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온라인에서는 조용신(『뮤지컬 이야기』 저자)의 칼럼 ‘스테이지 플롭’(Stage Flops)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이 칼럼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를 비롯해 전세계 뮤지컬 업계에서 역사상 가장 큰 화제를 불러온 대형 실패작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펼쳐놓게 됩니다. 실패란 단지 성공을 향해 가던 흔적이기에 앞으로 이곳에 소개될 작품들은 비록 당대에서는 실패 했을지라도 미래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성공의 길을 밝혀주는 등대로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2003년 6월 둘째주 일요일 저녁 토니상 시상식, 첫 장면은 타임스퀘어 현장 생중계로 피아노 앞에 앉은 한 중년 남자를 비춘다. 그가 부르는 곡은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 그렇다. 바로 빌리 조엘이다. 그런데 여기가 그래미상도 아니고 토니상 시상식 오프닝에 웬 빌리 조엘? 그 의문은 다음 장면에서 바로 풀린다. 한 소절을 멋지게 부른 빌리 조엘이 노래를 멈추고 카메라를 향해 스튜디오로 다음 순서를 넘긴다. 이제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는 <무빙 아웃>의 댄서들로 정식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무빙 아웃(Movin` Out)>(2003)은 현대 무용가로 잘 알려진 트와일라 사프(Twyla Tharp)가 안무한 댄스 공연과 미국의 국민가수 빌리 조엘의 24곡의 힛트곡을 노래하는 밴드 콘서트가 한 무대에 병치된 독특한 뮤지컬이다. 내용은 베트남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전역한 친구들의 전후 후유증을 이야기하는 반전의 메시지를 담았지만, 무대 위의 댄서들은 전혀 대사를 말하지 않고 오로지 춤만 춘다. 밴드는 빌리 조엘의 오리지널 가사를 노래하고, 줄거리는 요약본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배부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안무와 연출을 맡은 트와일라 사프는 이 자리에서 토니상 안무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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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태어난 트와일라 사프는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무용가 겸 안무가로 1960년대 클래식 발레에 걷기, 스포츠 동작 등을 결합한 위트 넘치는 안무로 명성을 얻었다.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밀로스 포먼 감독이 영화로 각색한 <헤어>(1979)와 동명의 연극을 같은 감독이 각색한 <아마데우스>(1984)에서 안무를 맡았고, 테일러 해크포드 감독의 영화 <백야>(1985)에서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공동 안무를 맡았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무대 뮤지컬 버전 <싱잉 인더 레인>(1985)에 이어 <무빙 아웃>이 두 번째 안무였다.
하지만 영화에서 정석에 충실하던 트와일라 사프는 브로드웨이에서 그 참신함이 다소 무디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무빙 아웃>이 브로드웨이 공연전에 가진 시카고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엄청난 악평을 들었는데, 그 이유는 빌리 조엘의 노래를 부르는 밴드가 등장해 극을 이끌어 가는 만큼 지극히 대중적인 쇼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무가 지나치게 모던하다는 점으로 모아졌다. 제작진에서는 부랴부랴 쇼닥터를 통해 새로운 콘셉트를 수혈받았고 결국 트와일라 사프는 자신의 ‘모던함’을 포기하고 신파적인 스토리에 걸맞게 기교가 돋보이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무를 도입했다. 그것은 당사자에게는 틀림없이 굴욕이었으리라.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토니상 안무상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다만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얼굴을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는데, 마치 자신이 원래 추구했던 콘셉트가 좌절된 것에 대한 서운한 감정으로 읽힐 수도 있었던 대목이었다. 만약 그녀가 여기서 도전을 마쳤다면 현대무용에 이어 브로드웨이까지 석권한 불세출의 여자 안무가로 영원히 남을 뻔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엄청난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무빙 아웃>의 영광이 있은지 3년후인 2006년 가을, 그녀가 이번에는 밥 딜런의 음악을 가지고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변화의 시대(The Times They Are A-Changin’)>를 가지고 브로드웨이 공연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공연 개막(10.26일)에 앞서 공개된 프리뷰 과정에서부터 엄청난 잡음이 흘러나왔다.
샌디애고 트라이아웃 공연의 젠 코엘라(왼쪽) |
마찬가지로 뉴욕 공연의 여주인공으로 내정되었다가 막판에 탈락한 카렌 린 마뉴엘 역시 정말 부상 때문이었을까? 이 점에 대해서 카렌은 끝까지 함구했지만, 업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는 그녀가 ‘댄서로서의 섹시함은 갖추었지만 밥 딜런의 음악을 소화하기에는 음색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작품이 <무빙 아웃>처럼 빌리 조엘을 꼭 빼닮은 가수가 노래를 전담하고 댄서들은 아래에서 춤만 담당하는 ‘브로드웨이 발레’ 스타일이었다면 몰라도, 여주인공이 노래와 연기, 춤을 모두 해내야하는 일반적인 북 뮤지컬이라는게 문제였다. 밥 딜런은 그 특유의 읖조리는 음유시인같은 창법이 매력이다. 하지만 카렌 린 마뉴엘은 소위 ‘록커’스타일이었다. 실제로 전문가들이 추천한 그녀의 배역은 <위키드>의 녹색 마녀였다.
게다가 프리뷰 기간 중에 매일 조금씩 안무가 바뀌었다. (물론 프리뷰 기간은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그렇게 바뀌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안무가 출신인 트와일라 사프에게 춤은 드라마를 전달하는 직접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매일 바뀐다는 의미는 스토리가 여전히 명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전쟁 시기에 정신장애를 겪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서커스 단장이 운영하는 삼류 유랑 서커스단에 관한 우화같은 휴먼 스토리다. 그런데 이 부자가 각각 같은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엽기 상황도 발생하는데, 홍보 담당자 조차도 이 작품의 스토리를 제대로 요약하지 못해서 보도자료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드라마가 총체적인 난국임에도 트와일라 사프가 작품을 계속 바꾸다보니 대본 작가를 리허설에 오지 말아달라고 했는가 하면, 배우들조차도 내용 파악을 힘들어했다. 당시 리허설을 관람한 뉴욕 포스트지 기자는 배우 중 한명과 트와일라 사프간의 대화를 탐방 기사에 한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는 배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트와일라 사프에게 묻는 상황의 대사를 옮겼다.
밥 딜런 |
배우들 : “…………………………….”
트와일라 : “Come on, people! It’s Melville. Melville!”
배우들 : “…………#%@#& ……….”
(멜빌은 모비 딕의 작가인 허먼 멜빌, 그런데 서커스단과 멜빌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게다가 밥 딜런의 원곡이 브로드웨이 음악 스타일에 맞게 편곡되면서 원곡을 유추하기 힘든 정체불명의 스타일로 바뀌었다가 주변의 불만이 커지자 막판에 트와일라가 다시 포크송으로 바꾸도록 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 이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 뿐이었는데, 한명은 트와일라 사프의 오랜 친구이자 연기 감독인 랠리 모스(힐러리 스왕크, 헬렌 헌트, 제이슨 알렉산더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또 한명은 바로 밥 딜런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이미 연기 감독의 손을 벗어났고 밥 딜런은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단 한번 관람 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뉴욕 공연을 관람하지 않았다.
결국 뉴욕타임즈 수석비평가 벤 브렌틀리는 오프닝을 관람하고 ‘나쁜 쇼가 위대한 작곡가를 만났을 때’ 라는 제목의 브로드웨이 리얼리티 시트콤이라는 혹평을 남겼고, 이 작품은 불과 28회만에 막을 내렸으며, 거의 제작비 전액에 해당하는 100억원의 사상 최악의 손실을 기록했다. 프로듀서들은 <무빙 아웃>도 프리뷰 때까지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개막 후 호평을 받았던 전례를 들어 흥행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족.
이 작품의 트라이아웃에 여주인공을 맡았다가 정작 뉴욕 공연에서는 탈락한 젠 크롤라는 앞으로 이 칼럼에 몇 번 더 등장할 것 같다. 2003년 최악의 작품이었던 <어반 카우보이(Urban Cowboy)>의 여주인공이었던데다가, 이 작품의 탈락 이후 같은 시기에 개막한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에 캐스팅 되었지만 그 역시 참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밥 딜런은 196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해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뮤지컬 음악이 대중음악으로서의 왕관을 락음악에 넘겨주었던 그 당시 락계를 이끌던 장본인 중의 한사람 인데, 실제로 뮤지컬 제작 과정에서 교감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제작 과정이 총체적인 난국이고 공연도 겨우 올라갔는데도 객석 반응이 뜨거운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그러면 안된다. 그런데 그 원칙이 우리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단지 일부 요소의 선전으로 인해 매표 상황이 좋다고 걸작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인가? 곧 열리는 모 뮤지컬 시상식의 후보 면면을 보고 잠시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