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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시대에 되새기는 사랑의 말"…연극 <러브레터> 제작발표회

글 | 이참슬(웹 에디터) | 사진제공 | 파크컴퍼니 2022-09-07 1,974

 

 

연극 <러브레터>가 7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러브레터>는 두 남녀가 일생 편지로 주고받은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주인공 멜리사와 앤디가 관객을 향해 편지를 읽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1988년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작가인 A.R. 거니가 직접 공연을 선보인 후 배우들의 러브콜로 브로드웨이 공연이 시작됐다. 이후 웨스트엔드, 카네기홀, 모스크바 푸시킨 극장, OJ 심슨 재판 공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라와 극장에서 공연됐다. 멜리사 역에 진 시먼스, 엘리자베스 테일러, 시고니 위버, 브룩 쉴즈 등, 앤디 역에 크리스토퍼 웰켄, 멜 깁슨, 제프 다니엘스, 톰 행크스 등 유명 스타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프랑스, 일본 공연에서도 각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배우들을 무대로 이끌었다.

 

이번 한국 공연은 예술의 전당과 파크컴퍼니의 공동 제작으로 작가의 공식 에이전시 WME(William Morris Endeavor Entertainment, LLC)와 정식 라이선스를 체결해 제작했다. 남다른 우정을 자랑하는 배우 박정자, 오영수, 그리고 배종옥, 장현성이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배우 박정자, 오영수는 1971년 극단 자유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50년 이상의 돈독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으며, 배종옥, 장현성은 꾸준히 연극 무대를 병행해온 실력파 배우들이다. 독보적인 연기력을 가진 한국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와 명불허전 연기력의 배종옥이 적극적이고 솔직한 성격의 자유분방한 예술가 멜리사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멜리사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이며 슈퍼 엘리트 앤디 역에는 지난해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오영수와, 흡인력 있는 연기를 선보인 장현성이 맡았다. <러브레터>는 박정자-오영수, 배종옥-장현성 고정 페어로 10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배우 박정자, 오영수, 배종옥, 장현성과 오경택 연출가가 자리했다. 아래 내용은 질의응답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러브레터>는 여러 차례 무대 위에서 공연된 작품입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부분에 차별점을 두었나요?
오경택 연출가(이하 오경택) <러브레터>는 앤디와 멜리사 두 주인공이 여덟 살부터 5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동선 없이 배우 둘이서 자리에 앉아 오롯이 읽는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각적인 것이 많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남의 말을 듣는다는 접근이 오히려 더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지는 글로 쓰는 거잖아요. <러브레터>는 누군가가 쓰고 그것을 배우가 읽고, 관객이 듣게 되는 쓰기, 읽기, 듣기가 있는 극이에요. 아무래도 말, 언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번역극이고 시대나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보니 어떻게 하면 2022년 대한민국에서 동시대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두 배우가 나와 대본을 펼쳐놓고 읽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저희 프로덕션은 실제로 약 333통의 편지를 다 일일이 뽑아서, 한 장 한 장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박정자, 오영수 배우는 실제로 50년 이상의 우정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상대 배우로 만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박정자 이 직전에 <햄릿>을 끝냈어요. 제가 <러브레터>를 한다고 하니 그때 햄릿이 그래요, 어머 선생님 멜로도 하시네요. (웃음) 우리 글로벌 스타 오영수 선생과는 극단 자유에서 아주 오랫동안 호흡을 나눴던 사이입니다. 나이를 먹어서 이런 모습으로 무대에 나타날 수도 있구나,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영수 우리 박정자 선생은 연배로도 저보다 위이시고, 연극 시작도 선배이십니다. 70년대에 극단 자유에서 만나서 50년 넘도록 지금까지 우정, 동기애를 나누며 누님 같은 선배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박 선배와 그동안 많은 연극을 같이 해왔는데 이번에 <러브레터>를 같이 하면서 그 과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이 연극을 하면서 요즘같이 사랑이라는 말이 많이 숨어들어가는 삭막한 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연극을 한다는 것을 뜻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경택 연출가는 대본을 받고 가장 먼저 박정자, 오영수 배우를 떠올렸다면서요?
오경택 캐스팅을 제작팀과 상의하면서 크게 세 가지를 생각했어요. 액팅 없이 말로만 전달돼야 하니까 당연히 섬세한 연기력이 요구됩니다.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모셔야겠다는 것이 첫 번째였어요. 두 번째는 실제로 그 배우들이 오랜 세월을 통한 친밀감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만난 배우가 하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내는, 편하게 속내를 내비칠 수 있는 관계였으면 했습니다. 세 번째는 앤디와 멜리사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배경의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을 떠나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많은 세대를 어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떠오른 게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이었어요. <러브레터>는 오랜 시간을 서로 소통해왔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깨닫는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 오랫동안 우리 연극 무대를 지켜오신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이 계신다면 두 분이 지닌 연륜, 내공, 시간의 힘이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배종옥, 장현성 배우도 이번 만남이 처음은 아니죠?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배종옥 <러브레터>를 제안받았을 때 너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생 같다는 생각? 내가 원해도, 원하지 않아도 만날 것은 만나지고 비껴갈 것은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원해도 비껴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스토리가 삶인 것 같았어요. 대본을 읽었으면서 남자 배우에는 장현성 배우를 생각했어요. 현성씨와는 2004년 <내가 살았던 집>이라는 단막극으로 만나 방송에서는 <라이브> <호박꽃 순정>까지 세 작품을 같이 했는데, 어떻게 틈틈이 연극을 같이 많이 봤어요. 우연히 연극을 보러 가서도 만나고, 가끔 술 마시면서 얘기하고. 말로는 연극을 같이 하자고 했지만 그게 실현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근데, 이걸 현성씨랑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대에서 같이 작업하게 돼서 너무 즐거워요. 그 과정에서도 장현성씨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만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장현성 이 작품을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20년 넘게 더러 상연된 작품인데 다른 방식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작품의 제안이 왔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캐스팅으로 배우들이 구성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러브레터>는 편지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예전엔 편지를 많이 썼어요. 지금은 의사소통, 감정의 소통이 문자나 DM처럼 점점 짧아졌죠.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생각을 정돈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데 편리하긴 하지만 안타깝기도 해요. 연극도 비슷한 것 같아요.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상상력으로 무엇이든 보여 드릴 수 있어요. 어찌 보면 연극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이 대본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러브레터>의 젊은 페어로서 선배들과 함께 작품을 준비하는 건 어떤가요?
배종옥 현장에 나가면 어느덧 제 위에 선배가 없을 정도로 저도 나이를 먹었더라고요. 그게 고독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도 내게 연기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잘못됐을 때 스스로 캐치해야 하는 거예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같이 무대에 서진 않지만,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게 너무 큰 의미가 있어요. 제가 무대에 서는 것 이상으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돼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기를 하다보면 서로 주고받으면서 형성되는 감정의 기운이 생기는데 이 작품은 편지를 읽다 보니 그 사이의 감정을 가져오면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은 거예요. 연습하면서 너무 어려울 땐 박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냐고 물어봐요. 컨닝도 살짝 할 수 있고, 선생님들이 어떻게 간극들을 꾸며가면서 자기의 컬러를 유지하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서, <러브레터>는 다른 공연과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연배가 다른 페어이기 때문에 작품은 하나지만 사실 두 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장현성 선생님들은 소년 장현성일 때부터 동경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무대 위 스타세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이 그런 대사를 하죠.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선생님들은 제가 더 좋은 후배가 되고 싶게 만드는 선배님이세요. 연습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오영수 배우는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오영수 개인적인 것보다도 국제적인 차원의 상이니 국제적인 위상, 그런 지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자 오영수 선생께서 좋은 성적을 가지고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러브레터>가 얼마나 빛날까요.(웃음)
장현성 오영수 선생님 에미상 가실 때 신으시라고 박정자 선생님께서 명품구두를 사드렸습니다. 
오영수 흰 머리 날려가며 레드카펫을 힘있게 밟고 오겠습니다. 뜻깊은 선물이에요. 고맙습니다.

 

원로배우 두 분의 활약이 몇 년 사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박정자 연극배우는 운동선수와 똑같아요. 항상 훈련되어야 해요. 운동선수는 운동을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잖아요. 사실 우리 연령대 배우들이 작품이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관객분들이 기다려주셨고, 연극을 만드시는 분들도 무대로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정년은 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두 발로 든든히 서 있을 때까지, 호흡할 수 있을 때까지 하겠다는 게, 무대를 향한 저희의 마음입니다. 

오영수 40대, 50대까지만 해도 연극이라는 것이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한 현상을 다룬다고 생각했어요. 그땐 사회 현상이 그랬고, 관객들도 그런 취지의 연극을 많이 선호했어요. 저도 열렬한 호응을 주셨을 때 희열을 느끼고,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흘러 60대, 70대가 되다 보니 원로라는 말도 듣게 됩니다. 인생을 얘기하는 게 연극인데, 배우가 인생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회 문제, 그걸 사건이라 한다면 사건을 말하는 거지 인생을 말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를 먹으니 인생 얘기를 하고 싶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요즘 연극은 젊은 연극인데 사건만 말하고 인생이 없다고요. 셰익스피어가 500년 넘게 우리 곁에 있는 건 사건도 많지만, 인생을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얘기할 정도의 연륜의 과정을 밟아가면, 거기서 배우의 내공이 생기고 한 인물이 보이게 되죠. 배우로서 거기까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70, 80까지 갔을 때 배우의 참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면 얼마나 무대를 하겠습니까. 무대에 정진하고 싶고, 마지막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무대를 내려오고 싶은 생각입니다.

 

 

세대가 다른 두 페어는 각자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오경택 두 페어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보셔도 되는 것이 연출적인 접근 방식도 페어마다 다릅니다.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은 시간과 힘이 주는 연륜과 깊이가 있습니다. 두 선생님 페어는 시간이 지나서 앤디가 마지막 사건 이후 수십 년이 지나 예전의 멜리사를 추억하며 편지함에서 멜리사를 소환해낸다는 콘셉트로 접근했어요. 배종옥, 장현성 베어는 극 중 인물의 나이대와 매우 유사해서 그 나이대만이 품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중년까지 활력있고 생생한 장면이 잘 드러나는 게 특징입니다. 굉장히 다른 색깔과 방식의 두 편의 작품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장현성 선생님들 연습을 봤는데 관객분들이 이 공연을 보시고 나면 멜리사와 앤디의 20년 전이 궁금해질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공연을 다시 보실 수 있겠구나.(웃음) 마찬가지로 저희 공연을 보고 20년 후가 궁금하시면 선생님들 공연을 다시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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