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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류정한, 배우가 프로듀서가 된다는 것은(제작발표회)

글 | 안시은 기자 | 사진 | 안시은 기자 2017-05-17 3,358
<시라노>가 지난 15일, 서울 상암 CJ E&M센터에서 언론과 첫 만남을 가졌다. <시라노>는 데뷔 20주년을 맞은 배우 류정한의 프로듀서 데뷔작으로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시라노>는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쓴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이 원작으로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변용되어 왔다. 국내에서 초연할 이 뮤지컬은 <지킬 앤 하이드>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작가 레슬리 브리커스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손잡고 2009년 일본극단 토호에서 첫 선을 보였다. 



류정한이 시라노와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킬 앤 하이드>, <드라큘라>, <카르멘>, <몬테크리스토>, <마타하리> 등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많은 작품을 하며 그와 친분을 쌓았다. 그러던 중 <시라노>에 대해 듣게 되었고, 프랭크 와일드혼은 언젠가 한국에서 공연하게 되면 시라노 역을 맡아주길 청했다. 

대본을 받아 읽고 음악을 들어본 류정한은 ‘‘시라노’ 같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란 기대와 흥분으로 꼭 해야겠다 결심했지만 한국 공연 계획은 전무한 상태였다. “내가 제작할게. 나 주면 안 돼?” 라고 던진 말 한 마디는 그를 프로듀서의 길로 이끌었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콘서트 등 많은 제의가 있던 상태에서 20주년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만난 작품이 <시라노>였다. 작품을 온전히 알리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도 프로듀서로 나서게 했다. 



첫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배우만 할 때와 달리 돈 문제라든지 비즈니스도 잘 풀어나가야 했다. 자신만만하게 뛰어들었지만 많은 부탁과 거절을 겪어야 했다. 

이때 힘을 준 사람이 최근 결혼한 동반자(배우 황인영)였다. “연애하고 있을 때였어요. 처음에 힘들었을 때 ‘오빠 그냥 해. 남자가 한 번 망해도 봐야지. 망하면 내가 돈 벌게’ 하더라고요. 저한테 힘을 많이 줬어요”

그 과정에서 만나 고민과 불안을 날려준 새 파트너가 CJ E&M이다. <시라노> 제작 소식이 처음 전해질 때만 해도 류정한 단독 제작이었다. 그는 이를 두고 “철없이 했다”고 표현했다. 상당수의 투자자들은 작품에 대한 애정보다 결과만을 강조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고 파트너를 찾는 일에 나섰다. 

류정한은 CJ E&M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깨어지는 데는 회의 두 번이면 충분했다. “많은 회의를 하면서 작품을 100% 이해하고 왜 공연되어야 하는지 공감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게 됐어요. CJ는 많은 경험과 툴이 있고 완벽하게 해낸 공연들을 봐왔어요. 혹시라도 제가 또 제작을 하게 된다면 또 한 번 좋은 파트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프로듀서에 적응하며 느낀 점도 많았다. 힘든 점으로 꼽은 것은 동료 배우를 평가한다는 것과 부탁받던 입장에서 부탁하는 입장이 된 것이었다. <시라노> 오디션에 온 배우들 반 이상이 아는 얼굴들이었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싶어 그럴 땐 채점에서 빠졌다. 여러모로 난처함을 경험한 그는 다음부터 오디션장에 나타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부탁하는 입장이 되면서 “그동안 제작자들한테 얼마나 못 되게 굴었는지 (싶었다), ‘정말 착해져야겠다’”고 느꼈다면서 자기반성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힘든데도 왜 프로듀서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프로듀서는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큰 욕을 먹는다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프로듀서해서 돈벌었다는 사람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왜 할까 했어요. 배우는 공연을 하면서 자기 만족감을 많이 얻잖아요. 프로듀서는 줄타기를 하면서 잘 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안 되면 좌절감을 느끼는데 이 입장이 되어보니 우리나라 프로듀서들이 불쌍하지만 왜 이 힘든 일을 계속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시라노> 초연은 류정한뿐 아니라 홍광호, 김동완, 최현주, 린아, 임병근, 서경수, 이창용, 주종혁 등 출연진 면면이 화려하다. 류정한은 배우 개런티는 제작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솔직히 말했다.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은 분들이 아실 거예요. 제가 가격을 낮춰달라고 정말 많이 부탁도 했지만 (배우들이) 작품에 먼저 매료된 것 같아요. 개런티는 두 번째 문제였던 것 같고요. 유례없이 좋은 가격에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시라노>의 성공 여부는 제작을 알렸던 <데블스 애드버킷>에도 영향을 줄 예정이다. “ ‘배우나 하지. 왜 프로듀서를 해서 작품을 저렇게 만들었지’란 말을 들으면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았어요. 작년부터 모든 것을 <시라노>에 맞췄어요.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제겐 중요해요. <데블스 애드버킷>은 <시라노>가 좋은 평가를 받고 온전히 잘 알리면 그 다음부터 하자고 팀에 말했습니다.”

상견례 이후로는 연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대사부터 음악까지 소화해야할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다 프로듀서 역할이 연기할 때 감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도 있었다. 구스타보 자작 연출은 “(류정한은 연습이 끝나는) 오후 6시 이후에만 프로듀서가 될 수 있다”며 지금은 배우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년간 출연한 작품 중 정말 사랑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맨 오브 라만차>라고 말하고 싶지만 <시라노>는 더 사랑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며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단지 담백하게 얘기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는 뜻을 꺼냈다. 

“예전엔 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했는데 40대가 되면서 주위도 둘러보게 됐어요.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작품을 통해서예요. 저희 작품엔 악역이 없어요. 진짜 용기와 사랑, 정의와 희생까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시라노>를 통해 힐링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류정한이 배우 출신 프로듀서라는 흔치 않은 도전에 나선 <시라노>는 7월 7일부터 10월 8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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