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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09년 춘투(春鬪)를 앞둔 창작뮤지컬

글 | 조용신 2009-02-17 2,801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어느 해보다도 짙게 드리웠던 2008년이 지나고 올 초 온라인 예매사인 인터파크가 발표한 2008년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뮤지컬 매출은 전년 대비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4분기까지 고전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이러한 결과는 불행중 다행으로 보인다. 이는 지방 공연의 매출이 집계되기 시작했고, 기업 단체 관람이 크게 줄지 않았으며, 최성수기인 연말 시즌에 <미녀는 괴로워>, <지킬 앤 하이드>, <캣츠> 등의 주요 대작들이 막판 선전을 보여준 데다가 <맘마미아> 대구 공연 등 지방 공연들도 선전한 결과로 추산된다. 일단 근래 들어 최초로 뮤지컬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하지만 보통 레파토리를 선정하는 싯점에서부터 실제 프러덕션 준비가 이루어지는 기간이 대극장인 경우 2~3년, 중.소극장의 경우도 1~1.5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것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한파가 본격적으로 우리 공연계에 불어 닥치는 것은 빠르면 올 상반기부터 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업계 종사자들의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올해 상반기는 2001년 이후 꾸준하게 관객이 증가해온 뮤지컬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백개가 넘는 소극장이 몰려있는 대학로에서는 요즘 대관을 하겠다는 제작사가 없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는 극장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만약 이러한 분위기가 탈(脫)대학로에 위치한 뮤지컬 주요 제작사에게까지 확산된다면 업계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새로운 레퍼토리 추진을 포기하고 신작보다는 재공연을, 흥행에 대한 안전 장치가 부족한 창작 뮤지컬보다는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라이선스 뮤지컬을 가져오는 등의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국 뮤지컬의 미래를 책임질 창작 뮤지컬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올 상반기에 무대에 선보일 작품들 대부분이 해외의 작품 개발 사례처럼 정식 공연 시작 전 수차례 시연을 통해 작품을 가다듬고 손본 터라 초연임에도 완성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질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봄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며 춘투(春鬪)로 들어설 주요 창작 뮤지컬들을 짚어보았다.

 

무비컬의 질주는 계속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화가 뮤지컬로 선보이는 일명 ‘무비컬’이 숫적으로도 많이 포진되어 있다. 이미 연말 연초를 아우르며 흥행에 성공한 <미녀는 괴로워>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김아중·주진모 주연의 영화로 발표되어 5백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 충무아트홀 대극장을 연일 관람객으로 가득 메웠다.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뮤지컬 배우로 완전히 자리 잡은 최성희(바다)의 활약이 돋보이며 연말 최고의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흥행이 불투명한 쇼비지니스의 속성상 가장 안전한 장치로 꼽히는 원작 영화의 선택은 이를 계기로 <싱글즈>, <미녀는 괴로워>를 기점으로 더욱 가속을 보일 전망이다. 코메디 영화로 역대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경신한 <과속 스캔들>이 벌써부터 가수 윤하와 이현우가 주인공으로 거론되며 기획 단계부터 뮤지컬 제작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서이다.

지난해 제2회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서 워크숍 공연 형태로 소개되었던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 역시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원작으로 한 ‘로맨틱 호러 뮤지컬’을 표방하는 개성 있는 작품이다.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남자 대우가 엽기 살인녀 미나를 만나면서 겪는 해프닝을 그린 이 작품은 그동안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오랜 개발 기간을 거쳤고, 오는 3월6일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에서 개막한다.

한때 가수왕이었지만 지금은 몰락한 왕년의 스타 가수 최곤과 충실한 매니저의 이야기를 다룬 안성기·박중훈 주연의 영화를 각색한 <라디오 스타>의 재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뮤지컬 배우 김도현·서범석과 연예인 출신인 김원준·정준하가 다양한 조합을 이루며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2월에는 수원과 마산에서 먼저 공연을 갖고, 3월3일부터 4월5일까지는 충무아트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또 다른 기대작으로는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 <주유소 습격 사건>(3월12일~5월24일, 삼성동 백암아트홀)이 있다. 이 작품은 개발 단계에서 공연계·영화계·대중음악계의 베테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은다. <김종욱 찾기>, <쓰릴 미>의 연출가인 김달중,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 <신라의 달밤>을 집필한 박정우 작가, 대중가요 작곡가 손무현이 만난 것이다. 또한, 제작사인 드림캡처와 서울예술대학은 지난해 산학협동 과정의 일환으로 학생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거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오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에 오르면서 최고의 창작 뮤지컬로 선정된 <내 마음의 풍금>도 오는 4월 호암아트홀에서 재공연을 갖는다.

 

가장 바쁜 사람은 이순신?

 

지난 1월 23일 대학로 해피시어터(구 바탕골소극장)에서 <영웅을 기다리며>가 먼저 출발 테이프를 끊었다. 올 상반기에는 공교롭게도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삼은 두 개의 창작 뮤지컬이 선보이는데 먼저 공개된 <영웅을 기다리며>(작.연출 이현규, 작곡 장소영)는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없는 단 3일 동안 이순신 장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발칙한 상상에서 시작하며 코믹 사극 뮤지컬을 표방한다. 당시 백의종군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이 설상가상으로 왜군 무사 사스케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인간적인 모습과 현 시국에 대한 풍자를 섞었다. 2005년 이주용 원작의 연극 <난중일기에는 없다>를 뮤지컬화한 이 작품은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영웅으로서의 이미지를 탈색하고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오락 상품으로 재탄생시켰으며 역사적 위인에 대한 풍자를 통해 현 시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등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즐긴다. 올 상반기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캐릭터로 기록될 이순신은 고증에 충실한 사극 뮤지컬 『이순신』(4월17일~5월3일,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도 등장한다. <화성에서 꿈꾸다> 이후 콤비로 활동중인 이윤택 연출, 강상구 작곡의 후속작인 <이순신>은 이미 2008년 8월 경남 통영과 동국대 만해광장에서 무료 시연 공연을 거쳤고 서울 공연 이후 2010년 해외진출을 목표로 3년에 걸쳐 제작될 계획을 가지고 있다. 1단계로 <이순신-임진왜란> 편이 올해 개막되고 이후 2단계 <이순신-정유재란> 편으로 나누어 공연된다. 통영과 동국대 만해광장에서 열린 시연회 이후 작품이 얼마나 보완되어 서울 개막을 성공적으로 이뤄낼지도 관심사다.

한편 핀란드 소설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기발한 자살 여행>이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창작 뮤지컬로 각색되어 공연된다(3월17일~4월19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자살을 시도하던 열두 명의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의기투합해 함께 백두산으로 집단 자살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랙코미디로 핀란드 배경의 원작 상황을 2015년의 통일된 한국으로 옮겼고, 앙상블을 포함해 총 19명이 출연하는 중극장 작품이다.

 

지난 한 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던 스타 마케팅, 무비컬, 추억을 파는 주크박스 뮤지컬 등도 여전히 강세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스타 마케팅은 영화, TV, 음반 등 전통적인 연예계의 침체로 인해 일부 스타가 공연계로 꾸준히 유입되고 있으며 동시에 뮤지컬에 대한 연예계의 인식이 과거에 비해 달라짐으로써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무비컬 역시 현재처럼 대중문화의 스토리텔링을 영화가 주도하고 있는 한 일반적인 경향이 될 수밖에 없다. 주크박스+무비컬+노스탤지어라는 현재 우리 뮤지컬계의 세 가지 흥행 코드를 모두 가지고 2008년 최대의 성공을 거둔 작품이 바로 <진짜진짜 좋아해>이다. 이 작품의 예상외의 성공 이후 특히 노스탤지어에 기댄 비슷한 뮤지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양적인 팽창만큼 질적인 발전이 병행되지 못할 경우 90년대 중후반 한때 반짝 인기를 얻었다가 쇠퇴한 악극의 운명을 걸을 수도 있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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