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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벡델의 기억 상자를 열어보는 <펀홈>, 가족을 말하다 (프레스콜)

글 | 안시은 기자 | 사진 | 안시은 기자 2020-07-24 4,173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우면서, 또 가장 먼 존재다.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 동명 노블 『펀홈』을 뮤지컬화한 <펀홈>은 43세 앨리슨 벡델의 기억에 따라 뒤늦게 아빠를 알아가는 노력하는 여정을 펼쳐나간다. 






지난 22일 오후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는 국내 초연한 <펀홈> 프레스콜을 열었다. 프레스콜에서는 `다 기억나`, `괜찮아`, `펀홈으로 와` `지도`, `사랑의 레인코트`, `열쇠고리` 등 장면 시연을 통해 초연 무대를 선보였다. 



<펀홈>으로 오랜만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용호 프로듀서는 이 작품을 택한 가장 큰 이유로 “가족 이야기”라는 점을 들었다.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주인공의 기억을 통해 그림을 그리면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조금 더 따뜻하게 봐주시고, 다양성 안에서 뮤지컬이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았다.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도 흔치 않다. 작품을 이끄는 43세 앨리슨 역으로 출연 중인 방진의는 “브로드웨이에서도 아빠와 딸 이야기는 별로 없다고 하더라. 그런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남녀 모두 자기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극과 여자 배역도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는 바람을 전했다. 

같은 역을 맡은 최유하 역시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여성 캐릭터가 점점 다양하게 변하고 있어서 기쁘다. 여자든 남자든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시각이 넓어진다면 즐거운 공연이 더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판에 박힌 캐릭터를 벗어나 누구든 다양한 캐릭터로 연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는 생각을 들려주었다. 




박용호 프로듀서는 “<펀홈>을 쓴 창작자는 모두 여자 분이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유일한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뮤지컬이 맞다”면서도 단순히 젠더 문제로만 보지 말아주기를 당부했다. “부녀지간, 모녀지간, 형제자매, 친인척까지 (가족을 둘러싼)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비이성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내 초연 전 미국에서 먼저 공연을 봤던 박소영 연출은 “처음 봤을 때 작품 자체가 좋았다. 소재가 부담되기도 하지만, 결국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앨리슨 벡델의 마음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그 여정을 잘 따라와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출했다”고 연출하면서 집중했던 부분을 설명했다. 

대본과 음악을 바탕으로 스몰 라이선스(넌레플리카)로 제작한 <펀홈> 무대는 원작을 참고하면서 완성시켜 나갔다. 박소영 연출은 “무대디자이너와 상의를 많이 했다. 그래픽 노블에 나오는 소품, 샹들리에, 계단 형태 등을 최대한 참고하고 상의하면서 앨리슨 벡델이 진짜 살았던 집을 구현하려 했다”고 의도한 바를 말했다.



<펀홈>은 6인조 밴드가 23개 악기로 라이브 연주를 펼친다. 바이올린부터 비올라, 키보드, 드럼, 젬베, 카혼, 콘틑라베이스, 일렉베이스, 플렛리스 베이스, 어쿠스틱 기타, 일렉 기타, 12현 기타, 클라리넷, 플루트, 소프라노·테너 색소폰 등을 쓴다. 채한울 음악감독은 “밴드는 드라마적으로 섬세하게 편곡된 원작을 따른다. 악기를 많이 쓰는데, 드라마적으로 풍성하게 써보려고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음악적으로 가장 집중한 것은 제닌 테소리가 쓴 음악 의도를 고스란히 전하려는 것이었다. 채한울 음악감독은 “악보에 연기적인 지시문이 많다. ‘머뭇거리면서’ 혹은 ‘에너지 있게’와 같은 지시문이 있다. 그런 부분도 신경쓰려 했다. 음악이 영어와 밀접한 멜로디로 쓰여서 한국말로 불렀을 때 낯설게 느껴지지 않도록 단어 위주로 전달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뒀다.”고 덧붙였다. 




방진의는 원작을 읽고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하고 작품에 느꼈다고 했다. “어릴 때 목욕탕에 가면 커트 머리라는 이유로 남탕표를 주곤 하셔서 여탕표로 바꾸곤 했다. 여자로 보이려고 머리를 묶고 가곤 했다”며 어릴 적 기억을 들려줬다. 역할을 하면서 아빠를 더 떠올려 보고 닮은 부분을 발견하면서 흥미롭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캐릭터와 드라마 전개 방식을 선보인 <펀홈>은 배우들에게 도전과도 같았다. 최유하는 “연습 과정에서 누군가와 호흡하지 않고 연기하는 게 처음이었다. 철저히 제3자의 눈으로 기억을 꺼내보고 설명하는 정도라 연습하면서 외롭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 덕분에 무대에서 호흡을 나누는 걸 좋아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고. 

“기억과 떨어져있고 싶어하던 인물이 결국 그 기억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분석했다는 최유하는 “실존 인물이다 보니 인물 정보를 많이 알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기억이 객관적일 것인가 고민했는데 화자 입장에서는 실제 일어난 이야기다. 복잡한 캐릭터지만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공연하며 느낀 점을 말했다. 



19세 앨리슨을 연기 중인 유주혜는 ‘체인징 마이 메이저(Changing My Major)’를 가장 마음이 가는 곡으로 꼽았다. 가사가 A4 용지로 네 페이지에 달한다는 이 곡을 위해 같은 역할을 맡은 이지수뿐만 아니라 박소영 연출, 채한울 음악감독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아빠와의 관계에서도, 인생에서도 앨리슨 벡델에게 제일 중요한 곡이라 생각했다. 노래할 때마다 행복하면서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곡이다”라며 좋아하는 이유를 언급했다. 



같은 역을 맡은 이지수는 전작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치마를 입지 않는 역할은 처음”이라며 “지금 이 작품의 이 캐릭터를 만나 운과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면서 공부를 진짜 많이 했다”고 작품 준비 과정을 들려주었다. 실제 성격은 그간 맡았던 조숙하고 얌전한 역할과 달라서 <펀홈>을 오히려 편하게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앨리슨의 아빠, 브루스 벡델 역을 맡은 최재웅과 성두섭은 ‘아빠처럼 보이는 것’에 가장 초점을 맞췄다. “대본과 캐릭터 분석보다 배우가 아빠가 보이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초반에 생각했다. 다행히 실제 아빠라서 아이들에게 하는 말투를 많이 떠올리면서 대입시켜봤다”고 했다. 성두섭 역시 “아빠인 역할이 처음이어서 그 부분에 가장 신경이 쓰였고 부담이 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지 연구했다”고 말을 더했다. 




두 배우에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캐릭터가 앨리슨이 기억하는 대로 보여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최재웅은 “43세 앨리슨의 대사와 내레이션 이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은지, 그대로가 나은지 고민했다. 대사에 맞게 앨리슨이 표현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성두섭은 “조각, 조각을 연기해야 해서 그 상태를 어떻게 표현할지와 아버지의 예민하고 불안하고 날카로운 모습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너무 어려운 작품”이라고 고백했다. 



엄마 헬렌 벡델을 연기 중인 류수화도 브루스 역할을 맡은 배우들처럼 “헬렌은 앨리슨 벡델 기억의 파편”이라고 공감했다. “원작에선 (헬렌이) 시크하고 냉정하다고 느꼈다. 무대에서는 브루스처럼 가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각자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가족이란 울타리는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며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을 말했다. 

헬렌을 알고 싶다면 앨리슨 벡델이 헬렌 사후에 쓴 '당신 엄마 맞아?'란 책에서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펀홈> 원작은 헬렌이 살아있을 당시 쓰여졌기 때문에, 나쁘게 쓰여진 모습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앨리슨 벡델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나는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 거지?'라고 반추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도 전했다. 



이아름솔(헬렌 역)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더 많이 담고 있는 인물이라 처음 대본을 받고 어려움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연기하기 위해 찾은 방법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교과서와 같은 대본, 백과사전과 같은 원작이 있어서 그것들을 많이 참고했고, 반복해서 읽었다. 박소영 연출님부터 음악감독님 등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과정을 들려주었다. 방진의에게도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단순하게 가라”고 조언받았다며, 이런 도움들로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했다. 



9세 앨리슨은 유시현과 설가은이 맡았다. <애니>로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유시현은 “앨리슨처럼 치마를 많이 입는 편도 아니고, 앉을 때 다리도 편하게 한다. 『펀홈』 만화책을 보면서 앨리슨과 취향을 맞추고 알아가면서 점점 앨리슨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며 역할에 푹 빠져든 모습이었다. 



<마틸다>로 뮤지컬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설가은은 몸을 잘 쓰지 못하는 점이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운동신경이 꽝이라 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아빠가) 비행기 태워주는 장면을 많이 걱정했어요.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돼서 (실제) 아빠와 연습을 해봤는데 역시나 앞으로 고꾸라지고 다리도 펴지 못했어요. 실전에서 아빠 얼굴 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어요.”라며 연습하면서 재밌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앨리슨 벡델의 오빠 크리스찬 벡델 역을 맡은 한우종은 평소 좋아했던 선배 배우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사실에 감정이 벅차올라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정말 좋아하고 공연을 보면서 많이 배웠던 분들과 함께 같이 즐겁게 공연해서 재미있고 좋았어요.”





한편, 한국 초연 막을 올린 <펀홈>은 10월 11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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