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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탄생 100주기…50년 만에 국립극단 무대로 돌아온 <활화산>

글: 이솔희 | 사진: 국립극단 2024-04-22 811

국립극단은 근현대극 <활화산>을 오는 5월 24일부터 6월 17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활화산>은 한국 연극계의 거인 고(故) 차범석 작가가 집필한 뒤 1년 후인 1974년, 국립극단 제67회 정기공연으로 초연됐다. 50년 만에 다시 만나는 <활화산>은 출연 배우만 18명에 달하는 국립극단 2024년 시즌 최대 규모작이 될 예정이다.

 

  2006년 타계까지 64편의 희곡을 발표한 차범석은 한국 연극 대중화에 앞선 최고의 사실주의 희곡작가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밀주>로 입선하여 이듬해 <귀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극작과 연출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시대변화와 전쟁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신구세대의 갈등을 세밀한 극작술로 그려냄으로써 한국의 근현대 연극사를 찬란하게 피워냈다. 치열한 관찰에 바탕을 둔 로컬리즘, 현대적 서민 심리를 명민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회자되어 여전히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중이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작가가 오십에 들어 극작한 <활화산>은 급격한 경제 개발 계획이 추진되던 격변기의 한 농촌 마을의 풍경을 담아내면서 시대 이데올로기의 선전 도구로써 창작된 예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작품은 1960년대 말 경상북도 벽촌의 한 마을, 13대째 이어 내려온 이씨 문중의 종가지만 관혼상제의 허례허식과 아들의 잦은 선거 출마와 당선 실패로 인해 쇠잔해 가는 가문을 배경으로 당시의 격변하는 농촌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키는데 며느리 ‘정숙’을 전면에 내세워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와 구습에 맞서는 주체적이고 노동적인 여성상을 서술한다. 양반 가문이라는 빛 좋은 허울에 집안의 부채는 쌓여만 가고 가문은 쇠락해 가는데 며느리 ‘정숙’은 팔을 걷어붙인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직접 돼지를 키우며 다시 집안을 일으키는 ‘정숙’은 조용했던 벽촌 마을에 새로운 바람을 불고 온다.

 

  초연 당시 이해랑 연출, 백성희, 장민호, 손숙, 신구 출연 등 막강한 라인업으로 16개 도시를 지역 순회했던 공연은 50년 만에 다시 국립극단 무대에 오르면서 변화한 시대상에서 만나는 관객에게 새로운 담론과 메시지로 다가설 예정이다. <활화산>을 각색과 윤색 없이 연출하는 윤한솔은 “시대착오적인 감각들이 객석에서 발동되기를 바란다”라며 “보고 나면 계속 곱씹어 볼 수 있는 의문을 남기고 싶은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연출 소감을 밝혔다.

 

 <활화산>의 연출을 맡은 윤한솔은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수준 높은 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을 더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연출가다. 특히 서사의 재현이라는 전통적 연극 만들기에서 벗어나 희곡의 텍스트 안에 숨어있는 다양한 담론과 모순을 감각적인 무대 언어로 병치하면서 연극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구축해 왔다. 이번 <활화산>에서도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동시에 극을 비틀어 보는 다양한 연출 기법과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해 당시의 시대상이 비추는 함의를 관객에게 새김질하고자 한다.

 

<활화산> 초연(1974) 당시 공연 모습

 

  원작에서는 무심히 지나쳤던 ‘환’, ‘원례’, ‘식’, ‘길례’ 등 어린아이의 시선을 붙잡아 바라보면서 모순적인 시대상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부각하고 회전무대와 강렬한 오브제로 볼거리 더한다. 국립극단 시즌단원 8명, 객원배우 10명 총 18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활화산>의 배우들은 작품의 태생적 성격인 리얼리즘을 극대화하고 관객의 완벽한 몰입을 유인하기 위해 극 중 상황을 현실로 믿게 할 만큼 사실주의 연기에 공을 들였다. 원작의 사투리를 어색함 없이 최대한 살리기 위해 배우 전원을 대상으로 특별 방언 지도도 이뤄졌다. 

 

  <만선>, <기후비상사태>, <스고파라갈> 등 국립극단 작품에서 안정적이면서도 뛰어난 연기로 눈도장을 찍은 강민지 배우가 ‘정숙’의 역할로 나선다. 개성 강한 연기로 대학로의 대표 배우로서 오랫동안 관객 곁에 함께해 온 구도균이 정숙의 남편 ‘상석’ 역할을 맡는다. 백수련(심씨役), 정진각(이노인役)의 노련한 원로 배우들도 함께해 작품의 탄탄한 구성에 힘을 더한다. 이외에도 이상은, 박소연, 강현우 등이 출연해 의도적이고 과잉된 리얼리즘 연기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여성 서사로 둔갑하여 소모되는 도구화된 예술의 의미를 관객에게 감각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활화산>은 관객층을 확장하고 문화예술 소외와 장벽 없는 연극을 지향하고자 한국수어통역, 한글자막, 음성해설, 이동지원, 터치투어 등을 진행하는 접근성 회차를 6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운영한다. 5월 26일 공연 종료 후에는 연출가 윤한솔, 배우 백수련(심씨役), 정진각(이노인役), 강민지(김정숙役), 구도균(이상석役)이 함께하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준비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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