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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가 뭐길래…<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이 던진 질문 “지금은 다른가?”

글 | 안시은 기자 | 사진제공 | 아이엠컬처 2020-06-16 3,616
네 학생(발로쟈, 빠샤, 비쨔, 랼랴)은 엘레나 선생님의 생일 저녁, 선생님의 집을 갑작스럽게 찾는다. 생일을 축하하러 온 듯 했지만 넷은 이내 본색을 드러낸다. 시험지 금고 열쇠를 갖고 있는 선생님에게 열쇠를 받아내 성적을 정정해 이익을 쟁취하려는 목적을 이루려 했던 것. 이들은 그 과정에서 첨예한 갈등과 논쟁을 펼치며 모순을 드러내고 파멸한다.

언뜻 보면 이성적인 것 같은 설득 과정은 출발부터 정의롭지 못했기에, 언어 폭력이 되었고 결국 여성을 억누르는 행위에까지 이른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무한 경쟁의 비극으로 드러나는 폭력성과 존엄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양심을 지키며 살 것인지, 비열하게 살 것인지, 절대선과 악은 존재하는지 묻는다.



이 작품을 각색한 오인하 작가는 개막을 하루 앞둔 어제(6월 15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진행한 오픈 리허설에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폭력적이거나, 성별을 이용하는 가치관, 자신이 옳다고 여기지만 옳지 않은 방법으로 쟁취하려는 모든 모습들은 현재 한국에 대입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가까웠다”고 말한다.

그는 “국가 혹은 사회적으로 가치관이 변하는 과도기가 가장 폭력적이지 않나. 네 친구들이 과도기를 겪으며 생긴 가치관의 우선 순위가 저마다 다른 것들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구소련 당시 라트비아 출신 작가 류드밀라 라주몹스까야가 1980년 쓴 이 작품은 1981년 초연 당시 구시대 몰락과 혼란스러운 이데올로기를 그린다는 이유로 공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 전역에서 공연되며 호평받았다. 국내에선 2007년 초연해 2009년, 2012년, 2017년에 공연했다.

오인하 작가는 3년 전 처음 각색할 때는 러시아어 선생님과 한줄씩 공부하면서 문학적 표현과 사실적 표현 사이에서 어디에 중점을 둬야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시 각색에 임하면서 “지금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구성과 맥락은 원작을 유지하면서 배우들이 화술적으로 말하기 편하도록 신경썼다고 했다.



성(性)적으로 자칫 불편할 수 있는 부분들을 원작대로 유지한 것에 대해선 “류드밀리 라주몹스까야란 작가가 그 시대 문학을 다루는 지식인으로서, 또 여성으로서 했던 고뇌를 작품에 담았을 거라 생각했다. 상처입고 피해입은 모습이 랼랴에 일정 부분 투영됐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자칫 트리거 요소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이었지만 작가가 자신의 사상과 고민을 품어 탄생시킨 장면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양심과 신념을 지키려는-‘존경하는’ 엘레나를 대하는 방식은 다소 역설적이다. 이들의 ‘존경’엔 각자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의 성격이 강하게 배어있다. 오인하 작가는 각색하면서 ‘존경하는’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해외 대본도 여러 버전이 있다. ‘친애하는’이나 ‘사랑받는’이라고 돼있는 것도 있다.”고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돼있다고 우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이뤄내고자 하는 것들을 위해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면서 실제 존경할 만한 대상이지만 나와 동떨어져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스승의 존재는 사회, 문화적 가치관 때문인지 존경받는 대상이지 않나. 그래서 이 제목을 유지하려 했다. 위대한 성인(聖人)이나 가치관을 지닌 분들을 존경하고 사랑해도 눈 앞에 있는 문제들로 휘둘리고 잊혀지지 않나. 때문에 의미 있는 제목이라 생각했다.”라며 ‘존경하는’이란 단어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오인하 작가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인물들을 다 다르게 보실 것”이라며, 다양한 시선과 소통을 강조했다. “대본은 현장에서 완성되어진다”면서 “현장에서 연습하면서 연출님과 배우들이 소통하고 만들어내는 부분들이 중요하다. 대본을 구성할 때 아무리 대단한 조언을 들어도 결국 소화해서 활자를 생동감있게 움직이도록 하는 건 배우들이 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충분히 많은 소통과 이야기를 통해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본을 읽고 덮을 때마다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나 하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이루기 위해 옳지 않은 방법들을 사용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들도 계속 벌어진다. ‘여전히’가 아니라 ‘이제는’이란 말을 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2020년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겼다.



3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만나는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6월 16일부터 9월 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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