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정동극장 2022 연극시리즈 <맥베스 레퀴엠>의 제작 발표회가 오늘(15일) 열렸다.
국립정동극장 연극시리즈는 매년 한 명의 배우를 선정해 배우의 철학과 인생을 담은 작품을 제작하는 기획 공연으로, 작품 선정부터 기획, 제작의 모든 초점을 배우에 맞춘다. <맥베스 레퀴엠>은 두 번째 연극시리즈로, 뮤지컬배우 류정한이 참여한다.
<맥베스 레퀴엠>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다. <맥베스>는 반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세 마녀의 예언에 현혹돼 야욕에 사로잡힌 맥베스가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지만,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무분별한 살인을 저지르며 파멸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맥베스 레퀴엠>은 극의 배경을 1920년대 스코틀랜드 인근의 재즈바로 옮겨 현대적으로 바꿨다. 또한, 12여곡의 노래를 작곡하는 등 작품 전반에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날 제작 발표회에는 맥베스 역을 맡은 류정한을 비롯해 안유진, 정원조, 김도완, 박동욱, 이상홍, 이찬렬, 정다예, 홍철희, 김수종 등 출연 배우들과 박선희 연출가 등이 참석했다.
아래는 제작 발표회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연극 <맥베스 레퀴엠>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박선희 연출가 처음 류정한 배우, 김한솔 작가와 시작단계에서 '(맥베스를) 욕망으로 파멸한 사람이라고 우리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누군가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람만 죽이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한다면, 살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했다. <맥베스 레퀴엠>이라고 했을 때 ‘맥베스’와 '레퀴엠'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할 것 같다. <맥베스>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결국 마지막에는 맥베스가 죽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일종의 레퀴엠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맥베스 레퀴엠>의 목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 더 동정할 수 있는 한 사람을 그리는 것이다. 무서운 사람이라기보다는 불쌍하고 안된, 자기 스스로 파괴해가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봤다.
기존의 <맥베스>와 차이점은 무엇인가?
박선희 연출가 <맥베스 레퀴엠>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맥베스와 같은 삶을 걷는다. 원작은 맥베스라는 캐릭터를 위해 악행을 받아주고 도와주며 갈등을 만드는 캐릭터가 존재한다면, <맥베스 레퀴엠>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맥베스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존재들이다. 맥베스의 상상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맥베스는 죽어있을 수도 있고,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관객의 해석에 달려있다.
<맥베스 레퀴엠>에 참여한 소감이 궁금하다.
류정한 98년도에 정동극장에서 <나무꾼과 선녀>라는 뮤지컬을 했다. 오랜만에 정동극장에 와서 연습을 하고 정동길을 지나다 보니 옛날 생각도 많이 났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정동극장에서 두 번째로 연극시리즈를 하게 된 것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 공연을 연극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맥베스>라는 작품이 새로운 형태로 공연되기를 바랐고, 새로운 맥베스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멋진 배우, 스태프들과 연습하고 있다.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 작품의 결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음악을 써보자고 했다. 요즘은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많이 생긴다. 우리 공연은 모든 역할이 원캐스팅이다. 공연이 끝나는 그날까지 전회차를 최선을 다해 끝내는 것이 목표이다.
안유진 원작에서 레이디 맥베스라고 불리는 맥베스의 부인 올리비아 역을 맡았다. 주로 뮤지컬을 하다 최근 연극을 몇 편씩 하고 있는데, 배우라면 욕심나는 셰익스피어 작품이라 출연하게 됐다. 류정한 선배와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초연 이후로 또 부부 역할을 하게 돼 재밌게 하고 있다. 고전적인 맥베스와는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김도완 맥베스의 친구 맥더프는 낭만이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왕이라 할지라도 악행을 삼으면 단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원작에서는 맥더프가 맥베스를 죽이지만, 우리 작품에서는 맥더프가 칼자루를 친구인 맥베스에게 넘긴다. 그런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 연습하면서 매일 새롭고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재밌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류정한 배우는 주로 뮤지컬 무대에 섰다. 연극 무대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류정한 스물일곱 살에 연극 <마스터 클래스>에 출연하면서 무대라는 것에 경외심을 갖게 됐다. 어릴 때는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연극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탁자 하나만 있어도 1920년대가 될 수 있다. 연극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 연극 <세 자매> <가시밭의 한 송이>를 도전했지만 한계를 느꼈고, 부족함을 깨달아서 슬럼프도 왔었다. 하지만 연극 무대에 대한 열망이 늘 있었고, 뮤지컬을 하면서도 연극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럼에도 제의를 받으면 겁이 났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정동극장에서 제안을 해주셨고, 이번에 아니면 다시는 연극에 참여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큰 용기를 내 선택하게 됐다.
맥베스의 인생이 본인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류정한 맥베스라는 인물 자체를 알고 싶었다. 작품에서 "선을 알고 있지만 악을 행한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대사들이 와닿았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50대 한 인간으로서 이런 여러 가지 감정들, 욕망과 광기의 맥베스가 아니라 누구나 맥베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인간 맥베스가 보였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작품에 노래가 12곡 정도 있는데 뮤지컬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박선희 연출가 원작에는 3명의 마녀가 나오는데 우리 작품에는 마녀들이 나온다. 맥베스와 올리비아를 빼고 나머지 8명이 마녀다. 셰익스피어가 왜 마녀라는 존재를 가져왔을까 생각해봤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마녀라고 형상화하지 않았을까, 결국 맥베스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길 바란 거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나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더 나쁜 짓을 해주길 바란다는 것에 나와 작가, 류정한 배우가 공감했다. 맥베스의 내면을 말해주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가 한둘이 아니라면, 음악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맥베스의 내면을 솔직히 들려주고 싶어서 마녀들을 선택했다. 우리 작품에는 뮤지컬배우가 많지 않지만 이들에게 적합한 음악으로 마녀들이 노래를 부른다. 정작 뮤지컬배우는 노래를 안 한다. (웃음)
<맥베스 레퀴엠>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류정한 온전히 맥베스라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다. 매일 동료들에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우리가 원하는 맥베스가 나온 건지 묻는다. 하루는 잘했다고 생각했다가도 다음 날엔 절망한다. 작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맥베스는 잠을 잘 수 없다." (웃음) 어떻게 하면 맥베스라는 인물과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얘길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대부분 맥베스를 광기 어린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맥베스 레퀴엠>은 그 반대로 접근했다. 누구나 맥베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대 맥베스 중에 가장 찌질하고 인간적인 맥베스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