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빈센트 리버>가 지난 7월 26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빈센트 리버>는 동성애 혐오 범죄로 살해당한 ‘빈센트’의 어머니 ‘아니타’와 그의 주위를 맴돌며 시신의 최초 목격자라고 말하는 17세 소년 ‘데이비’가 등장하는 2인극이다. 죽음 후 아들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아니타’는 ‘데이비’와의 대화를 통해 ‘빈센트’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빈센트 리버>는 영화·문학·그림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영국 작가 ‘필립 리들리’의 희곡으로, 지난 2000년 영국 햄프스테드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웨스트엔드, 오프브로드웨이, 호주, 이스라엘 등에서 공연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1년 4월 초연됐고, 올해 재연으로 돌아왔다.
이날 간담회에는 ‘아니타’ 역을 맡은 우미화, 정재은, 남기애 배우, ‘데이비’ 역을 맡은 이주승, 김현진, 강승호 배우, 신유청 연출가가 참석했다.
아래 내용은 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작품을 준비하며 신경 쓴 부분은?
신유청 연출가(이하 신유청): <빈센트 리버>는 동성애 혐오 범죄로 죽음을 맞이한 빈센트를 통해 자신의 혐오감을 발견한 아니타의 깨달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 사회에 성 소수자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상처입고 고통스러워 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반응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작업을 했다.
원작은 작가가 본인이 나고 자란 영국 동부의 지역적 배경이 자세히 다뤄진다. 한국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이런 부분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
신유청: 작가가 왜 이렇게 자세하게 지명이나, 도시들의 분위기를 묘사했는지가 중요하다. 우선 상상을 했다. 이 작품이 대학로에서 일어난 일이고, 동대문, 낙산공원, 성균관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한국 사람 입장에서 이게 비단 이야기가 아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영국에서 거주하면서 작업하는 것과 느낌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 아쉽긴 하다. 그러나 이 일들이 내가 언젠가 만날 수 있는 일이고, 빈센트의 죽음과 같은 사건에서 과연 나는 어떤 위치일까 하는 고민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무대나 동선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가?
신유청: 나는 무대 지시문을 충실하게 따르는 편이다. 작가가 단어나 문장을 선택해서 편지를 썼다고 생각하며 대본의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덕지덕지 벽지가 찢겨 속이 보이고'라는 지문을 보고 이 공간이 아니타가 머물기에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지문을 충실히 따르려고 한다. 또한 (아니타와 데이비가) 서로를 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에서 마음이 열리고 의심이 풀어지는, 편견이라는 장벽이 낮춰지고 금가는 부분을 동선적으로 주의하며 짜봤다.
재연을 하면서 보완한 점이 있다면?
신유청: 처음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임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했을 때 무료해지고 놓치는 게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모일 때 다들 얼마나 우리가 이 작품에 대해 모르고 있는지, 가장 난해한 질문을 해가며 우리 모두 무지하다는 상태를 만들어놓고 차근차근 접근했다. 그러다 보니 데이비가 아니타 주변을 맴돈 마음, 아니타가 얻고자 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없을 정도였다. 완성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집중했다.
재연에 다시 참여한 소감?
우미화: 재연은 항상 초연과 다른 것들을 찾게 된다. 이 작품에서 또 다른 걸 찾을 수 있지 않을지, 거기에 집중했다. 작년 공연을 통해 아니타의 슬픔과 고통이 자리잡힌 상태에서, 이번엔 (아니타가)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맺었는지 관계를 깊이 들여다 본 것 같다.
이주승: 저 역시 작년 초연 때 못 찾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걸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년과 다른 극장에서 하는 것도 궁금했다. 여러가지로 <빈센트 리버>의 향기가 그리웠다.
강승호: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작년에 마지막 공연을 하고도 지인들에게 이 공연을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무대 위에서 두 인물이 끌어가는 두 시간 동안 관객의 에너지도 좋고, 무대 위에서 나도 너무 행복하다. 놀러 오는 듯한 느낌으로 행복을 느끼며 하고있다.
데이비의 정체와 관련해서 연기할 때 신경 쓴 부분은?
이주승: 작년 공연했을 때는 관객분들에게 광범위한 의심을 하게끔 연기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왜 데이비가 숨기는지에 중점이 있어서 이번 공연에서는 대놓고 속보이게 숨겼다.
김현진: 데이비의 성 정체성을 숨기는 것은 드라마에 있어 대단히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겉으로 보이는 숨김이고, 데이비가 다른 걸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처음엔 데이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돼 마지막엔 인간 존재의 질문으로 나아간다. 철저히 숨기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관객 분들도 질문을 따라가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강승호: 저 역시 숨기는 데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17살 아이가 아주 철저히 숨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제3자가 보기엔 누가 봐도 티나는 거짓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타를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정재은: 희곡에 나와있는 느낌은 아들을 잃은 엄마의 슬픔, 아들이 동성애자였다는 충격처럼 기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었다. 그런 정도로 이 작품을 풀어낸다면 관객에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얼마나 있을까에 대해 연출과 고민을 많이 했다. 단순한 슬픔, 그리움이 아니라 우리도, 관객도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이기적인 마음에 대해 깨닫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타라는 존재가 굉장히 편견을 많이 가진 존재로 부각될 수 있도록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실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신유청: 모든 인간은 편견을 가지고 있고 죄에 대해 부끄러움도 지니고 있다. 흔히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죄를 숨길 수 밖에 없고, 편견은 더 두터워지기만 한다. 작품 제목이 <빈센트 리버>다. 우리가 <햄릿>을 볼 때 ‘햄릿’의 일부를 보지만 전부를 알아야 좋은 <햄릿>인 것처럼, 이 작품을 보고 ‘빈센트 리버’가 어떻게 살았는지 전해주고 싶었다. 빈센트가 보여준 조건 없는 사랑이 데이비의 마음을 울렸고, 아니타도 아들이 준 사랑 때문에 그 시간을 견뎌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결국 편견과 자신의 죄에 대한 부끄러움은 누군가의 사랑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거다. 이 작품이 철학, 인문학, 종교학적 화두 안에 작은 디테일까지 다 인물들의 이야기에 딱 맞게 떨어지는 걸 보며 동시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해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남기애: 이 작품은 동성애 혐오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빈센트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가 누구를 사랑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이 중요하다. 아들의 사랑을 인정하지 못했던 엄마의 편견이 마지막에 부서져 나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상에서 혐오를 갖는다는 건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건 그 대상을 품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김현진: 보통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데 이 작품에서 ‘빈센트 리버’는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공연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무대에 있는 데이비, 아니타를 통해 무엇을 보여야 하는가. 궁극적으로는 '빈센트'다. 우리가 인물을 보이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하는지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가 (제목으로) 알려준 것이 아닐까 싶다. 상황이나 사물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힘을 얻는 시작이 불편함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집중해서 불편함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사회로서의 변화를 위한 작은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