시모토 사토시는 <두 도시 이야기>, <제인에어>, <레 미제라블> 등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았던 무게감 있는 배우인데, 의외로 한국 홈즈들 못지않은 ‘깨알 같은’ 연기로 사랑스러움을 더했다. 왓슨 역의 이치로 마키는 다카라즈카에서 경력을 쌓은 최고의 배우로 알려져 있다. 에릭 역의 우라이 켄지 역시 일본 뮤지컬계에서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인기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극장 뒷문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팬들의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첫 공연이 무사히 끝났고, 이례적으로 우리는 무대 인사를 할 기회를 얻었다. 홈즈 역 배우의 공연 소개에 이어, “한국에서 온 창작진을 소개하겠다”는 안내와 함께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공연 내내 침착해 보이는 관객들의 뒷모습만 보다가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관객들이 얼마나 이 극을 즐겼는지 알 수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끊임없이 열심히 치는 박수를 통해 일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첫 공연을 준비하던 때를 떠올렸다”는 노우성 연출은 “일본 팬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모습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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