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쯤 시간이 흐르면 변하지 않는 것보다 변한 것들이 더 많은 게 당연하겠지만, 불에 태워죽일 정도로 강렬한 증오와 저주의 대상이었다가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극단적인 사면 복권이 된 경우는 흔치 않다. 현대인들은 검은 옷을 입은 매부리코 노파가 심술 사나운 웃음소리를 남기면서 빗자루를 타고 굴뚝 위를 날아가는 이미지에 두려움이나 혐오감 대신 익살스러움이나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제 마녀는 할로윈 데이에 적합한 분장의 모델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세상을 개선하려는 이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사랑받고 있다. 또한 <위키드>에서처럼 다수로부터 소외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분연히 일어나 스스로의 힘을 내보일 당당한 소수자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지난 300년간 세상에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마녀사냥이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인 11세기부터 이미 민중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이교도들이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들은 이교도란 올바른 신을 부정하고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고 우물에 독을 풀고 식인을 하는 사악한 악마 숭배자이며 사회의 적이라고 굳게 믿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이미지들이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받기 전, 박해받던 시절의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운 악의에 찬 루머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중세 유럽에서 나타난 최초의 마녀사냥은 이단 재판의 한 갈래처럼 보였고 그 공격 대상에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자인 ‘마법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악마의 하수인으로서 교회를 배반하고 공동체에 재앙을 몰고 온 사악한 마법사로 지목 당해서 고문을 당한 끝에 거짓 자백을 하고 형장의 재로 사라진 이들 중 다수는 교회에서 탐탁치 않아 한 비주류 성향의 종교인들이었고 개인적인 원한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희생되는 이들도 많았다.
마녀사냥의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크게 갈리는데 공동체 내에 분쟁이 생길 경우에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처벌을 하는 관습이 있었던 중세사회의 특징을 감안하면 공식적인 기록만을 가지고 희생자의 수를 추론하기가 어렵다. 마녀로 몰린 이들은 돈 많은 과부나 약초의 효능을 잘 알고 민간치료법에 능숙한 여자들, 지나치게 아름답거나 추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거나,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낙인 찍혔거나, 성격이 강해서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외톨이들이었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처형당한 이들 중 70~80퍼센트가 여성이었고 그중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채 성인이 되기도 전에 화형당한 희생자 중 가장 유명한 소녀는 아마도 잔 다르크일 것이다.
이브의 후예인 여자는 나약하고 분별력이 없으며 원죄에 책임이 있다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아버지나 남편 같은 남성 보호자 없이 삶을 꾸려 나가는 여성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으며, 만약 그 여성이 부유하기까지 하다면 마녀사냥의 표적으로 최상의 조건이었다.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할 경우, 그녀의 유산은 교회에 몰수되고 그중 일부는 고발자와 재판관, 사형집행인과 고문 기술자, 고문 기구 대여업자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사실 로마제국의 영향으로 기독교 문화가 전파되기 전까지만 해도 다신교 사회에서 마녀·마법사는 여신 숭배 신앙의 사제로서 공동체에 도움을 주는 지혜로운 존재로 통했다. 하지만 일신교와 부계 중심 사회가 뿌리를 내리면서 마녀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운명을 제멋대로 바꾸는 위험한 자들로 여겨졌고, 그 힘의 근원은 악마에게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흑사병의 창궐과 십자군 원정의 실패, 종교개혁의 물결, 이슬람 세계의 공격으로 인한 이교도들과의 충돌로 인해 히스테리 상태에 이른 중세 사회는 외부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마녀사냥이 전 유럽을 휩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인 원인들이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인간이 풀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세상의 신비에 대해 해명하는 허황되지만 그럴듯한 어둡고 위험한 이야기가 얼마나 매혹적인가 하는 점이다. 당시 마녀와 마법사들이 고문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한 ‘마녀들의 집회’나 자신들이 저지른 마술에 대한 내용들을 보면 현대의 옐로 페이퍼 뺨치는 선정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마녀에 대한 중세 사람들의 통념을 알게 해주는 그 진술들을 토대로 한 그림들 또한 끔찍하고 추하지만 눈을 떼기 힘들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자극하는 오늘날의 엽기물과 같은 것이다.
마녀사냥에 명분을 실어주는 해괴한 책들로 길잡이 역할을 했던 것은 지식인 계급이었다. 상식이 있는 현대인이라면 제 아무리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해도 세상에 마녀가 있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달에 그 발자국을 남긴 지도 어언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중세와 마찬가지로 선의 주재자인 신과 악을 권장하는 사탄이 대결을 벌인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사탄과 계약을 맺은 사악한 여인이 선량한 기독교인들에게 불치병과 기근과 원인 모를 온갖 불행을 안겨주는 ‘마녀’가 되어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믿기에는 사람들이 이미 자연과학에 관한 너무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
아서 밀러가 쓴 희곡 <시련>은 나다니엘 호손이 ‘우리 역사의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라고 했던 세일럼 마녀사냥에 대한 작품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조국을 떠나온 청교도들이 철없는 소녀들의 거짓말에 놀아나 집단 광기에 사로잡혀서 무고한 이웃을 신의 이름으로 고문하고 죽인 비극이다. 이 사건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기독교인으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다가 선량한 크리스천으로서 죽는 것 외의 다른 삶을 생각할 수도, 생각해서도 안 됐던 폐쇄된 사회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련>은 단지 초기 청교도 사회의 역사적인 비극을 돌이켜보자는 뜻에서 쓰인 작품이 아니다. 냉전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매카시 광풍에 전 미국이 사로잡혔을 때 아서 밀러는 조사위원회에 끌려 나가 공산당에 협력하고 있는 문화계 인사들의 이름을 넘기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밀고자가 되기를 거부한 죄로 유죄 선고를 받고 여권까지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 그는 자신이 겪은 마녀사냥이 200년 전에 일어난 세일럼의 비극만큼이나 미국을 수치스럽게 할 일이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나다니엘 호손이 본다면 수치도 모르고 비극을 장사 수단으로 쓴다며 통탄할지도 모르지만, 세일럼은 ‘마녀’를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고, ‘마녀의 도시’를 자처하기까지 한다. 모든 것을 엔터테인먼트화 할 수 있는 미국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날 마녀의 위상이 달라진 것을 실감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주는 섬뜩한 뉘앙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 여전히 우리 삶 가까이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은 더 이상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음험한 여자가 빗자루를 타고 다니면서 사악한 마법으로 사람을 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사람들은 자기 삶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빌미잡을 수 있는 누군가에 대한 공격으로 해소하려고 한다. 세상은 바뀐 것 같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공동체를 수렁에 들어서게 하고 인간을 악의 길로 이끄는 ‘마녀’가 있다면 그 정체는 까만 고깔모자를 쓴 매부리코의 노파가 아니라 만만한 희생자를 찾아서 두리번거리는 음험하고 사악한 시선의 주인공일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5호 2012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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