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뮤지컬계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들이 되었지만, 그들도 미흡한 출발을 시도했던 때가 있었다.
관객보다 먼저 이들에게서 재능의 씨앗을 발견했던 선배 배우, 스태프들이 그들의 떡잎 시절을 회고해주었다.
김무열
학교 다닐 때나 성가대에 가면 꼭 눈에 띄는 애들이 있잖아요. 예뻐 보이고. 무열이가 그랬어요. ‘배우’로서의 분위기, 매력이 있었죠.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하지만 배우의 매력은 그 이미지에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을 때 가장 돋보이는 거잖아요. <쓰릴 미>를 준비하면서 ‘그’ 역으로 무열이를 캐스팅한 것은 그래서예요. ‘류정한을 보러 왔다가 너를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역시나 관객들은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프로듀서 박용호
무열이를 처음 만난 게 <그리스> 땐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에게 뮤지컬 말고 영화나 방송을 하라고 권했어요. 뮤지컬계의 큰 별이 될 거란 기대? 전혀 한 적 없어요. (웃음) 영화계의 큰 별이라면 몰라도. 얼굴이나 체격, 뛰어나지 않은 가창력을 봐도 무대보다는 스크린이 더 잘 어울리지 않나요. 그때 리처드 기어 같은 영화배우가 되라고 했는데, 지금 그 길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무열이 말고도 L배우와 C배우한테는 뮤지컬보다는 영화나 연극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 중이에요. 연출가 이지나
<그리스> 때 무열이를 보면서 노래, 연기, 춤 3박자를 고루 갖춘 배우라 생각했어요. 물론 그땐 어려서 실력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지만, 비주얼도 좋고 인간적인 매력도 넘치고 게다가 노력형의 연습 벌레라 언젠가 제 몫은 할 배우가 되겠구나 싶었죠. 음악감독 원미솔
김우형
우형이는 처음 봤을 때부터 기골이 장대한 게 장군감이었죠. 원래 성격도 완전히 남자다운데다, 노안이고 심한 무게감을 갖고 있어서 귀엽게 볼 수는 없었어요. (웃음) 오디션에서 처음 보곤 일단 <그리스>의 대니 역을 맡겨봤어요. 거기서 가능성을 확신해서 <지킬 앤 하이드>의 스파이더 역을 맡기면서, 동시에 지킬(하이드)의 커버로서 연습을 시켰죠. 우형이는 진중한 성격에 연기력이 뒷받침돼서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올라가며 대성한 케이스예요. 좀 덧붙이자면, 우형이는 남자 동료들이 심하게 좋아하는 배우예요. 함께하는 공연 팀을 배려하는 의리파로도 알려져 있죠! 음악감독 원미솔
우형이가 <지킬 앤 하이드>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키도 크고 덩치 큰 잘생긴 친구가 노래를 잘하더라고요. 신인 발굴을 하고 싶었던 찰나에 우형이가 등장해서 반가웠죠. 성격이 남자답고, 의리를 중시해요. 무대 위에서 튀려고 하지 않고, 다른 배우들과 조화롭게 호흡을 맞추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대신 죽이면서 공연한달까요. 처음 신춘수 대표님이 우형이를 지킬로 세우겠다고 했을 때 다들 만류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대표적인 지킬 중 한 명이 됐잖아요. 타고난 소리도 좋고, 외형도 멋지고, 주인공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잘 갖췄어요. 체력도 워낙 좋아서, 웬만한 배우들은 다 더블 캐스팅을 선호하는데, 이 친구는 혼자서 하곤 하잖아요. 우형이의 언더는 무대에 설 생각하지 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예요. 인간성도 일등이죠. 좋은 배우로 성공할 만하죠. 랑 기획이사 신동은
박은태
은태를 처음 본 건 강변가요제 수상 이후에 제가 작업하던 스튜디오에서였어요. 객원 보컬이라며 인사를 하더라고요. 특별히 강렬한 인상은 못 받았어요. 그리곤 2~3년 후에 <노트르담 드 파리> 오디션을 마친 후에 다시 만났죠. 은태는 정말 미련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미련해서가 아니라 영리해서였던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 장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족함을 잘 알고 걸음마를 배우는 마음가짐으로 앞만 보고 뛰었던 것 같아요. 은태는 여전히 성장 중인 배우고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건방 떨지 않고 겸손하게 자기 할 일을 우직하게 할 거란 걸 알아요. 그게 답이라는 걸 몸으로 체득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참 영리하죠. 배우 이정열
<노트르담 드 파리>를 공연하고 나서 두 번째 작품인 <햄릿>에서 은태를 만났죠. 세련된 기교 같은 건 없었지만, 은태가 입을 열면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디션에서 그렇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힘든데, 오디션 때 나를 놀라게 했던 배우예요. 단지 노래를 잘한다는 문제를 넘어서 에너지가 남달랐어요. 햄릿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레어티스 역으로 참여했어요. 당시 은태의 비주얼은 농부과였어요. 의상이 패셔너블해서 은태랑 안 어울렸죠. (웃음) 노래만큼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따로 레슨도 받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서, 시간이 더 주어지고 그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될 거라 예상했어요. 아, 은태는 승부욕도 강해요. 볼링을 치더라도 점수에 되게 민감해요. 본인이 원하는 만큼 결과가 안 나오면 괴로워하죠. 은태가 지금의 자리에 올라온 건 자기 관리와 성실함 덕이에요. 은태는 늘 최선을 다하거든요. 연출가 왕용범
윤공주
<토요일 밤의 열기> 때 공주는 제일 먼저 연습실에 도착해서 제일 늦게까지 연습하는 아이였어요. ‘리틀 최정원’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뭔가 하나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고집해서 될 때까지 연습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성격이 밝고 건강한 캔디 같은 모습이 기억나네요. 지금 9년 만에 같은 작품에 출연하게 됐는데,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때와 다름없는 것 같아 보기가 좋아요. 배우 최정원
<토요일 밤의 열기> 앙코르 공연 오디션 때 공주가 아네트 노래를 불렀어요. 초연 때도 아네트 노래가 매력적이라며 매일 물어오곤 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는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랄 정도였죠. 결국 <사랑은 비를 타고>에 캐스팅되는 바람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그때 보여줬던 노력들이 지금의 공주를 있게 한 것이 아닐까요. 배우 배해선
연습 벌레 윤공주를 보면서 뭐가 되도 되겠다 싶었어요. 처음 만났던 <그리스>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요. 배우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습관적으로 연습을 하고, 절실함이나 진지함이 부족해질 수 있잖아요. 하지만 윤공주만큼은 예외인 것 같아요.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배우예요. 음악감독 원미솔
정선아
<렌트>에서 처음 만난 선아에 대해선 인상적인 게 너무 많아요. 오디션에서 노래를 정말 잘 불렀는데, 나중에 고등학생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죠. 노래와 춤 실력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고, 고등학생이라곤 믿을 수 없었거든요. 혹시 지정곡 한 곡만 잘 부르는 게 아닌가 싶어서 심사위원들이 집에 가는 선아를 불러다가 다른 노래를 불러보게 했는데, 역시나 잘했어요. 선아는 첫 데뷔에서 주인공을 따냈는데도 얼떨떨한 신데렐라 같은 느낌보다는 남자보다 더 두둑한 배포와 배짱이 돋보였죠. 신인 배우가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 어려워할 법도 한데, 연습실에서도 굉장히 당당하고 당찼어요. 실력은 미흡해도 발전 가능성을 지닌 신인 배우도 있지만, 선아는 그때부터 이미 기존 배우들만큼 노래 잘하죠, 춤 잘 추죠, 얼굴도 몸매도 예쁘죠, 대성할 거란 건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배우였어요. 배우 이건명
선아가 <맘마미아> 초연에선 앙상블과 소피 커버를 맡았어요. 그때 선아에겐 그 자리가 왠지 안 어울렸죠. 앙상블에 있는 게 답답해 보였다고 할까요. 앙상블로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통통 튀고 빛이 났으니까요. 앙상블에게 단체로 디렉션을 주면 대부분은 고분고분 따르는데, 선아는 질문도 많고 그대로 따르지 않고, 좀 남달랐죠. 확실히 정확한 음감을 가지고 있었고, 춤도 잘 췄어요. 앙상블은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선아는 획일화되고 규칙적인 것보다는 도드라진 자기 것을 표현하는 게 잘 맞겠다 생각했어요. 화려하고 도발적이고 가창력을 뽐내는 통통 튀는 역할, 아, 한국 여자 역할 말고요. (웃음) 이후에 <아가씨와 건달들>에서는 선아가 원래 지니고 있던 매력이 아닌, 성악 발성과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정말 잘 소화해내서, 우리가 말 안 해도 잘하는 그런 역할 말고 이젠 뭘 해도 다 잘 해내는구나, 새삼 놀라웠죠. 음악감독 김문정
조정석
정석이의 데뷔작에서 함께했는데, 정석이는 <넌센스 아멘>의 리오 수녀 역을 맡았어요. 정말 예뻤어요. 데뷔작에서 곧바로 팬클럽이 생겼죠. 팬클럽 회원이 스무 명이라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웃음) 그때부터 센스가 넘치는 귀여운 스타일이었어요. 재간둥이기도 하고 성격도 좋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죠. 거절할 때도 무척 상냥하고 예쁘게 한다니까요. 음악감독 원미솔
정석이는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워낙 똑똑하고 가진 끼가 많았어요. <그리스>에 출연했는데, 귀엽게 생긴 데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췄죠. 똑똑해서 금방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흡수해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애교도 많고 붙임성도 좋아서, 주변에 적이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 아이가 똑똑하고 여우 같은데 미워할 수 없다고 하죠. (웃음) 정석이는 첫 만남에서 말 한마디만 해도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친구예요. 그게 무대에서도 통하는 거죠. 잠깐 봤는데도 나중에 크게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배우가 있잖아요, 정석이가 그랬어요. 랑 기획이사 신동은
조정은
좀 전에도 정은이한테 전화가 왔어요. ‘내가 좋은 배우야?’라고 물어보더라고요. 네가 좋은 배우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유학 가기 전에 같이 <스핏파이어 그릴>을 준비하면서 너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좋은 배우가 될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답했죠. 그게 뭐냐고 묻길래, 작품에 대한 진정성과 진지한 마음이라고 말했어요. 그때도 정은이는 머리로 계산을 하는 게 아니라 열정을 가지고 몸으로 부딪치는 타입이었어요. 사실 진짜 떡잎이었던 시절에 <미녀와 야수>를 봤을 때는 정말 싫었어요! 진짜 못한다, 니가 공주야? 그랬죠. 스스로도 인정한다고 창피하다고 하던데요. (웃음) 그 작품의 만화적인 판타지가 정은이와 썩 잘 맞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아 참, <더뮤지컬> 표지에 얼굴 동그랗고 하얗게 나온 사진을 보고도 ‘쟤 뭐야, 예쁜 척하고!’ 그랬죠. (웃음) 이건 다 정은이한테 이미 했던 이야기들이에요. 제가 그 친구를 몰랐을 때 했던 생각들이죠. 음악감독 변희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같이 작업할 때, 속 이야기를 잘 안 하고 묵묵한, 그런 인상이었어요. 나는 연극만 쭉 하다가 뮤지컬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뮤지컬 배우들은 내면보다는 보이는 화려함에 더 신경을 쓸 거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조정은은 그냥 자기를 완성하려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때 내가 배우들을 좀 혹독하게 대해서 다들 많이 울었는데, 정은이도 물론 울었지만 그때도 감정을 터뜨린다기보다는 이 앙다물고 안으로 누르는 것 같았어요. 쭉 지켜보면서 묵묵히 버티고,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갈 길만 갈 것 같다는 믿음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배우들을 대할 때보다 조정은을 대할 때는 나도 더 어렵고 진지해지는, 그런 게 있었죠. 그 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요즘도 정은이가 작품을 선택하거나 공연하는 걸 보면 역시 그때 보여줬던 성향대로 가는 것 같아요. 성급해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충실하게 잘하고 있어요. 연출가 조광화
홍광호
<첫사랑>에서 광호를 처음 봤는데, 잘했어요. 신인인데 연기에 집중력이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노래나 대사를 할 때 목소리가 좋다는 건 참 복이에요. 설득력이 있다는 거니까. 바로 다음에 <스위니 토드>의 토비어스 역을 맡겼는데 본인은 그 역에 별로 뜻이 없어서 ‘너에게 정말 어울리는 게 토비어스’라고 말했죠. 이 작품의 문을 열고 또 닫는 역이고, 하고 나면 왜 이 역을 맡겼는지 알게 될 거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같은 역의 (한)지상이도 참 잘했는데 광호는 좀 더 직관적인 연기를 했어요. 왕자님 역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멋있는 배우이기도 해요. 우리 직원들은 알지만 제가 오디션에서 칭찬을 정말 안 하는데, 광호한테는 ‘진짜 내가 본 사람 중에 너만큼 노래 잘하는 사람은 처음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죠. 더 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역들은 좀 미뤄두고서라도 그 골든 보이스를 잘 관리하고 아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듀서 박용호
<첫사랑>을 공연하기 1년 전에 광호와 함께 워크숍 작업을 했는데 어디서 이런 목소리가 나왔나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목소리가 좋은 것에 비해서 노래를 만들어내는 데는 좀 서툴렀어요. 뮤지컬 곡들은 대체로 오버 드라마틱하고 기름기가 많아서, 노래하는 사람도 감정을 극대화시켜야 할 때가 있는데, 광호는 아직 쑥스러움을 많이 탔죠. 그때는 정말로 노래에 기름기가 전혀 섞여 있지 않았고 그래서 더 신선하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을 정말로 하고 싶어 했다는 걸 알아서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의 광호는 오디션이 계속 잘 안 풀려서 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좀 힘들어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광호가 당연히 너무너무 잘될 걸 알았어요. 그런 목소리는 정말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 목소리를 뽐낼 만한 뻔뻔함과 테크닉이 아직 없었을 뿐이었어요. 작곡가 이지혜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5호 2012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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