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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S] 60년대 비틀스와 맞섰던 포 시즌스 [No.124]

글 |박병성 2014-02-03 4,664

뮤지컬 <저지보이스>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그룹 포 시즌스(the Four Seasons)는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그룹이다. 포 시즌스가 활발하게 활동한 때가 1960년대이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들과 같은 세대에 명성을 날린 슈프림스, 레이 찰스, 비치 보이스, 제임스 브라운 등과 비교해서도 우리에게는 현저히 인지도가 낮다. 그만큼 당대 인기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빌보드에서 1960년대 팝 차트에 오른 가수들을 대상으로 음반 판매량과 방송 횟수를 합산하여 순위를 매긴 결과 포 시즌스는 당당히 6위에 올랐다. 1위가 절대 지존 비틀스, 2위가 흑인의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를 녹여낸 엘비스 프레슬리였고, 그 뒤로 소울의 대가 레이 찰스, 60년대 아이돌 브렌다 리, 가장 성공한 여성 그룹 슈프림스, 그다음이 포 시즌스였다. 천상의 하모니 비지스, 소울팝의 대가 마빈 게이도 포 시즌스의 뒤에 위치했다. 그만큼 포 시즌스는 6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팝 그룹이다. 특히 포 시즌스는 영국의 비틀스가 미국 음반 시장을 공습한 상태에서도 그와 어깨를 견주었던 미국의 자존심이었다.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리고 1970년대까지 그 명성이 이어지지만 그 후로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한다. 팀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기존 멤버들의 이탈이 많아 팬들의 충성도가 낮아지기도 했다. 그것이 오늘날 포 시즌스를 덜 기억하게 하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포 시즌스의 멤버는 리드 싱어인 프랭키 밸리(Frankie Valli)를 중심으로 작곡과 키보드를 담당하는 밥 고디오(Bob Gaudio), 리드 기타 토미 드 비토(Tommy De Vito), 베이스 기타 닉 매시(Nick Massi)로 이뤄졌다. 이들이 전성기의 포 시즌스를 형성한 멤버들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제5의 멤버가 있는데, 바로 밥 고디오와 작곡을 담당하고 세션으로도 참여했던 밥 크루(Bob Crewe)이다. 그의 공식 역할은 프로듀서였지만 작업에도 깊이 관여하는 뛰어난 아티스트였다. 1970년대 이후 팀원들이 모두 떠나고 그룹 이름이 ‘프랭키 밸리와 포 시즌스’로 바뀐 것에도 드러나듯이 이 팀은 프랭크 밸리 중심의 그룹이었다.

 

포 시즌스의 결성

그룹의 시작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저지주 뉴와크 지역에서 노동자 계층의 자식으로 태어난 프랭키 밸리는 1953년 친구들과 그룹 바리톤즈(Varitones)를 결성했다. 그때부터 함께 참여한 친구가 할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워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던 토미 드 비토이다. 그룹 이름을 ‘포 러버스’로 바꾸고 RCA레코드사와 계약을 한 이들은  「You`re the Apple of My Eye」로 빌보드 싱글 차트 62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히트곡을 선보이지 못한다. 이들은 1960년까지 클럽을 전전하며 공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1958년 밥 크루가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1960년 닉 매시가 가세한다. 같은 해 볼티모어 공연에서 천재 소년 작곡가 밥 고디오를 만나면서 1960년대 미국 팝 역사를 새롭게 쓸 준비를 마친다. 밥 고디오의 표현에 따르면 ‘볼링장 이름 같았던’ 이전의 밴드 이름에서 ‘포 시즌스’로 바꾼 것도 이때부터이다. ‘포 시즌스’는 뉴저지의 거리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포 시즌스의 이름으로 첫 싱글 앨범  「버뮤다」를 발표했지만 차트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들이 승승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때는 밥 고디오와 밥 크루가 작곡한 ‘Sherry’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깨끗한 가성의 보컬 하모니가 돋보였던 이 곡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다. 이 앨범은 비제이 레코드사에서 발매됐다. 포 시즌스는 비제이 레코드사의 첫 백인 아티스트였다. ‘Sherry’에 이어 ‘Big Girls Don`t Cry’, ‘Walk Like a Man’ 등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하는 히트곡들이 비제이 레코드사와의 작업에서 나왔다. 비제이 레코드사는 비틀스의 음반을 미국 시장에 처음 소개한 곳이다. 영국 그룹 비틀스의 대공세로 미국 음반 시장은 초토화되었지만 앞서 말한 대로 포 시즌스는 ‘Sherry’ 발표 이후 1967년까지 5년간 4곡의 빌보드 차트 1위곡을 비롯 총 13곡을 톱 10 안에 진입시키며 인기를 이어갔다.
흑인 알앤비와 두왑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음악 스타일 때문에 종종 흑인 그룹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고음의 보컬 하모니가 아름답고 흥겨운 이들의 노래는 1960년대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1967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로 향했다. 1965년 닉 매시가 다른 멤버로 교체됐고, 1971년 모타운과 계약할 때는 프랭키와 밥 고디오만 남았다. 그리고 1975년 ‘Who Loves You’로 오랜만에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을 때는 오직 프랭크 밸리만 남고 새로운 멤버로 채워져 있었다. 같은 해 연말에 향수를 자극하는 싱글 앨범 ‘December 1963(Oh! What a Night)’으로 1964년 ‘Rag Doll’ 이후 11년 만에 빌보드 차트의 정상 자리를 탈환하지만 좌초되는 포 시즌스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한 공로를 인정받아, 포 시즌스는 1990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또한 1994년 ‘December 1963(Oh! What a Night)’ 댄스 리믹스 버전이 다시 차트 14위를 기록해, 1956년 처음 빌보드에 오른 후 38년간 차트에 등장하는 그룹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포 시즌스의 중심 프랭키 밸리

그룹 ‘들국화’ 하면 전인권이, 그룹 ‘부활’ 하면 이승철이 떠오르듯이, 포 시즌스에서 프랭키 밸리는 밴드의 핵심이자 상징적인 존재였다. 파워풀한 팔세토 창법과 3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으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어린 시절 음악적 멘토였던 진 밸리의 영향으로 이름을 프랭키 밸리로 고친 그는 십대에 데뷔했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룹 활동을 위해 세 살을 속여야 했다. ‘포 시즌스’ 이전 ‘바리톤즈’에서 ‘포 러버스’, ‘프랭키 타일러’, ‘프랭키 밸리와 여행자들’ 등의 그룹명으로 자주 바꿨지만 그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다. 포 시즌스로 명성을 날릴 때조차 그는 솔로 활동을 병행했다. 이들의 대표곡이자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리메이크해온 ‘Can Take My Eyes Off You’는 밥 고디오와 밥 크루가 작곡했지만, 1967년 프랭키 밸리의 싱글 앨범으로 발표된 곡이다. 1978년에는 영화 <그리스>에서 오프닝 타이틀 싱글 곡 ‘그리스’를 불러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1970년대 그룹의 원년 멤버들은 모두 새로운 멤버로 바뀌었지만 프랭키 밸리가 건재했고 히트곡을 생산하면서 부활의 희망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 청각에 이상이 생기는 등 치료가 필요해지면서 재기의 희망은 조금씩 옅어졌다. (그 후 수술로 완치됐다.) 1977년 밸리마저도 그룹에서 떠났다. 1980년대 멤버들이 순회공연을 위해 다시 모였지만 그것이 대중들이 직접 만날 수 있었던 포 시즌스의 공식적인 마지막 모습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4호 2014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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