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아리랑>이 뮤지컬로 가는 길(기자간담회)
글 | 안시은 | 사진 | 안시은 2015-06-10 6,011ⓒ신시컴퍼니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 그리고 신시컴퍼니가 <댄싱 섀도우> 8년 만에 제작에 나선 대형 창작 뮤지컬이란 점 만으로도 뮤지컬 <아리랑>은 많은 궁금증을 불러모았다. 그런 <아리랑>이 연습 4주차에 오는 7월 개막을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소통의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6월 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많은 취재진이 자리했다. 이 자리에는 원작자인 조정래 작가를 비롯해 박명성 프로듀서, 김성녀, 안재욱, 서범석, 윤공주, 임혜영, 김우형, 카이, 이소연, 이창희, 김병희 등 주요 배우들이 참석했다.
<아리랑>이어야 하는 이유
조정래 작가는 “역사는 지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라 칭하며, 5천년 역사를 갖고 있는 한반도가 주변 국가인 중국, 일본 등에 의해 1천 번이 넘는 외침을 겪고 나라까지 잃어야 했던 치욕과 저항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과거를 기억하고 새 삶의 방향타로 설정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조정래 작가는 광복 70주년인 이 시점에 <아리랑>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망각의 딱쟁이를 뜯어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는 일”인 동시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 땅을 대표하는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주길 기대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신시컴퍼니가 <아리랑>을 뮤지컬로 만든다고 했을 때 2007년 <댄싱 섀도우>의 실패를 곱씹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리랑>은 철저히 준비에 나섰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10년에 한 번은 사고를 쳐야 ‘신시’고 ‘박명성’이 아닌가 생각했다”며 <아이다>를 무대에 올릴 당시 누비아 백성들이 핍박받고 조국을 잃은 슬픔의 노래를 통해 민족의 아리아인 <아리랑>을 올리기로 결심하다고 설명했다.
조정래 작가를 찾아가 흔쾌히 허락받은 뒤 그가 한 일은 팀을 꾸리는 것이었다. 감골댁 역을 맡은 김성녀는 “쫄딱 망한 배(<댄싱 섀도우>)에 같이 탔는데 다시 배(<아리랑>)에 태워줘서 함께 하게 되었다”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시카고>를 준비했다는 박명성 프로듀서의 위기 의식이 담긴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시카고>하나로도 안돼서 이어 <맘마미아!>도 한다며 화답한 박 프로듀서는 “박명성 하는 일이면 만사 제쳐놓고 같이 한다”며 선뜻 참여해준 배우 김성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송수익 역을 맡은 안재욱은 2000년 <렌트> 초연 때 아쉽게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을 15년 만에 풀게 되었고, 작곡가 김대성은 연극 <김홍도>를 보고 <아리랑>에 적임자라는 판단이 들어서 함께 하게 되었다. 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은 자기 나름대로의 질펀한 무대 언어를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작가 겸 연출가라 극찬하며 존경하고 아끼는 후배라고 소개했다.
<아리랑>이 뮤지컬로 가는 길
고선웅 연출은 “<아리랑>을 누가 이 땅에서 해야한다면 그 영광을 제가 차지하고 싶었다”는 말로 작품을 하고 싶었던 열망을 보여줬다. “오지다”라는 전라도 방언 한 마디로 작품을 하게 된 감정을 표현했는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하고 봐도 좋고 어쨌든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성 작곡가는 작년 8월 처음 제안받고 처음 한 일이 지리산에 간 것이었다며, 지리산 정기를 열심히 받아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원작자인 조정래 작가 옆에서 기자간담회 내내 어쩔 줄 몰라하던 고선웅 연출은 “솔직히 말하면 조정래 선생님 옆에 있으니 지푸라기 같다”는 표현으로 작품의 대단함에 존재감이 없어졌다고 고백했다.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는 그가 깨달은 것은 이야기를 통찰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고. 그래서 조정래 작가의 마음을 읽으려 하는 노력했다고.
12권 분량의 방대한 대하 소설을 2시간 40분이란 시간에 압축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그래서 택한 방식이 감골댁(김성녀 분)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압축하고 재편한 것이다. 고선웅 연출은 작품의 원작이 워낙 방대해 한 장(章)이 뮤지컬 한 편이 될 만큼 미장센이 멋지고 인물들의 이야기가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느낌이었다고 <아리랑>을 접한 소감을 말했다. “40년 가까운 세월의 이야기를 2시간 40분에 담아낸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인자 속에 ‘아리랑’이 있어서 무대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의 방향은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로 잡았다. 애통하지만 카타르시스가 있는 <아리랑>이 될 것이라고 고선웅 연출은 귀띔했다. 민족의 가장 아픈 시대를 그리고 있는 만큼 슬플 수밖에 없겠지만 인위적인 눈물은 경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김대성 작곡가가 선보일 음악의 중심은 제목과 같은 ‘아리랑’이다.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신 아리랑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적 어법을 수용했다. 하루 3시간 정도 자면서 일곱 달 걸려 편곡까지 완성했다. <아리랑>의 음악에는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등 서양 악기에 해금과 북을 덧입혀 만들어진다. “전자 음향을 거부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어쿠스틱한 실제 악기 연주를 중심으로 20인조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과감하게 편성을 시도해봤습니다.”
뮤지컬 <아리랑>이 힘을 주는 것은 무대다. 30장면이 넘는 장면 전환이 이뤄진다. “무대=영상”이란 개념으로 반투명성이 강점인 2.5mm 간격의 무빙 LEC 스크린을 사용하는 동시에 무대 셋업 기간 3주일에 프리뷰 기간 1주일을 투자해 완성도를 높인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한국 뮤지컬 미래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창작 뮤지컬에서 볼 수 없었던 최첨단 시스템의 무대 장치를 선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표했다. 또한 영화계에서 톱의상디자이너로 꼽히는 조상경 의상디자이너가 첫 대형 뮤지컬 작업에 도전에 나선다.
ⓒ신시컴퍼니
<아리랑>의 심장이 될 배우들
박명성 프로듀서는 오디션 없이 배우들을 선발했다며 43명의 배우 모두 <아리랑>을 하고 싶은 배우들로 꾸렸다고 말했다. 그래선지 팀워크와 앙상블이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 믿었다. 배우들 모두 단숨에 출연 결정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아리랑>이 주는 울림과 먹먹함도 한 이유였다.
의병대장 송수익을 연기할 서범석은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라면 어떤 작품을 해야할까 하던 고민을 늘 해왔다며 <아리랑> 제안 전화를 받은 날이 다른 작품 계약을 딱 하루 앞두고 있던 날이었다고 밝혀 운명 같은 느낌을 전했다. 고선웅 연출의 연출법과 연습을 이끄는 모습에서 신명이 나고 모든 배우가 신명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신명난다는 연습 소감을 꺼냈다.
같은 역을 맡은 안재욱은 “이 작품을 하지 않고 객석에서 <아리랑>을 보는 모습을 상상하면 ‘무대에서 같이 할 수 있었는데란 후회하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여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1일 결혼한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고. “신혼여행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밀어준 우리 색시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배우 김성녀는 연습을 하면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얼얼하고 분하고 원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40명이 넘는 배우와 스태프 모두 주인 의식을 갖고 열정적으로 의병처럼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뜨겁게 말했다.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는 그는 마지막 소망으로 뮤지컬 <아리랑>이 희망의 <아리랑>으로 발돋움하길 기원하며 창작 뮤지컬을 앞으로도 하는 거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꺼냈다.
억센 운명의 여인 방수국을 연기하는 윤공주는 연습 전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모여 가진 낭독회에서 혼자 눈물이 터졌던 일화를 꺼내며 다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가슴이 먹먹하고 뜨거운 작품이라고. 이 작품을 하지 않았으면 배우 인생에서 크게 후회할 뻔 했다며 참여하게 된 것이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카이와 임혜영은 그동안 보여준 캐릭터와는 또다른 도전이다. 윤공주와 마찬가지로 방수국을 연기하는 임혜영은 <아리랑>을 하면 힘든 스케줄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제목만 듣고 바로 해야겠다 결심했던 당시를 전했다. 특히 연출가가 고선웅 연출이라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도 커서 선택했는데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시대를 겪지 않았음에도 연습 만으로도 그 시대를 느낄 수 있더라며 “아프고 슬픈 만큼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간을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이런 작품을 할 수 있게된 것이 정말 감사하고 감동적이라는 소감을 말했다.
상류층 전문 배우라는 소개를 듣고는 “상류층 전문 배우 카이입니다”라고 인사한 카이는 일본 앞잡이가 되는 양치성을 보면서 “과연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얼마나 떳떳한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보니 굉장히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진실되고 아름답게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대본 읽고 결정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만큼 하고 싶은 역할이고 작품이었다며 단순한 악역 보다는 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거짓됨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자체가 첫 도전인 배우들도 있다. 국립창극단 대표 배우 이소연과 연극 배우 출신 배우 김병희다. 이소연은 자신도 검증 안 된 뮤지컬 배우일텐데 옹녀로 출연했던 <변강쇠 찍고 옹녀>의 고선웅 연출과의 인연과 배우 김성녀의 적극 추천 덕분에 출연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소리하는 사람으로서 고선웅 연출이 맡았기 때문에 우리 소리를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고 진심으로 잘 전달해줄 거라는 믿음을 보였다.
김병희 또한 고선웅 연출과 인연이 있다. 학교에서 했던 뮤지컬로 캐스팅되어 데뷔했지만 줄곧 연극만 해오게 되었지만 뮤지컬을 향한 꿈이 있어서 계속 노력하던 중 고선웅 연출과 만나 검증된 것이 없는데도 좋게 봐준 덕분에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아리랑>이 주는 큰 울림이 있었고 연습하는 현재도 울림은 계속 되고 있다고. 그가 표현한 <아리랑>에 대한 한 마디는 “이번 <아리랑> 대박입니다”였다.
조정래 작가는 박명성 프로듀서와 모든 사람들의 열정과 능력을 믿기 때문에 대본도 기자간담회 날이 되어서야 받았다며 깊은 믿음을 보여줬다. 잘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대본을 보지 않아도 흡족하다고.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감독에게 주먹을 날린 일화를 예로 들며 소설이 다른 매체로 만들어질 때 특성에 맞게 만들도록 작품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음을 공개했다.
이어 <아리랑>을 쓸 당시를 회상했다. “대한민국 작가로서 이걸 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작가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절절한 느낌으로 <아리랑>을 썼다. 소설가들은 제목을 백개 이상 쓰고 지우면서 마지막 것을 선택하지만 <아리랑>은 첫번째 선택한 제목이었다. <아리랑>이 애국가를 대신했다. 그 속에 우리 영혼이 녹아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만주벌판에서 고생한 동포들에게 당신들 하나 하나가 조선이라 말하고 싶었다. 이 말을 <아리랑> 배우들에게도 배우 하나 하나가 조선이란 말을 하고 싶다.”
“이 땅을 대표하는 뮤지컬로 만들어달라”는 조정래 작가의 당부를 이뤄내겠다고 고선웅 연출의 다짐과 배우들의 뜨거움이 무대에 어떻게 올려질지 기대를 모은다. 2013년 3월 라이선스 획득을 시작으로 50억원의 제작비 규모로 2년 여에 걸친 제작 기간을 거친 <아리랑>은 오는 7월 1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첫 선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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