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산에서 <헬렌 그리고 나>를 공연했죠.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했나요?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은 어떻게 생활할까에 대해 많이 공부했어요. 헬렌 켈러에 대한 영화도 보고, 실제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영상도 찾아 봤죠. 수화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수화에 관한 책을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고 영상도 찾아보며 독학했어요. 시각장애인은 손 모양과 움직임을 만져서 수화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더라고요. 나중에 제대로 자격증을 따서 자원 봉사도 하고 싶어요.
연습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연기할 때 다른 배우의 연기에 맞춰 리액션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보고 듣지 못하는 역할이다 보니 리액션을 할 수 없어서 힘들었어요. 또 극 중에 의자를 쓰러트리는데 장면이 있는데 쿵 소리에 자꾸 놀라게 되더라고요. 귀가 안 들리는 역할이니 놀라면 안 되는데. 그래서 귀에 솜을 막고 연습하기도 하고, 중요한 장면에서는 눈을 감고 연습하기도 했어요. 저에 대한 도전이었죠. 공연 때는 파란 렌즈를 끼고 무대에 섰어요. 헬렌 켈러가 파란 유리알 같은 눈을 가진 아이여서요. 근데 렌즈를 계속 착용하니까 눈이 뻑뻑해서 잘 안 보이더라고요. 실제로 앞이 잘 안 보이는 상태에서 연기해서 리얼했던 것 같아요.
헬렌 켈러의 실제 일화 가운데 인상 깊었던 건 뭐예요?
헬렌 켈러의 자서전을 읽다가 첫 대목부터 울었어요. 헬렌 켈러는 선천적인 장애인이 아니라 아기 때 병에 걸려 시각과 청각을 잃은 사람이에요. 한동안 앓다가 깨어나 보니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게 된 거죠.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걸 묘사한 대목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한두 살짜리 아기가 얼마나 답답하면 그랬겠어요? 그 장면이 안 잊혀요.
헬렌 켈러가 성장한 뒤의 이야기도 공연에서 다뤄지나요?
네, 아이 때부터 성장한 뒤까지. <앤ANNE>처럼 다른 배우와 나눠서 헬렌 켈러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제가 쭉 연기해요.
헬렌 켈러와 그의 선생님 앤 설리번은 어떤 관계로 그려지나요?
서로 마냥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였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둘 사이에 충돌도 많았대요. 앤 설리번은 자기가 가르친 장애아 노라가 상품화되는 모습을 지켜본 선생님이에요. 눈이 안 보이는 노라가 바느질하는 모습이 신기한 구경거리로 전시되는 모습을 지켜본 앤 설리번은 헬렌이 사회에 나가는 걸 원치 않았어요. 하지만 헬렌은 사회에 나가 차별과 맞서 싸우고 싶어 했죠. <헬렌 그리고 나>에도 이런 갈등을 다룬 ‘싸움’이란 넘버가 나와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잘 모를 텐데, 우리 작품에서는 싸우고 부딪히는 둘의 모습이 다뤄져서 좋아요.
만약 헬렌 켈러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요?
‘너는 네가 어떻게 생겼을 것 같아?’라고 묻고 싶어요. 극 중에 제가 앤 설리번의 과거를 연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앤 설리번’이라는 가사를 부르면서 무의식적으로 제 얼굴을 만지게 되더라고요. 문득 궁금해졌어요. ‘헬렌 켈러도 평소에 자기 얼굴을 만져봤겠지? 그럼 본인이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했을까?’ 실제 성격도 궁금해요. 장애와 차별을 극복하고 명성을 떨쳤을 정도면 아마 되게 독하고 싸가지 없었을 것 같거든요. (웃음) 저는 그렇게 연기했는데, 실제로 어땠을지 궁금해요. 만나보고 싶어요.
매거진 PS는 지난 호에 지면의 한계 혹은 여러 여건 등으로 싣지 못했거나 아쉬웠던 혹은 더 담고 싶었던 뒷이야기를 담는 섹션입니다. 관련 기사 원문은 <더뮤지컬> 12월호 '[FACE| <앤 ANNE> 송영미, 모두가 사랑에 빠지는 마법 ]'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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