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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한국 뮤지컬 마니아 1 [No.107]

글 |김영주 2012-08-14 5,419

한국 뮤지컬 마니아

 

한국 뮤지컬의 급성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열성적인 관객들이다.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감동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일반적인 관객이라면 그에 그치지 않고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막이 내린 후까지 자발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이들을 뮤지컬 마니아라고 한다. 이들은 타 공연 예술 장르에 비해 뮤지컬계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뮤지컬계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해외의 뮤지컬 팬들과도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뮤지컬 마니아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 문화계의 몇 가지 특징도 읽을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장과 함께 여러 양상을 보여준 뮤지컬 마니아층의 변화를 정리했다. 또한 스스로를 뮤지컬 마니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어떤 성향을 가진 이들인지, 어떤 방식으로 뮤지컬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문 조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살펴보았다.

 

 

 

 


한국 뮤지컬, 한국 뮤지컬 마니아    

한국 뮤지컬 마니아들의 열정이 얼마나 놀라운지에 대해서는 국내 뮤지컬과 인연을 맺은 해외 뮤지컬계 종사자들도, 그리고 한국의 다른 공연 예술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서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략 이러하다. 젊고 역동적이며, 좋은 작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관객들이 한국 뮤지컬의 기이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는 우리 뮤지컬계 내부 관계자들의 판단과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지난 10여 년간의 변화와 함께 다소 복잡한 상황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뮤지컬 마니아의 탄생

한국 뮤지컬계에서 마니아들이 뚜렷한 성격과 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넘어오는 시점으로 보인다. 물론 이전에도 롯데월드예술극장, 현대극단 등 꾸준히 뮤지컬을 공연하는 단체가 있었고 열정적으로 뮤지컬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이룰 만한 마땅한 공간도 없었고, 그럴 만큼의 수요도 없었다. 변화는 공연 예술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커지고 ‘마니아’라는 열정적인 문화 소비자 집단이 당대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둔 시기에 한국 뮤지컬 마니아를 낳은 결정적인 작품들을 손꼽아 보자면 2000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을 한 <렌트>,  2001년 막을 올리면서 국내 뮤지컬 시장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오페라의 유령>, 그리고 2000년 연강홀에서 첫걸음을 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있다. <렌트>의 경우 브로드웨이 최고 화제작이 ‘불과’ 4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점이 당시 관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저작권 없이 여러 차례 공연을 했거나 투어 팀의 내한 공연이 있었던 <캣츠>와 <레 미제라블>에 비해 관객들의 기대치와 환상이 컸던 <오페라의 유령>의 국내 초연은 장기 공연을 통해 시장을 확대 시키면서 뮤지컬 마니아를 자처하는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남경주, 최정원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대중들도 알아보는’ 뮤지컬 스타 탄생에 기여한 작품이기도 했다. 김소현, 이혜경, 류정한, 윤영석 등 주연 배우들은 이 공연을 계기로 저마다 팬사이트가 만들어졌고, 작품의 명성과 함께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이나 대형 행사에 종종 초대되면서 높은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경우, 한국 뮤지컬 마니아들의 또 하나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충성도와 적극적인 참여의 출발이 되었다고 할 만하다. 흔히 ‘베사모’라고 줄여서 불린 ‘베르테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연강홀에서 <베르테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작은 규모의 공연에 대한 애정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자발적 창작뮤지컬 서포트 집단이었다. 팬클럽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이들은 제작사와 창작진, 배우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며 작품이 오르는 과정과 공연 기간에도 단순한 응원 차원을 넘어서는 역할을 했다. ‘베사모’의 회원들은 2003년, 200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재공연을 위해 공연 투자사 MIP를 만들어서 극단 갖가지에 3억 원의 투자금을 내고, 작품의 기획과 홍보 마케팅까지 참여했다.


이처럼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와 소비하는 관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소비자가 제작에 적극 개입하는 프로슈머 개념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두드러진 곳이 뮤지컬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앨빈 토플러를 비롯한 미래 학자들이 예견한 ‘생산적 소비자’도 짧은 시간 안에 변화를 보였다. 아날로그 시대의 프로슈머가 기업(제작자)이 만든 상품(작품)을 소비자(관객)가 평가함으로써 상품(작품)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에 비해,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들은 개발 단계부터 자신들의 욕구와 아이디어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

 

 

 

 

 

시대의 변화, 마니아의 변화

<렌트>와 <오페라의 유령>,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세 작품 모두 언제든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을 만한 매력적인 뮤지컬이지만 당시 이 공연을 사랑하는 팬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PC통신을 본거지로 둔 온라인 동호회 문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1996년 나우누리에서 소모임으로 개설되어 1년 후 동호회로 승격된 ‘코러스 라인’이 있다. 공연 감상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뮤지컬을 직접 배우고, 만들어서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적극적인 활동이 이루어졌던 ‘코러스 라인’은 초기 PC통신 동호회 문화의 바람직한 예로 여러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나우누리에는 당시에 이미 독일어권 뮤지컬을 다루는 ‘Das Musical’이 존재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뮤지컬을 글과 음반으로 배웠다고 할 만한 세대였다. 영상물은 전무하다시피 했고, 전설적인 작품이나 한창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에 대한 정보는 유학생 또는 짧게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를 경험한 배낭 여행객들을 통해 입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정보와 자료가 부족한 만큼 뮤지컬에 대한 환상과 동경은 더욱 컸다. 초고속 통신망의 빠른 성장과 함께 PC통신에서 월드와이드웹 기반의 인터넷으로 중심이 옮겨지면서 동호회들의 성격도 변했다. 2000년 프리챌에서 둥지를 틀었다가 2006년 네이버로 자리를 옮긴 ‘송앤댄스’와 다음의 ‘웰컴 투 브로드웨이’, ‘뮤지컬 매니아’, 싸이클럽 ‘오 마이 뮤지컬’은 조금씩 다른 특성을 가지고 운영되었다.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난 양상은 노래 소모임이나 뮤지컬 작품 스터디 등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활동이 차지하고 있던 비중이 시간이 지날수록 단관과 공연 후기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을 지나면서 <지킬 앤 하이드>, <헤드윅>, <노트르담 드 파리> 등 화제작들이 늘어나고 뮤지컬 커뮤니티의 규모가 커지면서 단관을 통해 할인된 가격에 좋은 좌석에서 뮤지컬을 보거나 작품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동호회 가입의 주목적인 이들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뮤지컬이 마이너 장르였던 시절 그 마니아 집단의 상당수가 세미프로급의 소수정예 고수였다면, 장르 자체가 대중화되는 시점에는 마니아들의 성향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 마디로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대형 뮤지컬 동호회뿐만 아니라 배우의 팬사이트, 개별 작품 팬카페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공연을 관람한 후 배우와 함께 뒤풀이를 하면서 작품에 대한 가벼운 대화까지 할 수 있는 관행은 작품과 관객,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한없이 가까운 한국 뮤지컬계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작품 한 편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제작사가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상황을 체크하는 뮤지컬 커뮤니티가 40여 곳에 이르렀던 시기이다.

 


2004년 네이버에 개설된 <노트르담 드 파리> 팬카페는 한 작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동호회 중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커뮤니티이다.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회원들은 비영어권 전반에 대한 자료를 공유했고, 내한 공연을 한 배우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이 커뮤니티는 고화질 공연 실황을 확보하는 게 상대적으로 쉬운 유럽 뮤지컬이라는 점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무궁무진한 문화적 배경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신흥 제작사였던 NDPK가 마니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고,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 또한 이 커뮤니티가 빠른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였다. 많은 뮤지컬 제작사들이 자발적으로 작품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웹상에 꾸준히 올리면서 입소문을 내주는 마니아들을  장기 고객으로 관리하고 싶어 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마니아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회사 사이에서 오히려 트러블이 생기기가 쉽다는 것이다. <돈 주앙>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팬서비스 차원에서 열렸던 상영회에서 제작사 대표와 관객 사이에 티켓 가격 책정을 놓고 벌어졌던 언쟁이 불매 운동으로까지 번졌던 일이나 <쓰릴 미>의 연출자가 트위터에서 마니아들을 지칭해서 모욕적인 표현을 쓴 것이 일파만파로 커졌던 일이 대표적이다. 프로슈머의 특징 중 하나인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행동력은 클레임에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자신이 해당 작품이나 제작사에 쏟은 돈과 시간과 애정만큼 대우받기를 원하는 심리 역시 어느 정도는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마니아들의 열정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양날의 검이 된다.

 

 

 

 

 

 

동호회 중심에서 SNS 중심으로

마니아들의 리뷰가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그들이 일종의 권력을 갖게 되어 작품에 지나치게 개입하려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공연 제작자나 창작자 측에서 인터넷 상에 올라온 리뷰에 대해 간섭을 하면서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대형 뮤지컬 카페에서 직간접적으로 친분 관계를 맺는 제작사나 창작자, 배우들, 그리고 열성 팬이 늘어나면서 솔직한 비평을 하는 것이 껄끄러운 분위기가 되자 뮤지컬 마니아들은 서서히 블로그와 트위터를 비롯한 SNS,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로 활동 공간을 옮겨갔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디시 문화는 엽기 열풍과 맞물려 심각하고 진지한 태도에 대한 조롱, 철저한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과격할 정도의 솔직함으로 인터넷 문화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뮤지컬 팬덤 역시 이 변화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뮤지컬을 소비하는 방식도 뮤지컬 배우기나 작품 스터디에서 팬아트, 팬픽, 물품 제작, 패러디 이미지 합성 등으로 넓어졌다.


뮤지컬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작품 수를 넘어선 지가 오래인 과포화 상황에서 뮤지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대중들을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요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타이다. 또한 한계가 분명한 시장에서 장기 공연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복관람을 하는 마니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제작사 측은 의도적으로 스타를 부각시켰다. 롯데월드예술극장을 책임졌던 1세대 뮤지컬 스타 남경주와 최정원이 그랬고, 조승우를 필두로 한 매력적인 젊은 남자배우들이 그랬고, 이제는 아이돌 스타들까지 이 흐름에 가세했다. 그로 인해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한국 팬덤 문화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팬덤에서 유입된 뮤지컬 관객들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뮤지컬계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인 ‘젊은 관객, 젊은 배우, 젊은 작품’은 4~50대 관객이 주 고객인 브로드웨이나 유럽 뮤지컬은 물론이고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과도 확연히 다른 마니아 문화를 낳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관객이 젊기 때문에 젊은 배우들이 빛날 수 있는 젊은 작품이 선호되는 것인지, 젊은 배우들이 중심에 있는 젊은 작품이 다수이기 때문에 젊은 관객층이 꾸준히 유입되어 특이한 문화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렵다. 어쨌든 이는 긴 역사를 갖지 못한 한국 뮤지컬계가 급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이며 한편으로는 독특한 개성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뮤지컬 마니아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당시 뮤지컬 관객들의 주 연령층이 20~30대였으니 단순 계산으로는 2012년인 현재 한국 뮤지컬계의 주 관객층은 20대부터 40대까지 넓어졌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관객들은 이탈하고, 대신 새로운 젊은 관객들이 유입되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현상을 바탕으로 어떤 실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가는 뮤지컬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7호 2012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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