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이스티드>가 오늘(21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프레스콜을 열었다.
<웨이스티드>는 영국 극작가 칼 밀러와 작곡가 크리스토퍼 애쉬의 작품으로, 19세기 초 영국에서 작가로 활동한 브론테 남매의 생애를 담은 록 다큐멘터리 뮤지컬이다. 브론테 남매는 『제인 에어』를 쓴 작가 샬롯 브론테,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의 앤 브론테, 그리고 화가이자 작가 활동을 한 브랜웰 브론테까지 모두 작가의 삶을 살았다. 뮤지컬은 '샬롯 브론테의 인터뷰'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에 록 음악을 더해 네 인물의 삶을 그린다.
특히, 4인조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록 사운드 넘버를 주목할만하다. <웨이스티드>는 다크 포크 록, 페피 개러지 펑크, 하드 메탈, 로커빌리 등 밴드 단위의 록 음악뿐만 아니라 솔로 가수가 부르던 컨트리 록, 블루스 록, 가스펠 록까지 다채로운 록 음악을 사용했다.
이날 행사에는 주요 배역을 맡은 정연, 백은혜, 김지철, 황순종, 홍서영, 임예진, 장민제 등 배우들과 박소영 연출가가 참석했다.
아래는 기자 간담회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브론테 자매를 소재로 한 작품은 기존에도 있었다. <웨이스티드>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박소영 연출가 <웨이스티드>는 다큐멘터리 장르이다. 개인의 이야기를 담는 만큼 인물의 내면의 사실성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하는 샬롯의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배우들과 그 부분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눴다. 록 음악 역시 <웨이스티드>만의 차별점이다. 록 음악을 통해 인물의 저항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실존 인물을 다큐멘터리 뮤지컬로 그린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작품을 연출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가?
박소영 연출가 모든 다큐멘터리는 프레임이 존재한다. 제작하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는 내면의 사실성을 다루는 분야이고, 어쩌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장르이다. <웨이스티드>는 인터뷰 당사자인 샬롯의 관점이 많이 들어간다. 극 중 샬롯의 인터뷰에서 동생들은 사실을 짚으려고 하지만 샬롯은 좋게 포장하려고 하는 지점이 있다. 가난한데 애매한 애들이라고 동생들은 지적하지만, 샬롯은 큰 꿈을 꾸는 아이들이라고 포장하는 식이다. 서사 중심의 극은 아니지만, 샬롯이 보여주고 싶어 했던 모습을 따라간다. 유리천장이 심한 시대에 가난하고 글을 쓰는 여성인 샬롯이 수많은 삶의 어려움에 부딪히면서도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도전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기보다는 인물의 태도와 의지를 다루려고 했다.
박소영 연출가는 여성 작가의 서사를 그린 <레드북>의 연출을 맡은 적도 있다. 이번에도 여성 작가가 모티프인 작품이다.
박소영 연출가 이야기 자체에 관심이 많지만,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브론테 남매 역시 성별로, 사회적인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좌절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도 치열하게 살아 결국 헛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이 작품을 선택한 계기이기도 하다.
샬롯, 에밀리, 앤 브론테는 모두 유명한 작가이다. 인물을 표현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정연 샬롯이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해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의 열망이 아닌 100%의 열망으로, 남매들을 설득할 때도 100%로 하려고 했다. 글과 관련한 장면에는 점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100%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홍서영 평전을 읽다 보니 에밀리라는 사람은 독특하고 고집이 있는 인물이라 자칫하면 평면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진심으로는 소울메이트를 찾는 사람, 특이하지만 곁에 있을 법한 사람으로 그리려고 했다.
임예진 앤은 브론테 남매 중 가장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항상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주님의 응답을 필요로 하는 인물이지만, 가장 믿고 따르던 샬롯과 브랜웰이 모두 불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그 부분을 중심으로 인물을 표현하려고 했다.
브랜웰 브론테는 자매들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캐릭터를 구축했나?
김지철 자료조사를 많이 했다. 브랜웰이 중심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런 내용을 찾아보면서 인물에 대입했고, 연출님과 같은 역을 맡은 순종이와도 대화를 많이 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조건 잘 받쳐줘야겠다는 것이었다. 브랜웰을 보여주기보다는 극에 잘 스며들고 흘러갈 수 있도록 연구했다.
브랜웰 역의 배우들은 작품 속에서 강아지 키퍼 역을 함께 하고 있다.
김지철 옆집에 보리라는 진돗개가 있는데 그 친구를 보면서 키퍼를 연구했다. 아침마다 산책하러 다니면서 어떤 걸 좋아하고 표현하는지 음성을 들으면서 영감을 받았다.
황순종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요'를 누른 동영상이 몇백 개나 있어서 수월하게 준비했다.
에밀리와 키퍼가 함께 하는 독특한 곡도 있다고?
홍서영 듀엣 아닌 듀엣 곡 '소울메이트'가 있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강아지가 ‘멍멍’하는 부분에 감정이 없었다. 연습을 하면서 두 브랜웰이 강아지를 표현하는데 감정을 넣고, 현대무용까지 했다. 연습 때는 집중을 해야 하는데 웃겨서 노래하는데 힘들었다. (웃음) 두 배우가 모두 진심이어서 힘들었다.
앤 역의 배우들은 컨트리부터 메탈까지 다양한 음악을 소화해야 한다. 어려움은 없었나?
임예진 처음 악보를 봤을 때 음표를 보고 놀랐다. 처음 보는 음역의 곡들이었다. 초반에는 음표에 많이 갇혀 있었는데, 연습할 수록 다양한 창법으로 소리를 낼 수 있어서 재밌게 하고 있다.
장민제 득음을 하는 구간이 있다. (웃음) 앤은 억눌린 욕망을 뿜는 캐릭터이다. 다양한 장르 음악을 해야 하는데, 장르를 살리면서 가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을 고민했다.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면?
정연 "에미, 나는 그냥 우리를 지키고 싶었어"라는 대사가 있는데, 샬롯을 제일 잘 표현한 문장인 것 같다. 엄마와 언니 둘을 빨리 잃고 맏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샬롯은 재능만 많고 가난한 여성이다. 그런 그가 동생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세상의 빛을 보여주겠다고 발버둥 치며 사는데, 그것을 제일 잘 표현하는 문장인 것 같다.
백은혜 "자 이제 보여, 처음으로 내 눈앞에 보여. 깨어난 거야 영원한 무한함이"라는 가사를 가장 좋아한다. 우리 극을 관통하는 키가 아닌가 싶다.
홍서영 "난 초월자 감당이 돼"라는 말이다. 나는 세상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역으로 날 감당할 수 있냐고 말하는 에밀리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
황순종 "이 그림은 천문학적인 값에 팔리게 될 거야. 사람들은 그러겠지. 브랜웰 브론테한테 여자 형제가 있었어? 몰랐네"라는 대사가 공연을 하면서 문득 재밌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반대로 브론테 자매에게 남자 형제가 있는 줄 모른다. 멋지고 재밌는 대사인 것 같다.
김지철 "여기라면 난 안전하지, 힘이 나지. 마음 놓고 꿈을 꾼다"라는 대사를 하면서 동료들 사이로 들어가는데, 그때마다 안정감이 느껴진다.
임예진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평생을 물었는데 응답이 없네"라는 대사이다. 앤의 생애를 가장 잘 표현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장민제 "헛되고 헛된 삶 웨이스티드, 아냐 웨이스티드"이다. 이 작품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모든 삶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도 잘살고 있는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무서울 때가 있었는데 작품을 하면서 어떤 선택을 해도 내 삶이고, 헛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